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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Oct 09. 2023

알리스캉, 죽은이들의 엘리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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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캉, 죽은이들의 엘리시움

파리에 있는 샹젤리제가 아를에도 있다. 그런데 이곳은 죽은 이들의 샹젤리제로, 고대에 가장 유명했던 공동묘지 가운데 한 곳이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고대 로마제국에서도 도시 내에 매장이 금지됐다. 로마로 들어가는 아피아 가도에도 묘지가 즐비했다고 하는데, 크고 화려한 비석을 세운 부유한 사람들의 무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피아 가도 주변에서는 성 칼릭스투스와 세바스찬 카타콤도 발굴됐다. 박해를 받았던 초기 그리스도인의 자취가 남아 있는 카타콤이지만 실제로는 당시 가난한 사람들의 묘지였다고도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구하며 묻힌 묘지였다.     





303년에는 성 제네시오가 순교해 알리스캉에 묻혔다. 그리고 아를의 첫 번째 주교인 트로피무스, 생트로핌이 또 여기에 묻혔다. 거룩한 사람 곁에 있으면 은총도 함께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퍼져서 사방에서 시신을 태운 배가 론 강을 따라 아를로 왔다. 

밀라노 칙령 이후 4세기에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된 후에도 알리스캉은 계속 묘지로 사용됐다. 그즈음에는 수천 기의 묘가 있어서 3층 높이로 석관을 쌓아야 했다는데 그 풍경이 상상이 안 된다. 12세기에 생트로핌의 유해가 대성당으로 옮겨지면서 조금씩 영향력이 기울다가 르네상스 시기에는 약탈당하는 등 점차 훼손되었다.      

지금 알리스캉에 남아 있는 석관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볼품없는, 보잘것없는 것들이다. 쓸모 있고 가치 있는 것들은 이미 약탈되거나 박물관으로 갔다. 이 길은 다시 가난한 사람들의, 아니 조금 덜 부유한 사람들의 알리스캉이 됐다. 


당시에는 내로라하던 사람들이 얻었을 죽음의 자리.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진 죽음의 자리에 낙엽이 진다. 낙엽 지는 가을 아침 알리스캉에는 수백 년의 침묵이 흐른다. 수백 수천의 관이 알리스캉에 도착하고 옮겨지고 훼손되던 수많은 날의 소음과 애도와 긴장들이 뒤섞인다. 심지어 이곳에서는 패션쇼가 열리기도 한다. 

누군가, 부자가, 어딘가로부터 론 강을 따라 마지막 여행을 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낯선 아를에 영원한 여장을 풀었다. 헤어져가는,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기에 어울리는 가을이었다. 


포플러와 플라타너스가 깊은 그늘을 드리우는 어느 여름, 고흐와 고갱도 이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렸다. 고흐는 여기서 4점의 알리스캉을 그렸고, 고갱이 그린 레잘리스캉Les Alyscamps은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돌과 관. 돌로 만든 관. 그것은 영혼의 문제이기 때문에 늘 각별한 느낌인 것일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세계로 이어지는 상념. 생을 떠난 이들의 관이 즐비한 알리스캉은 ‘극락의 들판’이라는 뜻이다. 행복하라는 기원이겠지. 떠나서도 영원히 천국에 살라는 기원이겠지. 그런 마음을 담아 알리스캉이라고 이름 지었을 것이다. 관들은 풍화돼 간다. 커다란 나뭇잎들이 관 속에 뒹군다. 뚜껑도 없이 열려 있는 관은 이제 비어 있다. 한때 그 주인이었던 이들은 이미 흙으로 돌아갔으리. 




알리스캉, 그 길의 끝에 생오노라 성당이 있다. 가을 아침, 낙엽이 구르는 알리스캉에 낙엽처럼 스러질 사람의 생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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