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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Oct 09. 2023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생 자크의 길

_아를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이 갈리아 지방 곳곳에도 있었다. 물론 저 멀리 북유럽과 영국에서 출발하는 순례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어디서 오든 프랑스 땅을 거쳐 스페인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대부분 루르드 근처 생장피드포드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가게 된다. 유럽 곳곳에서 순례가 이어지다보니 그 여정에 있는 도시마다 순례교회들이 들어섰고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와 병원도 문을 열었다. 순례자 덕분에 먹고 사는 도시들이 많아졌다. 아를 역시 갈리아에서 카미노를 걷는 대표적인 네 여정의 한 출발지였다. 아를이 당시 그만큼 영향력 있는 도시였다는 얘기다. 


순례자들은 도시의 주교좌성당을 찾아 기도하고 미사 했다. 그런데 순례지에서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있었다. 바로 성인들의 유해를 찾아 예를 갖추는 일이었다. 12세기에, 아마도 최초의 가이드북을 쓴 교황 칼릭스투스2세가 당시의 순례 양태를 잘 전해주었다. 그는 아를에서 반드시 ‘고백자 트로피무스’의 유해를 만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를의 첫 주교인 트로핌이다. 그리고 주교 호노라투스의 무덤도 찾아야 하고 알리스캉이라고 불리는 묘지에도 들르라고 조언한다. “그곳에서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찬송을 하고 헌금도 해야 한다….”




천 년 전 지어진 생트로핌 수도원 회랑에는 성경의 수많은 인물과 무수한 사건들이 새겨져 있다. 회랑은 지금 여기,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세계를 표현해놓았다. 회랑에 들어서는 건 그 세계를 만나는 일이었다. 하나 둘 셋....무수한 기둥과 기둥 사이, 셀 수 없는 조각들이 그 세계로 들어서는 문이었다. 나는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 옛날 여기 살았던 수도승들은 매일 시시각각 이 모든 것들이 건네는 말에도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그때는 비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조언이 지금처럼 외면당하지 않았으니까. 





좋은 수도승은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웃에게 좋지 않은 사람이 좋은 수도승일 리는 없었다. 분명히 예수님은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다. 사랑은 아프게 하지 않는다. 불가피한 아픔은 같이 낫게 해야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주는 건 분명히 알아차려야 한다. 고해의 한세상, 같은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등을 내주고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길동무는 삼인행필유아사, 매 순간 스승이 되어줄 수 있다. 그런데 ‘스승’이 반드시 부드러이, 친절하게, 따뜻하고 좋은 모습이 아닐 때도 있다. 쓰디쓴 반면교사가 우리에게 양약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오늘도 같이 걷는 이가 가장 큰 문제다. 가장 행복하게 할 수도 있지만 지옥을 겪게도 한다.


그래서 옛 수도원에 이 조각상을 새삼 놓았던 걸까? 생트로핌 수도원에는 ‘맹인과 절름발이’ 조각상이 있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 est)라고도 하지만 세네카는 ‘인간은 인간에게 신성하다’(Homo homini sacra res)라고도 했다. 세월이 흐르면 사람들이 달라질까? 그래도 사람들은 한결같을까? 본성이라는 것, 우리 안의 심연을 신뢰하고 싶게 하는 조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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