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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Oct 12. 2023

마르세유


마르세유에 대해선 별 감흥이 없었다. 이 또한 별로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너뛰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제3의 도시,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이미 거대도시였던 마르세유를 건너뛰어도 된다고 생각하다니! 그만큼 내게 이 도시는 관계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또 다시 어떤 관심, 어떤 연결이 시작됐다. 


사실 마르세유가 전혀 관계없는 것도 아니었다. 천주교 신자인 내게 조선에 첫 선교사로 왔던 ‘파리외방전교회’ 회원들의 출항지라는 사실은 결코 작은 의미가 아니다. 


아는 사람은 아는 바와 같이 조선은 참 독특한 나라였다. 그리스도교 종주국인 유럽의 어떤 나라에서 선교를 시작한 게 아니라 학문을 통해 ‘천주님’의 존재를 믿고 ‘천주학쟁이’가 된 사람들이 죽음을 불사한 것이 조선천주교회였다. 신부도 없이 신자들이 책에서 본 대로 기도하고 성사를 집전하다가 그게 잘못된 거라는 걸 알고는 간절하게 사제를 보내달라고 청했다. 이런 놀라운 나라라니, 아마 당시 유럽의 모든 나라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1831년 조선대목구가 설정된 후 1866년 병인박해가 시작될 때까지 21명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가 조선에 입국했다. 그 가운데 조선의 2대 대목구장 앵베르 주교를 비롯해 다블뤼, 베르뇌 주교와 모방, 샤스탕, 프티니콜라, 푸르티에, 오메트르, 위앵, 볼리외, 도리, 브르트니에르 신부 등 12명이 박해로 순교했다. 그들이 바로 여기, 마르세유에서 출항했다. 머나먼 타국, 듣도 보도 못했던 조선이라는 나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스물 혹은 서른 몇 살의 젊은 사제들이 마르세유에서 배를 탔다. 그리고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백 년 전의 일이었다. 



생각하면, 마음이 뜨거워지는 역사의 한순간인데 그보다는 좀 더 개별적인 관심사가 생겼다. 마르세유 항에 있는 빅토르 수도원에 가보고 싶었다. 요한 카시아누스가 세운 프랑스의 첫 수도원이었다. 그의 유해도 이 수도원 지하에 있다고 했다. 무려 천오백 년도 전의 일이다. 

참, 레보드프로방스에 묻혀 있는 쉬아레즈도 마르세유 사람이다. 그는 이 도시 사람들은 굳이 떠나려고 할 필요가 없다고, 이미 마르세유는 보편적인 도시라고 했다. 이 도시 사람들은 떠나려고 할 필요가 없을지 모르지만 이 도시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찾아왔다가 떠났다. 오, 랭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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