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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Oct 16. 2023

지속가능한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_코트다쥐르


프로방스. 눈부시다. 정말 말로만 듣던 프로방스가 눈앞에 있었다. 비 내리는 가을, 멜랑콜리가 프로방스의 진면목은 아닌 것이다. 파도소리마저 찬란한 코트다쥐르, 천천히 걷고 수영을 하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 생을 찬미하듯 무수한 사람들이 찬미하는 코트다쥐르를 지나고 있었다.




프랑스 가을. 비 내리고 우울한 날씨를 거쳐 오며 조금 낙담하기도 했지만 사실 프랑스의 어떤 요소들은 부러움에 떨리게 했다. 정상필의 《메르시 빠빠》를 읽을 때도 들었던 생각들.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사람과 사물들이 늘 부럽다.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그곳에 그것이 있고, 여전히 그곳에 그들이 있는 것 같다. 외가 쪽이든 친가 쪽이든 수십 명의 대가족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기쁘게 만나 편하게 먹고 자며 관계를 이어가고, 할머니가 물려준 식탁에서 거기 둘러앉았던 이들을 기억하며 기억에 기억을 이어간다.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간직해야 할 것은 대를 물려 이어간다. 오래된 것들을 다시 잘 사용하는 것만큼 오래된 사람들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제 몫을 한다.


물론 피터메일도 적나라하게 묘사하듯이 프로방스든 프랑스든 절대 낙원이 아니다. 낙원은커녕 가끔은 속이 터질 만큼 느리고 불편한 사회다. 여전히 많은 것이 아날로그여서 오래 기다리고 오래 참아야 한다. ‘변함없는’ 건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다. 좀 바꿔도 되고, ‘효율적’일 필요가 있는 것들까지 변함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변함없는’ 프로방스에서 문득, 우리가 겪고 사는 속도가, 어제 있었던 것이 오늘,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가 되는 그런 변화가, “우리를 두렵게 하고 절망하게 하고 생의 줄을 놓아버리게 하는 ‘환경’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뭔가가 사라지는 속도, 소멸하는 속도, 그리고 망각해야 하는 속도,의 불협화음이 어떤 이들에게는 불행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 아닐까” 싶어졌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언제든 돌아가도 익숙한, 낯익은, 그 자체로 정다운, 어딘가가 사라지고 있다. 한결같은 것이 없는 삶은 너무 지친다. 매일 매 시간 새로운 것에 노출된다. 내가 알았던 것들은 효능을 잃는다. 내가 할 게 없다. 내가 너에게 뭘 해 줄 수 없을 때 문제가 생긴다. 부모가 자녀에게 뭘 못 해줄 때, 어른이 젊은이에게 해 줄 게 없을 때 문제가 생긴다.

내가 알았던 기도, 내가 아는 노래, 내가 배운 공부가 너에게 의미가 되지 못할 때 우리 사이에는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할까. 우리 세대를 키워온 것들이 새로운 세대에게는 별로 의미를 얻지 못한다. 공감이 점점 어려워진다. 어른들이 줄 게 없어져버렸다. 다들 나름 수고하며 살아왔음에도 마치 빈털터리 같은 가난한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그 가난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어른들을 존중하고 존경해야 할 이유를 못 찾는 젊은이들이 있다. 속도는 누군가를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 이게 정말 모두 우리의 ‘속도’ 때문이다....


프로방스는 언제나 아름답다. ‘언제나’라는 것! 백 년 전에도 어제도 오늘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공감한다는 건 너무나 부러운 일이다. 우리 도시에는 아름다운 무엇이 존속하는가? 어제 있었던 것이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지만 1년생이다. 우리에게는 지속되는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우리를 위해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장을 조금 고쳐야 할 것 같다. ‘지속가능한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라고!     


이 순간도 세상은 변하고 있다. 어디든 변화 없는 시간은 없다. 하지만 프로방스에서는, 프랑스에서는 지속되는 기억 역시 찾을 수 있다. 공동의 기억이 사라진다는 건 뿌리가 삭는 것과도 같지 않은가. 그래서 자꾸 위태롭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내가 유독, 내 개인적 갈망이 조금 더 간절한 것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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