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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Oct 15. 2023

니체에게 물어볼까, 아모르파티

_에즈


니체가 걸었다는 산책로가 있었다. 그리로도 접어들고 싶었지만 못 가고 말았다. 루 살로메에게 실연을 하고 햇살 좋은 코트다쥐르로 떠나온 니체는 에즈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3편의 핵심이 되는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저 바다와, 편치만은 않은 흙길과 하늘과 바람, 이 마을의 대기 속에서 그는 영원회귀를 더 깊이 명상했겠다.

영원이라, 영원이라. 니체는 어디에서 영원을 만났을까. 영원을 보려면, 알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영원을 생각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영원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데 그의 영원회귀는 사람이 죽으면 ‘영원으로 회귀한다’는 것인가, ‘영원히 어떤 생이 반복된다’는 것인가. 말하자면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인가,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가 있다는 것인가.

내가 생각할 때 ‘영원한 생명’은 불교의 ‘해탈’이다. 윤회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생의 결과다. 더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성공한 생이다. 우로보로스처럼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반복되는 삶이란 시시프스가 받는 벌과 같은 것 아닐까? 인생이 일회적이라는 사실은 회한이기도 하지만 다행이기도 하다. 석가모니 말씀처럼 쓰디쓴 ‘고해’인 생을 여러 번 살기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생에 지친 사람들이 있다.



고흐가 그랬듯이 니체도 살아서는 말도 못하게 고달팠다. 에즈에 왔을 때 니체 역시 책이 별로 팔리지 않는 오래된 무명이었다. 그는 쓰라린 가슴으로 매일 기슭을 오르내리며 바다를 만났다. 그래서 어떤 날은 보았다. “석양이 질 때, 황금의 찬란함이 바다에 퍼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즈는 ‘찢어지게 가난한 어부라도 황금으로 된 노를 젓는’ 바다를 갖고 있었다. 바다를 보며 그는 ‘영원’에 주파수를 맞추고 걸었다. 그래서 그도 건져냈다. 아모르파티든 영원회귀든!


영원회귀는 끝이 없다. 그야말로 우로보로스다. 시시포스가 된다. 그러니 탄식할 이유도 없다. 의문을 가져봐야 답을 얻을 수 없다. 받아들이는 것, 이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리고 춤을 추는 것이다. 모든 생각이 멈출 때까지.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

-알프레드 디 수자  


짜라투스투라가 말하는 걸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이런 말은 고개가 끄덕여진다.      


.....거기서 인간은 다리이지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다음날의 찬란한 새벽에 이르는 길목과 같은 존재이기에
정오와 저녁을 기쁘게 즐기는 게 인간이란 것을 알았어....


이것이 아모르파티인가. 인생을 사랑하는 자세인가. 그가 오늘 저 길을 산책하고 있다면 나는 물어볼 수 있었을까?  

   


거절당한 사랑 때문에 숨이 막히는 당신, 모든 일이 마음 같지 않아 절망스러운 당신, 우울의 늪에서 다시 햇빛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당신, 에즈에 간다면 불사조 문장을 보시라. 거기 쓰인 문구, ‘나는 죽음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에즈의 모토에 고개 끄덕이며 니체가 걷던 길을 걸어보시라. 그가 걸은 울퉁불퉁한 길, 그가 바라본 저 푸른 지중해, 그의 목덜미를 스쳤을 바람과 살랑이는 나뭇잎 소리. 뭔가가 당신에게도 힘이 될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의 아모르파티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다. 좀 말이 안 된다. 너무 어렵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생을 수용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고통 덕분에 삶을 사랑하라니. 그래서 그는 초인이다. 니체의 초인이다.   


오늘 하루, ‘운명을 사랑했는가?’ 있는 그대로, 다가오는 그대로 운명을 받아들였는가? 그걸 묻는 시간이 되도 좋겠다.

나도 그가 에즈에서 그런 것처럼 ‘잘 자고 많이 웃고 건강해지고’ 싶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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