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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Oct 15. 2023

신들의 제단이 있었다는 건, 거기 오래 머물렀다는 건

_에즈


흔히 ‘중세 마을’이라고 하지만 에즈의 나이는 더 오래됐다. 에즈라는 이름부터 이집트 신화의 이시스 여신에서 왔다고 한다. 에즈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시의 모토에도 이시스 신의 베일이 드리워져 있었다. ‘죽음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난다’ Isis Moriendo Renascor는 모토와 함께 불사조가 뼈 위에 그려졌다. 페니키아 사람들이 이시스 여신을 기렸던 성소에 지금은 ‘성모승천성당’이 있다. 이 성당 안에서 언뜻 이집트 십자가 앙크를 본 것도 같다.      




가장 아름다운 건 꼭대기에 만들어놓은 열대 정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발걸음이 초입에서 멈췄다. 초입이라기에는 ‘니체의 산책로’ 이정표를 지난 마을 복판이었다. 옛 성의 폐허와 마을 기슭 사이 언덕, 바로 그 어디쯤이었다. 좁은 골목에 드리워진 돌 아치 지붕 아래로 빛이 흘러나오는 곳. 나는 그리로 들어가고 싶었다. 일행이 또 좁은 길, 좁은 계단을 올라 정원을 보러 간 사이에 나는 그 빛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깊고도 긴 어둠을 만났다.


오래된 성당의 무수히 낡은 성화들. 어딘가는 아늑한 숨결이 느껴졌다. 또 어느 구석에서는 누군가의 고통이 느껴졌다. 이 마을 사람들의 하루하루, 한 해의 시작과 끝, 특별한 어떤 날들, 가족의 애경사와 성인들의 축일. 성당에 가득한 성화와 트롱푀이유들은 그 날들을 담은 기록이리라. 이제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의 특별한 순간들이 크고 작은 기록으로 남아있는 성당에서 위로를 얻어야 할까 허무에 빠져야 할까. 성당은 보수를 위해 헌금을 요청하고 있었다. 늙어가는 교회였다.



원래 이시스 여신을 위한 성소였다는 곳에 지어진 성당이었다. 고대부터 사람들은 녹록치 않은 인생을 기대기 위해 신들을 찾고 불렀다. 함께해달라고, 도와달라고, 힘을 주라고!


신의 자리가 있었다는 건, 탄원해야 했다는 것이다. 신을 숭배하지 않고는, 기댈 언덕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시스 여신이었든 또 다른 누구였든. 그 자리에 성모마리아를 기념하는 성당이 들어섰을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여신을 찾던 심정으로, 그 열망으로, 그렇게 찾아야 했던 사람들의 날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도 거기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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