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아인 Oct 15. 2023

이토록 낯선 사랑

_페트라르카


클레멘스 6세 교황 시절 이탈리아 인문학자 페트라르카가 잠시 아비뇽에서 일했다. 그는 ‘사실상 르네상스 시대를 연 최초의 인문주의자, 최후의 중세인이자 동시에 최초의 르네상스인’으로 평가받는 시인이자 정치가이기도 하다. 그는 교황청의 타락을 고발하고 로마 귀환을 원치 않는 상황을 비난하며 아비뇽을 떠났다. 그가 <칸초니에레(Canzoniere)>에서 당시 상황을 유다 민족의 바빌론 유수로 비유해서 ‘아비뇽 유수’라고 불리게 되었다고도 한다. 그는 이렇게 비난했다.


고통의 샘, 분노의 주거지, 죄악의 교습소이며 이단의 신전,
과거의 로마요, 지금은 위선과 악의 바빌로니아,
이 때문에 모두 한없이 울고 한숨짓네….

<칸초니에레 138>


중세가 암흑기였다는 지독한 악명을 뒤집어쓴 것 역시 페트라르카 때문이었다. 그는 멸망한 고대 로마를 문화의 빛나는 시절로 생각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자신이 살고 있던 ‘중세’에서 결핍을 보았던 것인가 싶다. 근래에 들어서는 ‘중세 암흑기’라는 표현이 줄어들고 있지만 특히 가톨릭교회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때는 여전히 상투적으로 중세가 암흑기였다는 표현을 한다.     

 

그런데 《칸초니에레》는 고발 시집이 아니다. 오히려 360여 편 가운데 대부분이 평생을 사로잡힌 한 여성에 대한 사랑의 시여서‘현대 서정시’를 열었다는 평을 듣는 작품이다.      




거의 700년이 다 되어가는 1327년의 봄날, 꽃피는 4월의 성 금요일,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보았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날을 기억하는 성 금요일에 그 남자의 삶을 때때로 ‘성 금요일'의 비탄으로 몰고 가는 만남이었다. 아비뇽 성 글라라 성당에서 시작된 이 고독한 바라봄은 그 여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멈출 줄 몰랐다. 베아트리체에 대한 단테의 사랑이 겹쳐지는 중세적 열정이다.    


  

저기 어디쯤에서 그들은 만났다


700년 전의 사랑은 낯설어야 맞는 걸까. 단테도 페트라르카도 아무래도 어렵다. 그에게 불후의 명성을 안겨준 서정시집 <칸초니에레> 에는 그 여자, 라우라에 대한 사랑이 애절하게도 박혀 있다. 물론 366편의 시가 모두 그녀를 향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부분이 그 잡히지 않는 사랑, 잡힐 수 없는 사랑, 허공에 손 내미는 사랑으로 가득하다. 700년 전에나 가능한 사랑. 어찌 보면 안타깝지만 어찌 보면 두렵기도 하다. 어떻게 평생을, 손잡을 수도 없고, 안을 수도 없고, 함께할 수도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을까. 그것도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인 여자를.    

  

그런 ‘사랑'이 있었다. 그런 사랑의 고뇌를 담은 기록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이 ‘사랑'은 아마도, 필시 트루바두르(troubadour)적인 것 아닐까. 서로 마음을 나누며 동행하고자 하는 현세적인 사랑이 아니라 성모마리아에게 그렇듯 우러러보고 숭배하는 사랑. 단지 하늘의 별처럼 눈부신 꽃처럼 자신의 인생에 그런 존재로서 품고 가는, 그런 가치를 부여하는 동경 혹은 선망. 그렇지 않고서야 왜 이뤄질 수도 없는 여성에게 온 생을 바치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그런 거라면, 이미 사랑의 성취 같은 목적도 없는 그런 열정이라면 시집 전체에 흐르는 뜨거운 고통은 대체 뭐란 말인가. 어쩌자고 ‘겨울에는 뜨겁고 한여름에는 떨고' 있단 말인가. 사람이 하늘의 별을 못 딴다고 그렇게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다른 남자의 아내였기 때문에도 애초에 얻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페트라르카는 라우라가 살아 있을 때는 한 하늘 아래 살고 있음에 괴로웠고, 라우라가 흑사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가 세상에 없기에 괴로워한다.

물론 어떤 시에서는 아주 먼 훗날, 혹시 라우라가 사랑을 받아들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가능성이 희박한 소망이었다.


아비뇽에 가면 그들이 운명적으로 만났던 성 글라라 성당을 찾아보고 싶었는데 이젠 공연장이 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무대에 올리는 공연장에서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상기해보는 것도 어울리는 일 같긴 하다.      

이전 12화 아비뇽 교황청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