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아인 Oct 16. 2023

방스 마티스 채플

방스 마티스 채플

방스의 오후. 가끔은 계획이 틀어져서 또 다른 만남이 생긴다. 방스도 그랬다. 늦게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후 네 시쯤 방스에 닿았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찾아갈 곳이 있었다. 아주 당연한 생각이었다. 못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열려있을 시간이니 가야 했다. 마티스채플.


아주 작은 호텔 데스크에 은발이 멋진 주인할머니가 계셨다. 친절하게 채플을 알려주며 지도도 손에 쥐어주었다. 크지 않은 마을이니 헤맬 것도 없었다. 길을 가다 보니 이정표도 보였다. 채플로 가는 길에서 방스가 한눈에 건너다보였다. 푸른 나무들 저 너머로 또 언덕 위의 성곽 마을. 프랑수아1세가 심었다는 물푸레나무도 저 언덕 위에 있을 것이다.


주택가 골목을 걸어 마티스채플, 로사리오성당을 찾았다. 아주 평범하고 소박한 한 건물에 표지가 있었다. 대체 뭐가 그렇게 놀랄 만하다는 걸까. 채플에 들어서면서 좀 두근거렸다. 워낙 유명세를 얻은 곳이어서 기대도 커졌다.      



이 작은 ‘성소’에도 사람과 사람 이야기가 있다. 1941년에 암 진단을 받은 마티스는 간병인으로 ‘젊고 예쁜’ 간호사를 찾는다고 광고했다. 그때 만났던 간병인 모니크 부르주아가 몇 년 후 바로 여기, 방스에 있는 도미니코수녀회에 들어갔다. 전쟁 중에 마티스가 살고 있던 니스가 독일군의 폭격 위험에 노출되자 그는 니스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인 방스에 집을 구해 왔다. ‘자크 마리’ 수녀가 사는 수녀원 가까운 곳이었다. 마티스는 수녀가 된 간병인과 기쁘게 조우했다. 얼마 후 자크 마리는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여고 옆에 작은 성당을 지을 거라며 설계를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마티스는 아주 흔쾌히 그리고 아주 전폭적으로 이 일에 매달렸다. 거의 무신론자 같았던 마티스가 사람 때문에 가톨릭교회의 성소를 지었다.




그는 성당의 모든 것을 자신의 영혼을 담아 자기 손으로 마련했다. 제단의 십자가와 촛대부터 파랑과 노랑과 녹색, 세 가지 색만 사용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전례주기에 맞춘 전례복도 준비했다.

이미 나이가 많았던 데다 큰 수술의 후유증까지 계속돼 오래 붓을 들고 작업하기가 어려웠지만 마티스는 새로운 즐거움을 찾았다. 앉아서도 누워서도 할 수 있는 ‘종이오리기’ 기법으로 그는 또 한 번 놀라운 세계를 창조해놓았다.



마티스가 죽음 직전에 남겨놓은 이 작은 채플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반응이 저마다 다른 것 같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마티스의 영성을 만난다고도 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의 세계가 얼마나 다각도의 얼굴을 갖고 있는지를 말하는 것 같다. 사람들의 이런저런 평가를 떠나서, 저간의 사정을 알 수 없지만 모든 과정이 수월치만은 않았을 거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 ‘무신론적인’ 거장과 보수적인 도미니코수녀회는 당연히 서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 사이에서 제일 힘들었던 건 자크 마리 수녀였을 것이다.


그 힘듦의 흔적이 채플에 남아 있다. 도미니코수녀원과 마주보고 있는 채플 서쪽 벽에는 하얀 바탕에 거의 명확하게 누드가 그려져 있다. 선 굵은 드로잉 누드는 신선하고 무죄해 보였지만 수녀원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마티스는 뭘 말하고 싶었을까. 수녀원에서는 어떻게 이걸 용납했을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또 분명한 건 이 작은 성소가 사랑의 응답, 사랑의 수고였다는 점이다. 성당이 완공돼 봉헌하던 날 마티스는 아파서 참석하지 못하고 대신 글을 썼다

“나는 아름다움을 찾는 대신 진실을 찾았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방스의 도미니코수녀회 로사리오 경당을 소개합니다 …모든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는 새처럼 마티스의 마지막 ‘작품’은 하얗고 붉고 반짝이는 원색의 창조, 태초의 순간을 가장 선하고 고귀하게 노래했다. 그는 하느님의 창세기를 말하고자 한 게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창조할 수 있는 세계 안에서 이 순간에 놀랄 것이다.


저토록 천진한, 저토록 순수한 첫영성체 분위기. 노인이 만들어놓은 세상이 이렇게 동심 가득하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문득 어떤 희망의 싹이 움트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예술가에게 이런 세계가 가능하다면 우리에게도 가능한 것 아닐까, 그런 희망을 가져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당신도, 마음을 보아야지. 마음을 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세상이다. 그래도 마음을 보아야지.

마음을 보는 사람은 슬프다. 우리들의 마음이 늘 고되고 늘 지치고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을 봐야 하는 건 그래야 그 슬픔의 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한마디라도 함께 노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당신, 함께 가고 싶어서다.

방스 마티스 채플

이전 16화 지속가능한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