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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일기 Sep 18. 2024

운수 좋은 날


이혼을 하고 다시 1년이 흘렀다. X에게 돈을 받아야 될 날짜는 다가오는데 X는 나에게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았다. 초조했다. 이혼을 해도 늘 마음 한 구석은 불안했다. 전세계약이 끝나도 집주인이 보증금을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X가 설사 보증금을 받아도 나에게 돈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날짜가 다가올수록 내 마음은 초조해졌다. X는 1년 전까지만 해도 온갖 협박과 괴롭힘으로 나를 늘 힘들게 했었다. 그깟 돈이 뭐라고. 돈은 나를 참 비굴하게 만들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나는 그 돈이 필요했다. 하루빨리 독립해서 나만의 삶을 꾸려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X로부터 영원히 벗어나고 싶었다. 그 돈 문제만 해결된다면 나는 자유였다.


약속한 날이 되기 2주일 전쯤, 나는 X에게 카톡을 보냈다. 2주일 뒤가 우리가 약속한 날이니 꼭 내 돈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며 내 계좌번호를 남겼다. 혹시나 X가 또 잠수를 타거나, 나를 위협하거나, 모든 것들을 거부한다면 나는 변호사라도 선임할 생각이었다. 변호사를 선임해서 위자료까지 전부 받아내리라. 이제는 순순히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X가 무례하게 행동한다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다. 혹시나 끌려가더라도 나는 X의 회사 앞에서 시위라도 할 작정이었다. 나를 괴롭힌다면 나 역시 너를 아는 모든 이들 앞에서 망신을 주리라. 나는 X가 그것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구치소에서 나온 직후 X는 자신의 과거를 아는 모든 사람과의 연락을 끊었다. 탄원서를 써줬던 가장 친한 친구조차도. 지금 X는 자신의 연인에게도, 직장 동료에게도 모든 사실을 감추고 있을 것이다. 범죄기록증명서를 떼지 않는 이상 영원히 묻힐 일이다. 어느 누가 자신이 범죄자라고 떠벌리겠는가.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나다. 현재 집행유예 기간 중인 X는 몸을 사려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안다. X가 재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도. 


사람에게 지켜야 될 것이 생기면 행동 거지 하나, 말 한마디 더 조심하게 된다. 2년 전의 X가 미친놈처럼 칼춤을 췄던 건 자신의 인생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X의 과거는 깨끗하게 세탁됐고 사랑스러운 여자친구가 있으며 자신의 업적을 세울 직장까지 있다. X는 나로부터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지켜야 했다.  


X로부터 바로 답장이 올 거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주 빠르게 'ㅇㅇ'이라고 답장이 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주 뒤, X는 다시 한번 내 계좌번호를 물었고 정확히 12시에 내 돈을 입금했다. 혹시나 싶어 X와의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던 나는 조금 허탈했다. 너무 쉽게 이렇게 돈을 보낼 줄은 몰랐다. 나는 고맙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래도 이래나 저래나 좋았다. 돈을 받아서가 아니라 이제 X에게 그 어떤 것으로도 협박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쁘고 좋았다. 억지로 카톡 하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 X를 차단할 수 있게 됐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그 후로도 종종 X는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안부인사와 같은 간단한 것들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X를 그 즉시 차단하지 못했다. 여러 종류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두려운 마음과 궁금한 마음과 증오와 미련이 섞인 기묘한 마음. 나는 작년에야 비로소 X를 차단했고 X 역시 나를 차단함으로써 우리의 길고 긴 관계는 끝이 났다. 


X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보냈던 카톡 내용이 기억이 난다. 자신이 취미 삼아 하는 운동이 있는데 너무 잘해서 경기장에서 상을 받았다고. 상장을 이미지로 보내며 자신을 축하해 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어이가 없어서 보자마자 그 즉시 차단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 Vitaly Tara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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