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X는 간간히 연락을 해왔다. 대부분이 잘 지내냐는 안부형식의 카톡이었는데 나는 가끔 답장을 했지만 대부분을 그냥 읽고 무시했다. 다행스럽게도 예전처럼 자살 협박이나 비아냥거리는 카톡은 더 이상 보내지 않는다. 나름 X 또한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X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현 여자친구한테 충실할 일이지 왜 나한테 자꾸 연락을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X는 나와 결혼생활 중에도 그런 일을 반복했었다. 나와 싸우면 몰래 전 여자친구 또는 첫사랑과 카톡을 하며 그 스릴을 즐겼다. 나는 지금 그 스릴의 주인공이 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결혼했을 때 X는 한 개발자 커뮤니티에 가입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가입자들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병아리 같은 사회초년생들이었는데 X는 그 커뮤니티의 그룹장으로 활동했었다. 특히나 20대 초반 여자들이 많아 X는 매주 그곳에 가는 것을 즐거워했다. X는 자신이 결혼한 것을 당당하게 밝혔다. 그리고 가끔은 능글맞게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며 '장난이야'라는 행동을 반복했다. 살짝 미끼를 던져서 여자가 그 미끼를 물면 월척이고 만약 여자가 거절하면 어차피 자신은 유부남이어서 '장난이었다'라고 말해버리면 그만이었다. 가끔은 농담 식으로 음담패설도 했다. 후에 그 이야기들은 같은 커뮤니티에서 활동했었던 한 여자로부터 들었다.
나는 X가 바람을 피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X는 여자를 무척 좋아했지만 X의 이목구비는 여자들을 홀릴 만큼의 수준이 되지 못했다. 센스도 없고 유머감각도 없고 뭐 하나 특출 난 게 없는 X를 여자들이 거들떠보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나는 확신했다. 그래서 나는 X가 커뮤니티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와도 안심했다. 커뮤니티에 있었던 여자들은 어렸지만 영리했고 X가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파악했다. 그래서 X의 수법에 놀아나는 대신, X를 놀려대는 것으로 관계를 유지했다. X는 놀림을 받는 것조차도 즐거워했다. X는 그곳에서 꽤 오랫동안 활동을 했다. X는 개발을 잘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가르치며 자존감을 높여갔다. 가르칠 때만큼은 X는 천하무적이 되었다.
X는 나와 관계가 어그러질 때마다 커뮤니티에서 친했던 여자들을 일대일로 만났다. 물론 그들은 X를 친구나 동료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X는 나와 직접적으로 대면해 싸움을 해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대신 여자들을 만나 술을 마시며 내 험담을 하고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친구든, 동료든, 전여자친구든, 첫사랑이든. 여자라면 다 해당됐다. X는 늘 아슬아슬하게 줄을 탔다. 그녀들을 만날 때마다 루프탑에 분위기가 묘한 와인바에 데려갔다. 순간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그녀들은 그렇게 한 번의 만남을 끝으로 더 이상 만나지 않거나 연락만 주고받았다. X가 만약 잘생겼었다면 X는 수백번의 바람을 피웠을 것이다.
X는 연애시절에도 그랬었다. 한 사람과의 만남에 집중하지 못했다. 안전하게 보험으로 여자를 여러 명 주변에 두었다. 그리고 관계 하나가 망가지면 그 관계를 회복하는 대신 재빨리 다른 관계로 바꿔 올라탔다. 사람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는 대신 회피했다. 그리고 도망쳤다.
가끔 X가 나에게 카톡을 할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지금 여자친구랑 싸우고 있구나. 그래서 나에게 연락하고 있구나. 나는 지금 X의 보험이구나라고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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