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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일기 Sep 16. 2024

이혼하는 날


한 달의 조정기간이 끝나고 드디어 X와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오늘은 X를 끌고 법원도 가야 되고 공증사무소도 가야 되고 구청도 가야 한다. 벌써부터 험난한 날이 예상된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안 나오려는 X를 겨우 다독여 바깥으로 끌어냈다. 오랜만에 만난 X는 모습이 많이 달라 보였다. 안 하던 파마를 하고 옷차림도 달라져 있었고 무엇보다도 담배 냄새가 심하게 났다. X의 말로는 하루에 2갑 이상을 핀다고 했다. 지난밤 내내 집에서 개발을 하다가 나왔다고 했다. 눈동자가 무척이나 탁해 보였다. 나는 일주일 전부터 X에게 등본과 여러 증명서들을 떼오라고 말했었다. 요청한 서류를 준비해 왔냐고 묻는 나에게 자신이 왜 그런 귀찮은 짓까지 해야 하냐면서 나보고 다하라고 했다. 한숨이 나왔다. 예상했던 결과다. 이렇게 나와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우선 X를 끌고 공증사무소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X는 돈 관련 서류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해 큰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담당 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무례했다. 불량한 태도로 앉아 직원을 무시하고 하대했다. 직원은 당황했다. 마음이 또 초조해졌다. 이 중 누가 하나라도 화를 내고 싸움을 벌인다면 모든 일은 물거품이 되리라. 나는 아이 달래듯, X를 다독여가며 서류에 사인하게 했다.


'1년 뒤,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받으면 은행빚을 갚고 나머지 잔금을 반반으로 나눌 것.'


그 내용을 서류로 만들어 X와 내가 서로 사인을 하고 공증을 받았다. 수수료는 약 10만 원 정도 했고 물론 내가 그 금액을 냈다. 드디어 한고비 넘겼다. 이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1년 뒤 내가 돈을 못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X 역시 이런 공증 서류에 대한 중요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으로 넘어가기 전 약간의 시간이 남아 X와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기로 했다.


우리가 만나는 마지막 날인데도 불구하고 X는 마지막까지 참 거만했다. 여전히 내가 하는 말에 비아냥거렸고 비웃었으며 나를 무시했다. X는 자신에게 고마워하라고 했다. 여기까지 나오는 게 자신에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구구절절이 설명했다.


X는 현재 개발팀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매달 통신비, 교통비, 교육비까지 전부 지원 받는다고 했고 분기마다 휴가비를 받아 여행을 자주 다닌다고 했다. 최근에는 오토바이를 구매했다고 자랑했다.


나는 1년 전 X가 구치소에서 나에게 써 주었던 반성문을 가지고 나와 X에게 보여주었다. X에게 더 이상 이것은 나에게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돌려주고 싶어서 가지고 나왔다고 말했다. X는 반성문을 받자마자 내 앞에서 전부 찢어버렸다. 자신에게도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구치소에 있을 당시, X는 울면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내가 원하는 것은 다 해준다고 했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X는 또다시 나르시시스트 X로 돌아와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 카페에 있었던 30분 동안 나는 지난 결혼시절 겪었던 모욕과 수모를 전부 겪었다. 미련이 싹 사라졌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법원으로 향했다.


일단 X의 등본 및 여러 가지 서류를 뽑기 위해 법원 앞에 있는 자동출력기계로 갔다. 지문 인식으로 서류를 뽑아야 되는데 X의 지문이 인식되지 않아 계속 실패가 떴다. 30분 간을 반복한 끝에 겨우 서류를 떼고 기계로도 출력이 안 되는 서류는 10분 거리에 있는 동사무소로 걸어가 서류를 새로 발급받았다. 나는 초조하고 살짝 화가 난 상태였었다. 가뜩이나 예민해져 있는데 X의 무례한 태도는 나의 화를 더 돋구었다. X가 그런 나의 상태를 알아차린 걸까? 갑자기 내 눈치를 보더니 말을 조심하기 시작했다.


모든 서류를 들고 X를 데리고 다시 법원에 갔다. 그 후부터는 일이 수월했다. 단지 그 큰 공간에 수많이 사람들이 몰려와 이혼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 3명의 심사관 앞에서 이혼이 확정되는 것이 단 1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에 놀랐다. X와의 관계가 드디어 끝났다는 사실에 기쁘면서도 뭔가 허무했다. 마지막으로 구청에 가서 신고만 하면 이제 완벽히 우리의 사이가 끝난다고 했다. 구청은 나 혼자 가서 신고해도 된다고 하니 X와 나는 여기서 헤어지기로 했다.


X에게 잘 지내라고 하고 버스에 올라타니 X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핸드폰을 보는 척하며 애써 외면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가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X가 돈만 제대로 보내준다면.


구청에 가서 이혼 사실을 신고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구청을 나서자마자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일이 무사히 끝났음을 알렸다. 언니는 너무나 다행이라면서 기뻐해줬고 이제부터 너의 삶을 살라는 말을 해주었다. 나도 모르게 길거리에서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드디어 벗어났다. 드디어. 사건 발생 후 1년이 지나서야 나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 Aditya Sax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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