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프로젝트_#3. 을지로도 그렇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신당동에서 상도동으로 이사를 왔다.
지금은 보기 어려운 풍경이지만 그 시절 동네 골목의 오후는
학교 갔다 온 또래의 아이들이 다방구나 얼음-땡 놀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로 활기가 넘쳤다.
엄마가 잠시 집을 비울 때면, 그 틈을 타
친구들과 프라이팬에 밀가루떡을 구워 먹기도 했다.
집에서 한 정거장쯤 되는 장승백이에 시장이 하나 있었다.
빵집도 있고, 옷 가게, 칼국수 집도 있고, 레코드 가게 앞도 지나는 시장 가는 길은
컴퓨터, 스마트폰,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즐거운 산책로이자 구경거리였다.
집에서 장승백이 시장에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골목이 있었다.
여름철 비가 쏟아지면 지붕을 타고 내려온 빗물이 개울처럼 좁은 골목에 흘렀다.
우산을 써도 어차피 젖을 바에야 신발 벗어 들고 콧노래 흥얼거리며
맨발로 골목을 폴짝폴짝 뛰어다니기도 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그 골목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 눈에 가끔 TV 화면에서 보는 외국의 반듯하고 정리된 길이 너무나 근사해 보였고
꼬불꼬불한 동네 골목, 낡은 지붕, 낡은 대문, 오래된 가게들의 풍경이
볼품없고 지저분하다고, 싹 밀고 새로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원이 되어서도 차 막히고 복잡한 을지로를 지날 때면 같은 생각을 했다.
세월을 겪어낸, 있는 그대로의 우리 골목의 아름다움에 눈을 뜬 것은 나이가 아주 많이 들어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유명한 시 구절처럼
우리 골목도, 을지로도 그렇다.
을지로 인쇄골목, 2016년 5월에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