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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의 그늘 Jul 06. 2023

매주 도서관 가는 일기: 후회 방지 대화 사전

23.05.13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말하기’이다. 최근 회사에서 후배를 양성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조직에서 늘 막내 역할을 하다가 선배 노릇을 하려니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쓸데없는 잔소리 같고, 지나치게 꼰대 같지 않았나 하루 종일 했던 말을 되새김질하고…. 이러다간 본래의 업무에 영향을 받을 것 같아 책으로 긴급 처방에 나선 것이 일주일이다.


지난주에는 <어른의 문장력>을 오디오북으로 듣고 도움을 많이 받은 참이다. 문장 쓰기에 대한 조언을 듣다 보니 말하기에 대한 조언도 듣고 싶어졌다. 말하기에 관한 책들이 모여있는 서고에서 한참을 헤맸다. 마음에 드는 제목을 찾기가 무척 힘들었기 때문인데, 도대체 하버드에서 말하는 방식을 내가 왜 따라 해야 하나 싶었다. 왜 다들 하버드 학생처럼 말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어 하는 걸까? 문화권도 다를 텐데 말이다.




<후회 방지 대화 사전>은 그중에서도 “내가 알려주는 대로 하시오!”하지 않는, 담백한 태도의 책 등을 찾아 고른 책이다. 나는 테드 강연에 나가 스피치를 하려는 사람이 아닌 평범한 대화에서 실수를 줄이고 싶었던 일반인이니까. ‘사전’은 내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 것이 장점인 법이다.


책은 대화 중에 저지르기 쉬운 ‘미운 말’을 사전처럼 엮어 말 뒤에 숨겨진 숨은 뜻을 해석해 준다. 디테일한 상황 설정도 있고, 적절한 대체어가 있는 경우에도 알려준다. (그야말로 사전인데, 근데 이제 읽기 쉽고 재미있는.) 장마다 후각, 청각, 미각, 촉각으로 미운 말들이 분류되어 있는데 사실 분류 기준은 잘 모르겠다.




누가 들어도 기분 나쁜 미운 말이 있는가 하면, 숨겨진 의도를 해석해야만 ‘기분이 나빴어야 했구나!’싶은 말들도 있다.


예를 들어 “기분 나쁘게 듣지 마.”는 누가 들어도 기분 나쁠 말을 하겠다는 선언이므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내가 이런 말로 나의 공격성을 정당화하진 않았는지 돌아보았다.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반면 겸손의 미덕으로 여겨왔던 “저는 운이 좋았어요.   아니에요.”라는 말은 나를 칭찬해  사람의 안목까지 존중하지 않는 말이라는 대목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실제로 나는 평소에 “운이 좋았다 말을 많이 하고, “맨날 운이었대!”라는 답변을 들은 적도 많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나를 지나치게 낮추면 나를 칭찬하는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도 함께 낮아진다는 말이 맞다. 그러니 앞으로는 이렇게 말하기로 다짐했다.


“감사합니다. 00 씨는 저에 비하면 더 잘할 수 있어요. 제가 기회가 닿아 먼저 했을 뿐.”


그 외에도 “무슨 안 좋은 일 있어?”라는 말에는 “네 얼굴 말이야. 오늘따라 보기 불편한데?” 가 숨어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상대방의 외모를 근거로 뱉은 말이기 때문에 좋은 대화법은 아니다. 그런데도 상대방의 낯빛을 가지고 한마디 하고 싶다면 이렇게 말하면 되겠다.


“좋아 보이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는데,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어서 화도 못 내고 지나쳤던 상황이 있는가? 나는 많다. 몹시 예민한 데다 소심하기까지 해서 ‘왜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따져 묻지 못한 적이 어찌나 많은지.


<후회 방지 대화 사전>은 내 언어 습관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지만, 앞서 언급한 상황에서 내가 왜 기분이 나쁜지 (혹은 나빴어야 했는지)를 확실히 짚고 넘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그냥 솔직하게 말한 거야!”가 기분이 나쁜 이유는 그것이 편향적인 솔직함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경험이나 가치관 중 그 순간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이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솔직했으니 됐잖아! 만큼 책임감 없는 말이 또 있을까 싶었다.



하나 더.


내가 신입 시절 어떤 선배는 뭔가를 알려줄 때마다 “이해됐어?”라고 버릇처럼 되물었다. 책에 나온 사례가 내 이야기인 줄 알 정도로 똑같았다. 참 친절하고 열정적으로 가르쳐주는 선배였는데 이상하게 그분에게는 질문하러 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꼭 다른 선배를 찾아가게 되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나를 믿지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해답을 얻고도 시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거꾸로 선배 역할을 맡게 된 내가 해야 할 말은 “이해했어요?” 대신 “더 궁금한 것 있어요?”라는 것. 메모해 두기.    



위에 나열한 예시 말고도 스스로 뜨끔하는 대목이 아주 많았다. 특히 논쟁에서 이기 위해 빈틈없이 상황을 짜는 박팀장의 사례와, 언쟁에서 내가 계속 이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면 그것은 상대방이 애정으로 나를 이해하고 받아준 것이라는 말은 아주 오래 새겨두어야 할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회사에서 ‘좋은 선배’가 되기 위해 읽은 책이었다. 그러나 후배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더 나은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는 팁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눈치가 꽝인 내가 주변의 부정적 신호를 놓치고 인연까지 놓치게 되기 전에 미리 언행을 조심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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