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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의 그늘 Jul 26. 2023

도서관 가는 일기: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23.05.30




언젠가 인터넷에서 그런 이미지를  적이 있다. ‘ 중에서  하나의 알약만 먹을  있다면? 하는 질문이었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알약, 평생 젊음을 유지할  있는 알약, 하루에 백만 원씩 생기는 알약, 평생  씻어도 깨끗함이 유지되는 알약 등등이 10개쯤 나열되어 있었고 약마다 색깔이 달랐다. 댓글에는 하나만 쉽게 고르지 못하는 사람들의 통탄이 쏟아졌다.



나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알약’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알약’ 중에서 고민했다. 결국 둘 중 하나를 고르지 못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쪼르르 달려가 그들의 선택을 구경했던 것 같다.


지금 찾아보니 버전이 다양하고 새로운 능력들이 추가되긴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등장하는 알약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음’이다.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고 통제하고 싶은 욕구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이 마법 같은 알약을 먹지 않고도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떨까?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짓말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특히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보내는 다양한 신호들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런 신호를 감지했을 때, 혹은 누군가의 거짓말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반응도 함께다.


심리학을 믿지 않는 냉소적인 사람들이라도 걱정 마시길. 260페이지쯤 되는 책 내내 ‘한 가지 신호만 믿고 확신하지 마라!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다!’고 경고하니까. 개인적으로는 이런 저지선이 있어서 더욱 신뢰가 갔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정직을 교육받는다. 어릴 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숨이 새까맣게 묘사되는 동화책을 읽은 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당시의 급훈이나 가훈은 항상 ‘정직할 것’을 품고 있었다. 거짓말은 하면 안 되는 것, 악행으로 분류된다. 나 역시 거짓말에 대한 약간의 강박이 있다. 조금이라도 허풍을 치고 나면 괴로움에 머리를 쥐어뜯고는 한다. 아,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 걸! 이런 사람이 나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 모든 거짓말은 나쁜 것일까?


영화 <거짓말의 발명>을 본 적이 있으신지. 이 영화는 거짓말이 없는 세상을 묘사한다. 거짓말이 없다니, 천국과도 같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글쎄. 권고사직을 당한 동료에게 ‘이제 널 안 봐도 되어서 너무 좋아!’하고 말하는 모습은 지나치게 잔인하지 않은가. 그런 곳이 천국일 리가 없다.



저자 모니카는 책의 머리말에서 거짓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말하자면 거짓말은 사회적 관계에서 우리를 묶어주는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접착제다.
(… 중략)
거짓말과 거짓말이 아닌 것은 언제나 온전히 균형의 문제다. 한편 개인적인 정직과 깨끗한 양심은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할 수도 있고, 진실의 조작이 지속적인 조화를 만들 수도 있다. 흑 아니면 백, 선 아니면 악만 존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거짓 아니면 진실만 존재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중요한 것은 거짓말의 다양한 종류를 구분하는 일이다.


거짓말은 단지 그 자체로 시커먼 악이 아니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짓말은 하얀 거짓말, 즉 선의의 거짓말로 구분되고 장려되기까지 한다. 앞서 말한 <거짓말의 발명>에서 주인공 마크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어머니를 위해 천국이 있노라 거짓말한다. 당신은 그 거짓말을 악행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는가?



모니카에게 거짓말을 눈치채는 법을 배우기 전에 우리는 거짓말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해야 한다.


친구가 나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괜찮아’라고 말하는 상황을 마주쳤다고 생각해 보자. 이 책에서 배운 심리 기법을 사용해서 친구가 거짓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거짓말 한 친구를 악인으로 구분 짓고 실망하거나 보복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거짓말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면, 이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신호를 알아볼 차례이다. 솔직히 가장 재밌는 대목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긴장한다. (그야 당연하다) 긴장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분비되는 호르몬이 자율신경계를 통해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 자율 신경계는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과 거짓말이 발각될 까 긴장하는 상황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신체 반응은 일정하다고 한다.   




침을 적게 생산하여 입이 마른다.

목이 잠기기 때문에 헛기침을 한다. 단, 대답 후에 하는 헛기침은 상관이 없다.

홍조를 띠거나 창백해진다.

호흡이 흐트러진다.

식은땀이 난다.

동공이 커진다.


위의 6가지 증상은 대표적인 긴장 중인 신체에서 나타나는 것들이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위의 증상 중 한 두 가지가 포착되었다고 해서, 상대가 무조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냥 내가 너무 좋아서 긴장 중인 것일 수도 있으니까. 이러한 지표는 상황과 맥락에 맞게 도구로써 사용해야 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신호들이 있다. 자세부터 손짓, 발짓,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정말 많은 지표들을 소개하지만 그중 몇 가지만 옮겨 적으려고 한다. 너무 재밌으니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평소 성격에 따라 서 있는 (또는 앉아있는) 자세가 달라진다. 평소 순종적인 사람은 몸을 모아 작게 만드려 하고, 외향적인 사람은 언제든 상체를 모든 방향으로 비틀어 문제를 회피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한다. 냉정한 사람은 언뜻 보기엔 한결같아 보이지만 신체의 무게 중심이 뒤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손짓을 볼까? 손으로 얼굴을 만지는 것은 대표적인 거짓말의 증상이다. (물론 그냥 볼을 긁는 버릇이 있는 사람일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자!) 양손을 깍지를 끼거나 두 손을 서로 잡고 있는데 손가락 마디 주변이 하얗게 되도록 힘을 준 상태일 때는 의심해 봐도 좋다.





이렇게 눈으로 포착할 수 있는 다양한 비언어적 신호가 있는가 하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가진 언어적 신호도 있다.


예컨대 거짓말은 서론이 길고 본론은 짧다. 가능한 감정을 배제하여 말하고 시간이나 장소 등 정확한 디테일을 생략한다. 왜냐면 말하고 나면 일일이 기억해두어야 하니까, 본능적으로 기피하는 것이다.


또 거짓말쟁이들은 확인하는 질문을 지연시킨다. ‘어제 오후에 어디에 있었어?’라는 질문을 받으면 보통 사람들은 ‘어제 오후?’ 라거나 ‘어디에 있었냐고?’ 되묻는다. 실제로 잘 못 들었을 수도 있으니까 여기까지는 가능하다. 그런데 거짓말쟁이들은 ‘어제 오후에 어디에 있었냐고?’ 하는 식으로 되묻는다. 질문을 반복하여 자신이 거짓을 지어낼 시간을 버는 것이다.




책에 나온 기나긴 내용 중에 10%도 옮겨 적지 않았는데 벌써 흥미진진하지 않은지. 당장 카페로 달려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킨 다음 창 밖에서 대화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비언어적 몸짓을 지켜보고 싶어 진다.


하지만 책 한 권 읽었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뛰어난 심리학자가 될 리는 없다. 책에서 알려주는 것은 그야말로 어떤 지표일 뿐이다. 내일 유난히 몸에 열이 많은 친구와 대화하게 된다면 나는 그 친구를 거짓말쟁이로 오해하고 소중한 인연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저자 모니카도 내내 반복해서 주의를 준다. 세상에 완벽하고 확실한 하나의 지표는 없다! 대화하는 상대의 평소 모습, 그러니까 진실을 말할 때 어떤 모습인지 사전에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기억하자. 우리는 프로파일러가 아니다. 단지 책 한 권 재밌게 읽은 독자일 뿐이다.




마지막 파트에서는 거짓말과 거짓말쟁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짓말의 종류는 너무 다양하지만, 평생 선의의 거짓말만 마주하고 살 수는 없다. 누군가는 반드시 악의를 갖고 우리를 속일 것이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속고 나서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를 읽어놓고서는 바보 같이 당하다니!’하고 자책하기? 당연히 그건 바보짓이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권일용이 아니다. 선택지는 두 가지다. 진실을 찾거나, 거짓말쟁이를 용서하거나.



친절하게도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에서는 그 두 가지 방법 모두 알려준다.


진실을 찾기로 했다면, 거짓말쟁이를 앞에 앉혀두고 대화를 해야 할 것이다. 그때 쓸 수 있는 많은 팁이 책에 있다. 이미 너무 길어졌으니 옮겨 적지는 않겠다.


둘째로, 속았음을 인정하고 상대를 용서하는 방법이 있다. … 솔직히 읽기는 했지만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그다지 강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은 없지만, 어쨌거나 누군가 나를 속여 큰 실망을 안겨준다면 ‘용서하기’는 가장 어렵고 곧은 선택지로서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까지는 약속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짓말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거짓말을 사전에 눈치챌 수 있는 기술을 알려주며, 마지막으로 거짓말에 대처하는 법 까지. 아주 넓은 범위를 다룬다. 300페이지가 채 되지 않은 책 한 권에 이렇게 많은 내용을 다 담고 나면 어쨌든 아쉬운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적당한 진지함과 적당한 재미의 비율을 잘 맞췄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요즘은 달콤한 복수를 주제로 한 미디어가 많아서 피로를 느끼던 참이었는데, 마지막에 용서를 권하는 부분에서 다정히 느껴지기까지 했다.





미드 <라이 투 미>를 본 적이 있으신지. 주인공 라이트먼 박사가 이른바 ‘인간 거짓말 탐지기’로 등장하는 수사물이다.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고 거짓말하는 이유까지 밝혀내는 일종의 심리학 기반의 추리 드라마인데 아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능력’ 알약을 먹은 것 같은 사람이 바로 <라이 투 미>의 주인공 라이트먼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능력을 가졌음에도 그는 냉소와 회의에 가득 차있다. 미세한 표정 변화를 알아채는 데에 지나치게 특화되어서 그냥 길을 걷다가도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라이트먼 눈에 계속 잡히기 때문이다. 눈만 돌리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와 아무도 신뢰할 수 없는 삶이라면, 차라리 아무 알약도 먹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우리도 주의해야 한다. 책 한 권으로 터득한 몇 가지 팁에 너무 신이 난 나머지 ‘하! 방금 당신 거짓말했지! 난 다 알고 있어’ 같은 소리를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을 말이다. 우리는 글로 수영을 배웠을 뿐, 물을 다스리는 포세이돈이 될 수는 없다. 그렇게 말하는 우리야말로 남들과 똑같이 거짓말에 의지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음을 반드시 알고 마무리하자.


으음…. 역시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약으로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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