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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의 그늘 Apr 26. 2023

매주 도서관 가는 일기: 우울한 게 아니라 화가 났을

23.03.19



지난주에 굉장히 방탕한  주를 보낸 덕분에 책을 하나도  읽었다. 겨우 스케줄을 조정해 (대부분의 나와의 약속이긴 하지만) 토요일에 빌렸던  권을 겨우 읽고, 오늘은 도서관에 가기 전에 카페에 들러 미처   읽은    권을 읽기로 했다.




<우울한  아니라 화가 났을 >  제목만 봐도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같아서 빌릴까 말까 고민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좋은 책이었다. 무작정 여성들이여, 분노하라!  부추기는 책이 아니라서 어찌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겐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책의 표지가 분홍색이면 이상한 편견을 갖는 못된 버릇이 있다.)




덧붙이자면 여성을 대상으로 하지만 남성 독자 역시 타깃으로 한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대놓고 남성 독자들이여,  시작하는 챕터가 하나 있다.  파트를 읽은 남성이 있다면…. . 당신을 존경합니다.   







사실상 여성과는 관계가 없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책은 개개인의 분노가 어떻게 억눌리는지, 억눌린 분노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에 대한 내용이다. “화는 나쁜 것이고 화를 내면 미움을 받는다”는 인생 각본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여성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나? 아니라면 충격이다. 나는 읽는 내내 모두가 이렇지 않단 말이야?라는 질문에 휩싸여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분노란 무엇인가?


내게 있어 분노란 순간적으로 폭발해 버리는 어떤 것이다. 나는 예민하고, 화를  내고, 때때로 분노에 차오르면 잠시 입을  다물고 ‘이게 화가  만한 일인가?’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따금 화가 나면 이를  물고 청소를 하기도 한다. 나는 나름대로 그것이 분노를 다스리는 나만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에 따르면 이렇다.



청소나 정리정돈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음식을 먹거나 조깅을 하는 등 짐짓 쾌활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행동이다. 또 어떤 사람은 자리를 피하거나 조용해지거나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 등 내적인 저항에 돌입하기도 한다.


청소를 하는 것이 회피형 행동이라는 이야기에 아찔해졌다. 순간적으로 다스려질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여기서부터 반항심이 든다. “아니 그럼  어쩌라고?  때려부셔?” 그에 대한 대답도 있다.


살다 보면 버럭 화가 터져 나올 때가 있다. 화를 건설적으로 활용한다고 하니, 언제나 차분하고 사무적이고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감정을 잘 걸러내 절제되고 품위 있게 대응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착각일 뿐이다. 때로는 숨통을 틔워줄 필요도 있는 법이다.



화가 나면  분노를 수치스러워하거나 나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다음은 분노가 향하는 대상이 아무 죄가 없는 타인이어서는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어떤 부분이 불쾌한지, 어떤 행위가 나를 분노하게 하는지 인지한 다음  상황을 타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그것이 분노를 적절히 활용하는 방식이다.    


아이들은, 특히 여자아이들은 화를 내는 것을 어려워한다. 사회적인 학습 때문이다. 남동생이 인형의 머리를 잘라버린 상황에서  명의 여자아이를 상상해 보자.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동생을 때리며 분노를 표출하는 아이, 그리고 머리가 잘린 인형을 손에 쥐고 우는 아이. 당신이 부모라면 어느 쪽이 달래기 쉬울 것인가? 당연히 후자다.




슬픔은 애착대상에게 받아들여지지만 분노는 그렇지 않다.


이러한 상황을 몇 번 겪다 보면 아이들은 화를 내는 대신 슬퍼하거나 두려워하는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은폐한다. 그렇게 자라면, 분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성인이 된다. 우리가 되는 것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을 꼽자면 당연히 ‘분노 쿠폰북’이다.


화를 낼만한 상황을 마주쳤으나 그 기회를 놓쳤을 때, 우리는 분노 쿠폰북에 쿠폰 하나를 적립한다. 사소한 화를 이렇게 넘겨 버리는 일이 반복되면 본격적으로 쿠폰북에 적립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의적절하게 불운이 맞물리는 순간, 우리는 화를 내도 될만한 타이밍이 왔다고 여기고 그 자리에서 쌓였던 분노를 폭발시킨다. 이것이 적절한 대처인가?


부끄럽지만 나는 연인관계에서 이런 짓을 많이 한다. 과거형을 써야겠군… 진짜 많이 했다. 이 자식이 또 이러네?라는 생각이 들면 하나씩 적립하고,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이 되면 폭발시킨다. “내가 그거 하지 말라고 했는데 넌 항상 그러고 있어!” 나로서는 쿠폰을 채웠으니 정당한 대처를 했다고 여길 테지만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 지나쳐버린 모든 상황이 그에게 쿠폰으로 적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경 생물학자 요아힘 바우어는 ‘인간의 뇌는 공격성 기억력을 갖추고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공격장치가 활성화됐는데도 즉각적인 공격으로 대응하지 않은(또는 대응할 수 없었던) 경험은 감정적 기억의 흔적을 남기며, 공격충동은 이다음에 필요할 때를 대비해 저장된다.’


화난 감정은 기념사진이나 적립 포인트처럼 누적된다. 인간의 뇌가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또!’라는 생각이 들면 내가 진짜 분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해묵은 감정을 잘 처리하기 위해서는 그게 ‘사소해 보이는 상황이라도’ 나의 감정을 정확히 인지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사소한 상황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데, 밑줄 친 문단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체하겠다.


화와 분노의 강도는 항상 주관적으로 체험된다. 감정에는 객관적 척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내가 화를 내도 될까? 이게 타당한 감정인가?’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분노는 매우 중요한 감정이고, 우리는 ‘모든 것’을 느낄 자격이 있다.


분노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증상이 생긴다. 자기 비하를 하거나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인 ‘무감각’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또는 항상 울분에 가득 찬 생활을 하게 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엉뚱한 곳에서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수동적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 일부러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등, 옆에서 보면 ‘아무것도 안 한’ 상태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행위를 말한다. 어느 쪽이건 사회생활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자명하다.


분노의 대가로 화목을 상실한다는 명제는 거짓이다. 비단 여성뿐만이 아니라, 이타적인 사람들일수록 이런 착각을 하기가 쉽다. 애초에 이런 책에 관심을 갖는다는  자체가 당신이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증명하고 있다.


그러니 분노가 애정과 사랑을 갉아먹는 악한 것이라는 생각은 그만두고, 나를 괴롭히는 상황에게 마음껏 화를 내시길(구체적으로 화를 내는 방법은 책에 있다). 당신이 헤묵은 감정 찌꺼기에 지배당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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