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4
지난주에 <날씨와 얼굴>을 읽은 후로 줄곧 기후 위기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나 재활용 박스에 뒤엉켜있는 수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들과 냉장고 가득 채워진 육류식품들, 귀찮음을 핑계로 일회용 컵에 담아 구매한 커피들은 여전히 내 생활의 전반을 차지한다. 이로써 또 후회와 죄책감이 쌓인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루를 살았을 뿐인데, 또 지구 파괴에 일조하고 말았다는 자조.
이런 식이라면 지구를 보호해야겠다는 결심이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알았다. ‘어차피’와 ‘최소한’ 중에 고르라면 ‘최소한’의 힘으로 살고 싶었는데 그 길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기후 미식>을 발견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기후 미식은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면서 즐길 수 있는 식생활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쩐지 단어에서 느껴지는 책임감과 낙관이 반가웠다. 내가 무엇을 먹는지가 지구의 미래에 보탬이 되다니? 내가 히어로라니?
조금 오버해서 소개했지만 기후 미식의 실질적인 행동 양식은 식물성 식단으로 연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비건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비건 식단과 자연식물식은 비슷한 듯 다르다.
비건식은 동물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려는 삶의 태도이자 가치관에서 비롯된 식단이다. 그래서 동물성 식품을 배제한다.
반면 자연식물식은 건강한 식단을 지향하기 때문에 동물성 식품뿐 아니라 식물성 기름, 당분까지도 최대한 배제한다. 둘의 차이는 식물성 가공식품을 권장하느냐 배제하느냐로 결정된다.
비건의 목적은 동물 복지이고, 기후 미식의 목적은 지속 가능한 생태계이다.
기후 문제에서 식물성 가공식품을 배제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대두유(식용유)를 생산하기 위해 아마존의 밀림을 밀고 농지를 만들게 되면 결과적으로 숲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숲이 파괴되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흡수가 되지 않아 기후 문제를 가중시킨다. 전기차를 사는 것보다 산림 손실을 감소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기후 위기 상황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대다수 동물들이 처한 상황에도 공감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식물성 가공식품을 허용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탈 동물성 대열에 합류하길 바라는 활동가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언급이 있다.
나는 많은 활동가들이 서로에게 공감하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면 기쁘고 행복하다.
플렉시테리언을 지향하고 있지만 그동안 가장 불편했던 것은 비건이 아닌 사람들의 식단을 손가락질하는 비건인들의 모습이었다(모든 비건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이따금 육류를 섭취하는 나에 대한 질책으로 느껴졌고,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찾는 나“를 스스로 용서하기 어렵게 했다. 그래서 동물 복지 딱지가 붙은 계란을 사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따끔따끔하고 아팠다. 동물을 좋아하면서 동물을 잡아먹기도 하다니. 이런 모순이 어디 있나, 하면서.
기후 미식은 훌륭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예전의 ‘플렉시테리언’이라는 단어를 내가 처음 접했을 때처럼 뭔가 더 후하고 허들이 낮은 입구를 발견한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런데 기후 위기와 식물성 식단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우리가 기후미식을 하는 걸로 어떻게 지구를 구한다는 걸까?
답은 축산업 환경과 관련이 있다. 우선 나날이 사람들이 고기를 많이 먹게 되어 축산업이 커지면, 사료를 생산하기 위해 더 많은 농작지가 필요해진다. 그러면 숲을 밀어내고 농지를 만든다. 숲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지구의 마지막 방어막인데 그걸 밀어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또 소가 배출하는 메탄가스가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사실은 아주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런데 축산업 과정에서 방출되는 가축들의 분뇨가 식수를 오염시킨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까? 나는 처음 알았다. 부끄럽지만 가축들의 분뇨는 다 비료가 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가축 분뇨가 토양에 방치되면 그것이 흡수되어 결국 강에 흘러들어 가 녹조 현상을 유발한다고 한다. 단순히 보기에만 안 좋으면 다행인데, 이 때문에 식수가 오염된다. 결국 인간이 받는 영향은 ‘맛있는 것’ 이상으로 훨씬 크다.
책에 언급된 영양학은 사실상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라 대충 읽긴 했다. 그런데 다이어트식으로 즐겨 먹는 ‘탄수화물은 적게, 단백질은 많이’ 식단이 사실은 오히려 건강게 좋지 않다는 대목은 놀라웠다. 나 역시 여름이 되면 밀가루나 쌀밥 먹는 양을 줄이고 닭가슴살을 먹는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종종 하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탕 말고 동물성 단백질 또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주 요인 중 하나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성질환 관리를 위해서는 설탕 섭취를 줄이는 것 외에도 동물성 단백질을 식물성 단백질로 대체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하여튼 또 뭘 먹지 말라는 말만 계속하네, 싶을 수도 있다. 나도 그렇지만 요즘 전 국민의 모토는 “먹고살자고 이 짓 하는 건데” 인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 것을 먹는다. 성공하거나 실패한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멋진 음식을 먹기도 한다. 이런 탐미적 욕구 충족을 위한 식생활이 중요해졌다. 그러니 먹는 것만큼은 내 맘대로 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한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기후 미식>은 “애초에 하지 말자”가 아닌 “이렇게라도 줄여보자”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후 위기 행동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다 위에서 말했듯 2부에서는 식물성 식단이 애초에 인류에게 훨씬 더 건강한 식단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이자 생활습관의학 전문의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제철 채소를 먹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후 미식’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왜냐면 거리가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고 가공이 덜 된 식재료를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름이 되어 국내 농장에서 복숭아를 주문해 드신 당신, 이미 기후 미식가이시군요.
그러므로 이 책을 읽다 보면 딱히 기후 문제에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동참 욕구가 생길 수 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식물성 식단을 시도해보고 싶을 수도 있고, 미래의 생수 값이 걱정되어 육류 섭취를 줄이게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죄책감 없이 단순히 ‘미식’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제의 죄책감에 지친 나를 달래준, 훌륭한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