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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의 그늘 May 17. 2023

도서관 일기 :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23.04.01




어쩌다 보니 오늘 빌린 책들의 테마가 죽음에 가깝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그렇게 됐다. 요 며칠 죽음에 대해 생각해서 그런 걸까? 무의식이 노골적으로 내게 불만을 쏟아내는 것 같다.


오늘따라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요즘 뭘 해도 이런 식이다. 어쩐지 기운이 빠져있고 뭘 해도 재미가 없다. 벚꽃이 그득 피었는데 전처럼 마냥 들뜨지도 않는다.


여하간 그래서 그런지 에세이를 고르는 것은 쉬웠는데, 비문학 책을 한 권 골라야겠다고 마음먹을 때부터 시간이 지체되기 시작했다. 철학에서 시작해 갖가지 심리학, 시사 상식, 독서학, 사회문제 코너를 거쳐 페미니즘까지. 3층 전부를 샅샅이 뒤졌지만 읽고 싶은 책을 찾기가 어려웠다. 가끔 그런 날이 있는 법이다. 약간의 더위를 느끼며 다시 처음의 철학 서고로 향했다. 이번에야말로 끌리는 책이 없으면 돌아가야겠다, 그렇게 마음먹은 다음이었다.





스위스에서 안락사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한창 죽음에 대한 동경을 품었을 때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고통 없는 죽음’이란 단어가 얼마나 완벽하게 느껴졌던지! 한동안 ‘스위스 안락사 신청하기’는 내 버킷리스트에 올라가 있었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는 제목 그대로 조력사를 선택한 지인의 부탁으로 그 과정에 참여하게 된 저자의 경험이 담겨있는 책이다. 2개의 파트로 구분되어있는데, 첫 번째 파트는 조력사 과정을 서술하고 두 번째 파트에는 조력사를 경험한 저자가 죽음에 대해 배운 것을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작가로서 조력사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만을 피력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그가 조력사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인 것은 다소 의외였다. 종교를 갖게 되고 신앙이 생긴 그는 인간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에 선명한 반대입장을 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종교가 없고 ‘천국’이나 ‘유토피아’의 존재를 믿지 않는 탓에 삶과 죽음은 신이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다소 아쉽기는 했다.





그러나 파트 1에 담담히 적혀있는 조력사의 과정은 적지 않은 충격과 교훈을 준다. 특히 조력사 시행 장소가 평범한 어느 창고라는 사실은, 내가 죽음을 선택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초월한 성인이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죽음을 선택하며 난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유럽 관광지처럼 유서 깊고 화려한 성당의 중앙에서 세례식이라도 받을 줄 알았던 걸까? (천주교도 자살을 엄격히 금지할 텐데!) 어쩌면 내가 스위스의 조력사에게 기대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고통 없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책에 묘사된 조력사를 선택한 당사자의 덤덤한 태도는 마치 소설 속 인물 같았다. 인간이 죽음, 존재의 소멸을 앞두고 저리 담담할 수 있을까? 자기 손으로 밸브를 돌려 팔에 꽂힌 링거를 통해 죽음을 주입하는 행위를, 누구나 할 수 있는 걸까?


단출한 침대 위에 링거팩과 함께 누워있는 나를 상상해 본다.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눈가가 새빨개져선 내 손을 잡고 있을 거다. 내 손으로 생에 온점을 찍기. 손에 밸브를 쥐고, 돌린다. 수초 뒤 죽음에 빠져든다….. 상상 속 나는 몇 번이고 밸브 돌리기를 주저한다. 몇 번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죽기는 싫어! 하고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면서.




한창 죽음에 몰입할 때의 나라면 저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위스행 티켓을 알아봤을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종교적 설득이 별반 효과가 없는 것 같다) 그때는 아프기 싫어서 죽음으로부터 회피한 것도 있으니까. 몇 번의 시도 끝에 다시 생을 선택한 것은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아닌,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러니 살아있어도 행복하지 않을 수밖에.




지금도 그때처럼 마냥 죽고 싶지는 않지만, 죽음에 대한 동경은 때때로 나를 찾아온다. 오늘 같은 날이 그런 것 같다. 기왕에 살아있는 거, 이왕 이런 책을 읽은 김에, 뭘 하면 행복할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버킷리스트를 안 쓴 지도 아주 오래되었다.



저자는 최근 젊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 대해 비판하기도 한다. 지금 돌아다니는 버킷리스트는 그냥 소확행 리스트라고. 맛있는 것 먹기, 여행 가기, 무언가를 배우기…. 이것들을 하기 위해 죽음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일갈한다. (그런가?)


그럼, 진짜 죽음을 전제로 한 버킷리스트는 무엇일까? 두려움 없이 영혼과 생을 걸고 해내야 하는 일의 목록. 죽음과 함께 생각해봐야 할 숙제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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