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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의 그늘 Aug 02. 2023

도서관 일기: 아름답지 않을 권리

23.06.03


얼마 전 친구 결혼식에 가기 위해 새 옷을 사려고 쇼핑을 좀 했다. 요즘은 인터넷 쇼핑이라는 게 정말 잘 되어있어서, 어플 하나만 설치하면 온갖 쇼핑몰의 수많은 아이템들을 한 번에 구경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고른 옷을 구입한 사람의 체형 정보가 적힌 후기도 함께 볼 수 있다. 인터넷 쇼핑을 할 때 상세 정보를 제대로 읽지 않는 나 같은 덜렁이들에게 후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나와 비슷한 ‘체형 찾기 위해 수많은 리뷰들을 스크롤하다 보면, 후기가 아니라 후기를 작성한 사람의 몸에 시선이 간다. 어떤 사람은 나보다 키가 큰데 몸무게는  나간다. , 진짜 내가 원하는 몸이네. 165 넘는 신장 정보를 보면  사람은 바지 같은  잘라본  없겠지 싶어 부럽다.


이쯤 되면 옷의 색상이나 재질 같은 건 뒷전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몸매를 가진 사람의 수치를 찾아보면서 ‘아, 이런 태는 안 나오겠지!’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온갖 품평이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재생된다. 그 짓을 한참 하고 나서야 아차 싶은 거다.


“사람의 몸매를 평가하는 건 나쁜 짓이야.”를 몇 번 되뇐다. 잘 아는 사실인데 왜 자꾸 이런 짓을 반복하는 걸까? 어플을 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외모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아. 그런데… 난 일단 살을 좀 빼야 할지도.



인터넷을 하다 보면 자기 몸 긍정 주의(body positive)를 접할 수 있다. 키가 작아도, 뚱뚱해도, 피부가 좋지 않아도 괜찮아! 하는 식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최근 출판계의 자존감 열풍 때문에 나는 ‘괜찮아’에 신물이 나 있다. 나는 긍정주의보다는, 음, 무심하기를 선택한 사람이다. 괜찮지 않으면 어쩔 건데? 아름답지 않으면 어쩔 건데? 하고 되묻는 식이다. 아름다운 것을 찾는 사회에 신물이 났다.




<아름답지 않을 권리>는 ‘뚱뚱한 나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덮어놓고 우리 모두는 아름답다고 외치는 그런 책은 아니다. 저자인 누누 칼러는 애초에 우리가 말하는 아름다움의 정의를 재창조한다. 아름다움이란 과연 무엇인가?


저자인 누누 칼러는 키가 크고 우리나라 식으로 77-88 사이즈를 입는 여성으로서 몸매에 상당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휴가지에서도 누군가 자신의 뱃살을 흉볼까 봐 힘을 주느라 풍경을 감상하지 못한다. 그런 누누의 모습은 전혀 다른 키가 몸무게를 가진 내게도 익숙하다. 나 역시 딱 붙는 옷을 입은 날이면 허기를 느껴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배가 튀어나온 걸 세상 사람들이 다 볼까 봐, 그리고 그걸 비웃을까 봐.


생각해 보면 배가  나온다고 해서 나라는 존재가 갑자기 엉망진창이 되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그토록 보이는 몸매에 신경을 쓸까?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먹기도  먹는데 배는 홀쭉하다. 그게 정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나부터도.




<아름답지 않을 권리>에 따르면, 미디어에 나오는 완벽한 초상은 일반 여성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매끈한 피부를 가질 수 있는데 관리를 안 한 것이고,
체지방 지수 0%의 훌륭한 몸을 만들 수 있는데도 너무 많이 먹는다.
당신은 죄책감을 좀 가져야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가스라이팅은 사실 기업이 여성의 소비를 부추기기 위한 유구한 방식의 착취이다.


매끈한 피부를 가질 수 있도록 이렇게나 다양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는데, 사지 않아? 한 알 먹기만 해도 아까 먹은 케이크 칼로리를 반감시켜 줄 수 있는데 먹지 않겠다고? 너란 여자는 최악이다. 그 어떤 사람도 널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홀로 외롭게 살고 싶지 않다면 당장 사서 바르고 먹고 입어야 한다. 미디어는 그런 방식으로 여성을 착취한다.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입에서 (사실 글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제법 충격적이다. 나는 그동안 내가 상술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새로 산 폼클렌저는 피부의 각질을 마법처럼 없애주는 제품이고, 지난달에 구입한 원피스는 똥배가 아무리 튀어나와도 잘 가려주는 옷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그 의미부터 재창조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막상 생각하려니 잘 안되어서, 내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상형의 모습을 먼저 적어봤다.


똑똑한데 남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 사람

자기 일을 잘하는 사람

태도는 긍정적이되,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판 능력을 가진 사람

약자를 대하는 태도가 다정한 사람


몇 가지가 더 있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매력은 이런 것들이었다. 만약 이런 조건을 전부 갖춘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면.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똥배가 좀 나왔다면? 음, 조금 깰 수도 있겠지만 갑자기 그 상대가 추하게 느껴지진 않을 것 같다.



아름다움은 미디어에 주야장천 나오는 전문가들의 실력으로 포장된 연예인들의 모습이 아니다.


나는 이목구비가 화려한 연예인들을 동경하고 어릴 때에는 그렇게 되려고 애를 썼다. 성형외과에 가거나 다이어트를 하거나 등등. 하지만 나는 그들이 될 수 없고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


내가 미모의 아이돌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해서 내 인생이 쓰레기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게는 나를 믿고 의지하는 고양이가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으며 오랜 시간 곁에 두고 지켜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이 나의 외모가 완벽하다고 생각해서 곁에 있어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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