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째 편지
언젠가부터 부품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름말고 번호로 불리는
자리에 있어도 없어도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나사가 되고 싶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주 작아지려면 정말 큰 곳에 가야 하겠더라.
내가 원하는 만큼 하찮아지려면 대체 얼마나 넓은 곳에 던져져야 하는 걸까?
그렇다고 큰 곳에 가고 싶은 것도 아닌데 말이지.
오늘 내 뒷자리에 앉아 있던 한 팀이 교체되었다.
계약 종료, 재입찰, 그런 깔끔한 단어들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쨌든 기존 인력이 짐을 싸던 지난주, 신규 인력이 짐을 푸는 이번주 내내 소란스러웠는데
지난주엔 조금 슬펐고 오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 내내 시끄럽네. 라고 속으로 짜증을 내고 있었다.
나 너무 매몰찬가? 하는 마음도 잠시
음, 제법 나사다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라고 다시 생각했다.
사무실이 곧 조용해지고
매일 반복되는 일거리들이 조금씩 맞물리면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제와 다를 거 하나 없는 날이었다.
출근길에 같은 버스에서 내린 아저씨가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찍더라.
나도 그제서야 하늘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따뜻하고 청명한 날이었다.
나보다 숱하게 헤어지고 만나는 인사를 반복했을 이름모를 그 분에게도
매일 바뀌는 하늘은 조금씩 다른 느낌을 안겨주는건지.
그런데 오늘의 나는 그 하늘을 보고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나, 나사가 되었네.
꿈을 이룬 멋진 청년이 되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