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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율 Jun 17. 2024

유언장을 썼다

삶이 더욱 빛나는 순간


 MBTI를 잠시 빌리자면 INFJ인 나는 어릴 적부터 '죽음'에 관심이 많았다.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는지, 영혼이 되어 세상을 떠도는지, 랜덤으로 다시 태어나는지, 아니면 끝인지.. 죽음이라는 키워드는 정말 N(Intuition 직관형)의 상상력을 고자극하는 끝판왕이 아닌가 싶다. 


 상상만 했던 죽음을 실제로 목격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병실에 입원한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이야기를 건너 듣던 날, 나는 당연히 금방 일어나실 거라 믿었다. 죽음은 내게 절대 일어나지 않으며상상이나 뉴스 속에서만 벌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투병 끝에 결국 돌아가셨다. 어제 웃고 대화하던 사람을 더 이상 만질 수 없다. 그럼에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다. 나는 그때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게 얼마나 허무하고 쓸쓸하고 외로운 건지 알게 되었다.




 어두운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저 기억 탓인지 나는 죽음이 주는 허무함에 오랫동안 빠져있었지만, 내면을 바라보며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에고가 만든 이미지일 뿐이며, 죽음도 삶처럼 경험의 일부라는 것. 두려움이 있기에 사랑이 사랑답고, 어둠이 있어야 빛을 빛으로 인식하듯, 죽음이라는 체험이 있기에 삶이 아름답고 다채롭다. 물론 나는 죽음까지 사랑할 정도로 부처가 아니라서 여전히 저항감이 있지만, 이전보다 초연한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얼마 전 명상 수업에서 [짧은 유언장 / 묘비명]을 적어보는 시간이 주어졌다. 전부터 유언장 쓰기 모임을 열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반가웠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이렇게 적었다.


 

죽음은 어차피 누구에게나 오는 거니 슬퍼하지 마라.
죽음이 있어서 삶이 삶 다웠다.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걱정됐다. 나는 그들의 남은 삶이, 타인의 죽음이라는 그림자에 가려져 슬프게 살길 원치 않는다.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더라도 내가 곯지 않기를 바란다. 유언장을 써보는 일은 삶을 사랑하는 또다른 방식이다. 죽음을 마주하면 오히려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인생에 한 번은, 유언장 써보는 일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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