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 준비되지 않은 이직 이야기... Part03
어쩌다 이지경이 된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분명히 성과를 냈고, 인정도 받고 있었다. CEO가 바뀌고, 직속 임원이 교체 되었어도 요직에서 이탈된 적은 없었다. 소히, 줄 서지 않아도 잘 살아남았다. 중요 업무는 정해진 게 아니라, 그 업무를 누가 하느냐에 따라 주목받은 업무가 된다는 것을 증명해 왔다. 나의 자부심이었다.
난, 누구 보다 열정적으로 일했다. 과장이었던 때로 기억한다. 회사는 명실상부한 Global 1위 기업이었다.
그룹 내 유일했다. 몇 개 안 되는 경쟁사 중 거의 꼴찌에 가까웠던 우리가 업계 1위가 된 것은 내가 속한 전략팀이 탁월한 전략을 세우고, 계획된 시점에 차질 없이 실행하게 한 역량 덕분이라 생각했다. 감격스럽고, 스스로가 대견했다.
오늘도 나는 지속적으로 Global 1위 위상을 지키기 위해, 한 번에 수조 원이 들어가는 차기 공장 투자를, Global 전략 컨설팅 업체와 함께 최적 규모와 시점을 정하기 위해 Project를 진행하고 있었다. 업계 특성상 차기 투자는 통상적으로 최소 2년 이후 양산을 염두에 둔다. 경쟁사의 제품 Line-up, 생산량, 가격 정책 등 전제에 전제를 깔고 고민 했다. 제품 대형화에 따른 신기술 적용과 새로운 기술을 실현할 수 있는 장비가 개발될 수 있도록 유관부서와 콘셉트회의도 했다. 지주회사와의 소통을 위해서는 눈높이에 맞는 별도의 자료도 준비했다. 새벽 3시. 회사에 있는 내가 낯설지가 않았다. 4시가 넘어가면, 심야할증이 없어지고, 택시비가 정상요금이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린이날을 앞둔 주말, 어렵게 시간을 내어 다섯 살 된 딸아이의 손을 잡고, 겨우 집 앞 놀이터에 갔다. 순서를 기다렸다가 그네를 태우고 밀어줬다. 갑자기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아 뒤에 의자에 앉았다. 식은땀에 나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 순간 눈앞이 까매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코로 흙냄새가 들어왔다. 멀리서 들리던 소리가 딸아이의 울음으로 바뀌어 귀에 꽂힌다. 눈을 떴다. 세상이 거꾸로 보였다. 머리를 들어 올리려고 애쓰는 아내의 손길이 느껴졌다. 기운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그네를 밀던 나는 뒤에 있었던 의자에 주저앉으며 기절했고, 등받이가 없던 의자에 엉덩이를 걸친 채 몸이 뒤로 넘어갔었다.
가까운 종합병원을 찾은 건, 다음날이었다. 일주일을 입원하면서 원인 검사를 했다. 부정맥검사를 위해 심장 위치에 기계를 차고 24시간 변화상황을 적었다. 머리에 전선을 붙이고 기립 시, 변화를 관찰하고, CT를 찍고, MRI를 찍고.... 결과는 스트레스 라고 했다. 가정의 현금 흐름에 문제가 없다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의사는 권했다. 어림없는 소리였다. 입원 중에 어버이날을 맞았다. 외출해서 찾아뵌 부모님께는 이런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병원에는 1주일을 머물렀다.
사무실에 복귀하자 팀장님은 야근을 금지시키셨다. 별도 면담 시간을 잡고, 진심을 다해 건강부터 챙기라 훈계하셨다. 역시 나는 중요한 사람인만큼 관리를 받았다고 생각했었다. 워낙 진실하시고, 성실하신 팀장님의 인격을 굳게 믿었었다. 팀장이 되어 보니, 어쩌면 그분은 구성원의 근태관리 소홀로 인사팀으로부터 경고(Warning)를 받았고, 확실한 재발방지 차원에서 나에게 극단적인 조치로 정시퇴근을 강제할 한 것 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진실이던, 난 보이는대로 믿었고, 나 자신에 취해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신념과 사명감에 사로 잡혀 있었고, 온몸을 바쳐 죽을 것처럼 일했다. 회사가 경험하지 못한 처음 하는 일이 많았고,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시나리오를 셋업 하고, 한걸음 한걸음 따져 가며 준비했다. 선도기업의 위상을 지키는 것은 처절하리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피곤에 절어 살았지만 자부심으로 충만했다. 개인의 자산관리, 건강관리에 시간을 쓰는 것은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불경스러운 일로 여기며, 사력을 다해 회사 업무에 올인했다. 주변에 모든 사람이 다 나처럼 생각하는 줄 착각했다. 그들의 근심 어린 시선을 경외의 눈 빛으로 오해했다.
다른 사람들이 가족의 안녕과 노후를 고민하는 동안에도 나는 회사업무에 몰입하며 내 미래는 회사가 챙겨 줄 거라는 한 줌의 낭만에 젖었던 걸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내한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다급했다. 근무시간에는 어지간한 일로 전화하지 않았던 터라 긴장이 되었다.
"자기야, 월급이 줄었어"
"무슨 말이야? 월급이 왜 줄어?"
외벌이였던 나는 월급날에 맞춰 카드 결제일을 지정해 놓았는데, 아마도 예상대비 잔고가 부족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야근을 하게 되면 근태에 맞게 OT수당이 지급되었는데, 거의 메일이 야근이라 아내는 야근수당이 포함된 월급을 기본급으로 관리했었던 것 같았다. 상황설명을 하고 오해를 풀었던 일도 잠시, 또다시 나는 업무에 치여 살기 시작했다. 아내기준으로는 월급이 다시 올랐다. 일상으로 복귀했고, 나는 다시 열심히만 살기 시작했다. 현실을 외면하듯 자발적으로 일에 매몰되어 갔다. 또다시...
(보태기) 아내가 지난 6/14일 암수술을 했습니다. 수개월 전부터 예정된 일이라 미리 글의 얼개는 잡아 놓긴 했는데, 연재일(17일)에 생각이 많아져서, 업로딩 전에 글의 많은 부분을 들어내고 수정하느라 새벽 5시부터 설쳤습니다. 다행히 아내는 잘 회복 중에 있습니다. 회사에 하계휴가를 미리내고, 간병인 노릇을 하면서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함께한 시간이 오랜만이라 첨엔 어색하기도 했는데, 운동삼아 산책하면서 낙상을 빙자해서 손 잡고 함께 걷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아내에겐 등짝을 맞을 말이겠지만, 하루이틀 정도는 퇴원이 늦어져도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모두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