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지도, 이거야말로 골때리는 복잡한 업무가 아닐 수 없다.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의 민원을 담당하는 업무를 맡은 직장인들이 하는 소리가 있다.
'아무리 AI기술이 발달해도 내 업무는 대체되지 않을 거에요. AI가 진상 고객들의 민원을 잘 응대해주겠어요?'
나도 일부 동감하는 바이다.
아직 인간의 감정이 어디서 발생하는지 그 근원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서,
과연 인간다움을 표방하는 AI가 인간의 깊숙한 내면 속 요구사항과 숨겨진 감정을 잘 알아채서 반응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교사로서의 업무 중에는 교과지도와 쌍벽을 이루는 생활지도라는 것이 존재한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생활지도라 하면 예전의 엄하던 학생주임을 떠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학급을 맡은 담임 교사로서는 정말로 피하기 힘든 숙명이면서도 왠만해선 피하고 싶은 것이 바로 생활지도이다.
교실이라는 공간 내에서 스무명 남짓한 아이들이 서로 뒤엉켜 장시간 생활하다보니,
서로에게 여러 감정을 갖게 되고 다툼이나 소란이 발생하는 건 당연지사다.
어느 정도 큰 아이들이라면 자기네들끼리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기대할 법도 하지만, 초등학생의 경우라면 필시 담임교사가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
초임교사 시절, 나는 거듭된 학생들의 일명 '이르기'와 불만 표출의 말을 들어주고 이것들을 해결해주는 일을 하다가 문득 현타가 온 적이 있다.
그 순간 내가 교사인지, 아니면 경찰인지 헷갈렸던 것이다.
어떤 일은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리는 게 필요하긴 하지만, 또 다른 일들은 서로 생각하는 관점이나 입장이 달라서 벌어진 일인 경우가 많다.
서로 다른 관점의 차이에서 벌어지는 간극을 교사가 적당히 말로 때우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사실 성인을 상대로 한 상담이나 민원도 힘들지 않은가.
그런데 아직 사고가 명확히 확립되지 않은 학생들을 상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건 더 민감하고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나는 학생들이 하는 이야기를 최대한 충분히 침착하게 인내심을 갖고 다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다 듣고 공감해주고, 불만을 표한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물어본다.
그러면 아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그리 대단한 내용이 아니다.
자기의 마음이 상처를 입었으니 진심으로 사과받고 싶다든지, 아니면 단지 교사에게 말한 것만으로도 속상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됐다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이야기를 받아주고, 갈등 상황을 봉합하는 일들을 반복하면서 느끼곤 한다.
교사는 확실히 인간을 밀접한 곳에서 다루는 민감한 일을 하는 직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런 심도있는 작업을 과연 AI가 대체할 수 있을까.
만약 AI가 이런 일까지 대체하는 수준에 이른다면, 그건 그것대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AI가 인간의 내면 깊숙한 감정까지 이해한다는 건, 인간을 휘두를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는 거나 다름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