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러의 공무원 조직 적응기

90년생 공무원의 고군분투 생존기

by 아토

나는 홈스쿨러였다. 중학교까지 무사히 졸업을 하고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딱히 문제가 있던 학생도 아니었다. 우리 지역에서 제일 알아주는 고등학교로부터 입학 통보를 받았으나, 입학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결정까지는 부모님과의 많은 대화와 진지한 고민들이 있었다.


나의 경우는 아빠가 먼저 홈스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것도 무려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고, 놀고, 관심분야에 대해 배우고 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물론 어떠한 강요도 없었다. 그저 학교 가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고는 선택은 내 몫이라고 하셨다.


아빠의 말을 처음 들은 나는 마냥 신나고 좋았다. '학교를 안 가도 된다니!! 학교를 안 가도 된다니!!!!!!!!!!!!' 여느 어린이들처럼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그냥 너무 신났었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싫어했던 건 아니었다. 초등학생 때는 육상부 에이스로 활약했고, 중학생 1학년 때는 부반장도 했었다.


그런 내가 홈스쿨링을 선택한 이유는 학교에 다니는 것 외에도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의 홈스쿨링 3년을 요약해서 말하자면 영어, 사진(카메라), 기타, 여행, 책 읽기, 글쓰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고등학교 생활 3년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3년간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내가 뚜렷하게 배운 것들이 또 있다. 세상엔 딱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다양하고 많은 길이 있다는 것. 스스로 선택하고 그 책임 또한 스스로 져야 한다는 것. 시간은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 공부도 스스로(=자기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




이렇듯 다소 색다른 학창 시절을 보낸 내가 지금은 그 어느 곳보다 뻔하고 일반적인 공무원 조직에 와있다. 이곳 또한 누군가가 떠밀어서 온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선택해서 왔다.


한번 들어오면 웬만해선 잘리지 않는 철밥통 공무원이라도 무조건 평생 해야 하는 직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공직 생활을 해보니 나와 잘 맞지 않더라. 직접 일을 해보니 내가 생각했던 일이 아니더라. 나는 이런 일 보다는 다른 것을 하고 싶어.라는 생각이 든다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무리 철밥통 공무원일지라도.


물론 내가 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막상 직접 해보면 내 기대와 다를 수 있다. 어떤 일을 하든 100% 만족하기는 어렵기에. 또한 이 조직에 잘 적응하여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도 그만두는 사람 못지않게 대단한 용기와 끈기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종종 공무원이 된 후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힘들어하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는 사람들을 보고 들은 적이 있다. 공무원이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꿈의 직장이라고도 하지만 그것이 자기 자신과 맞지 않으면 그만이다.


물론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힘들다고 도망치는 것은 회피밖에 되지 않는다. 정말 자신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만큼 준비하고 준비해서 도전해야 한다.




학교든 직장이든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다. 나 또한 이곳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100% 적응을 한 건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은 적응보다 더 어려운 것이 조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응을 한다는 것은 익숙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익숙함이 어떤 면에서는 단점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익숙해짐으로써 무뎌지는 부분도 있기에. 업무에 대해 무뎌지고, 사람에 대해 무뎌지고. 이런 무딤이 반복되면 사람의 마음이 딱딱하게 굳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도 살짝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나 보다. 지난 연말 인사이동과 업무와 관련해서 아빠와 대화를 나눴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갔고, 아빠의 몇 마디가 내 마음을 살짝 건드렸다. 굳어가던 내 마음이 조금 부끄러웠다. 역시 나의 좋은 친구, 훌륭한 스승, 존경하는 아버지다.


조직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있지만,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것.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조그만 우물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세상엔 다양한 길이 있고 이곳도 그 길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
이것들을 목표로 하루하루 고군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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