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그 자체
오랜만에 그녀들을 만났다. 머나먼 타국땅 호주에서 만난 그녀들. 대략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집에서 같이 동거동락하며 타국살이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함께한 사이다. 타국에서 시작된 인연이지만, 한국으로 귀국한 후에도 좋은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남자들은 만나면 군대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던데, 우린 만나기만 하면 호주 워홀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이건 뭐 3일간 푹 고은 사골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고으고 또 고은 이야기들이다. 호주 이야기는 어쩜 해도 해도 재밌고 새로운 건지.
학업, 결혼, 육아 등의 이유로 규칙적인 만남을 가지진 못했지만, 각자의 대소사에서 혹은 번개로 만나며 즐거운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그녀들. 이제는 일 년에 한 번 규칙적인 만남을 가져보고자 작게나마 회비도 모으고, 모임 날짜도 미리 정했다. 새해 첫 주는 다들 이래저래 정신없을 테니, 매해 새해 둘째 주 토요일을 만남의 날로 정했다.
그리하여 올해 1월 둘째 주 토요일. 우리의 첫 공식 모임을 가졌다. 장소는 여수. 뜬금 왜 여수냐고? 그녀들 중 실행력 좋은 한 명이 여수에 디저트 카페를 차렸기 때문. 잘 다니던 서울의 직장을 그만두고 여수로 내려와 달달한 디저트를 굽고 있다는 소식에 우리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전국에 흩어져있는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여수에 모였다. 동선이 같은 그녀들 중 한 명이 함께 야간버스로 가자며 적극 초대를 했다. 당일치기를 고민하며 잠시 갈등했지만, 지난 시간 오랜 학업으로 제대로 연락도 못한 그녀가 이렇게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치니 당해낼 재간이 있을 리가.
그렇게 오른 야간버스는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수로 가는 여정 내내 우리는 수다를 떨었다. 오랜 공부 끝에 간호사가 된 그녀는 호주에서 봤던 그녀와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이 변해있었다. 특유의 여유로운 말투와 행동은 온데간데없고 빠릿빠릿한 간호사님이 되어있었다.
함께 식사를 하고, 화장실을 가고, 버스를 기다리며 그녀의 변한 모습에 난 다소 놀랐다. 왜 이렇게 사람이 빨라졌냐는 나의 물음에 그녀는 "병원에서는 느리면 살아남을 수 없어."라는 답을 남겼다. 사회생활이 이렇게나 무서운 것인가.
내가 그녀의 변한 모습에 놀라고 있는 사이 그녀도 나의 그간의 행적에 대해 궁금했었나 보다. 호주에서 만났던 20살짜리 꼬꼬마가 어느새 공무원이 되어 직장생활의 고충을 토로하니 신기했나 보다. 공무원이라니. 멋지다! 정말 대단해!라는 그녀의 말에 "후회해. 후회한다고!!"라고 답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배가 찢어지게 웃던 그녀. 그 웃음에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오랜만에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부터 시작된 각자의 직장생활의 어려움. 간호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든지, 어려운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어떤 말보다 그녀의 변화된 모습 그 자체로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나의 후회한다는 그 한마디에 그녀도 나의 고단함을 알아차린 것일까. 우린 서로에게 젠체도 푸념도 아닌 공감을 하고 있었다.
사회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누가 누가 더 힘든가를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대게 공무원은 예외가 된다. 철밥통이라는 말 하나로 모든 어려움과 고충을 퉁치며 세상 안락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된다. 또 가끔은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는 한마디로 능력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이번 야간버스에서 느낀 감정은 젠체도, 푸념도 아닌 공감 그 자체였다. 서로의 고충에 공감해 주고 그럼에도 열심히 하고 있는 서로의 모습에 대단하다 해주는 공감. 그것만으로 이번 여정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