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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회 Jan 16. 2021

18. 주사위는 던져졌다

독설과 벼랑 끝 전략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독설을 퍼부을 준비가 되신 분이었다. 물론 자식을 자존심을 뭉개는 걸 즐기시는 분은 아니었다. 단지 본인의 삶에 비추어 자식들은 너무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그 모습이 한심해 보였을 것이다. 고쳐지지 않는 상황에 닥쳤을 때 아버지의 독설은 정말 날카로웠다. 내가 공무원 시험 준비할 때는 “너같이 공부해서 시험 합격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합격하니 장을 지지지는 않으셨다. 물론 아버지 말씀이 틀린 게 아니었다. 내가 그대로 공부했다면 평생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을 테니. 아버지의 독설에 자존심을 많이 상해서, 내 아버지 앞에 증명해 보이리라 하고 열심히 공부한 거다. 아버지의 독설은 종종 자극제가 되었다.


내 눈에 보이는 김 조카도 한심했다. PT를 끊어줘서 운동으로 생활을 바르게 만들어 보려 했지만, 김 조카의 생활이 변하지 않았다. 잘못된 습관들이 고쳐지지 않았고 자신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와 나와 사는 게 얼마나 득이 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로 사회에 나간다면 직장에서 금방 잘리는 문제가 아니라 아예 직장을 구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김 조카의 고쳐지지 않는 생활 습관을 가만 두지는 않기로 했다. 부모님의 등을 보며 배운, 또 침을 맞아가며 당한 독설을 시전 했다.


“삼촌은 너보다 나은 환경이었지만 대학 내내 아르바이트하고 돈 벌며 열심히 살았어. 21살 때 이미 청약 통장 만들고 펀드 투자도 했다. 월급이 적어서 회사 다니면서 몰래 주말 알바도 했고. 근데 너 지금 사는 꼴이 뭐니? 내가 살면서 너만큼 게으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건강한 20대 노숙자가 될 셈이냐?


코로나 때문에 알바가 없다고? 핑계 대지 마라. 삼촌이 알아보니 알바 많더라. 경험이 없어서 안 뽑아준다고? 편한 일만 찾으며 1년 동안 집에서 놀기만 했으니 경험이 없는 거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었다고? 조금만 힘들어 보여도 피하니까. 할 줄 아는 게 있어야 하고 싶은 것도 생기지. 세상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거만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딨어? 삼촌은 회사가 신나서 다니는 줄 알아?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살면서 훨씬 많아. 불편한 것도 부딪혀 봐야 경험이 쌓이고 안 불편해지지. 넌 하고 싶은 게 없었던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 거야.


이대로 살면 사람들이 널 어떻게 볼까? 나는 고아 거둬서 데리고 산다고 칭찬받겠지. 하지만 너는 비난받을 거야. 좋은 삼촌 만나 베껴 먹으며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그거 아냐? 너는 남들 만큼 노력하고 살아선 칭찬 못 받아. 오히려 욕먹어. 상황 파악, 주제 파악 못 한다고. 고아인데 왜 저렇게 대충 사냐고. 근데 남들 두 배로 노력하고 살면 네 배로 칭찬받아. 고아인데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산다고. 그러면 사람들이 다 너를 예뻐하고 도와주려 할 거야. 그런 삶을 살아.”



내 경제적 상황도 솔직하게 다 설명했다. 나는 네가 보는 것처럼 부유하지 않다고. 내게 얼마의 빚이 있고 이 돈을 만약 네가 모으려면 매달 얼마를 저축하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그럼에도 네가 노력하며 열심히 살면 독립할 때 더 빚내서라도 보증금 걸어 주고 지원해 줄 것이다 라고 했다. 너의 미래를 위한 목돈인 디딤씨앗 통장을 깨지 않게 만들겠다고.


김 조카는 나와 살면서 얻는 경제적 이득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너를 왜 데리고 사는지 아냐는 질문에

“경제적으로 도움은 안 되는 것 같고.. 저 망나니처럼 살까 봐 옆에서 지켜봐 주시는 거 아니에요?”

라고 했다가 내 표정을 보고는 당황해서 경제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을 정정했다. 


녀석의 입장에서는 내가 용돈을 준 게 아니니 그런 착각을 한 것 같다. 그래서 월세, 관리비, 식비를 일일이 대며 나와 함께 살면서 최소 월 70~80만 원의 경제적 이득을 보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군대를 가지 않고 바로 취업한다면 월 얼마를 어떻게 저축해야 되고 그러면 2년 뒤  얼마를 모으고 10년 뒤 어떤 삶을 살게 될지도 그려줬다.


스스로 작성한 엉성한 계획표로는 안 될 것 같아 생활 규칙을 만들어 줬다. 

밤 12시 전에 자라. 오전 7시 반 전에 일어나라. 일어났을 때가 머리가 제일 맑다. 그 시간에 게임하거나 드라마 보지 마라. 세상 돌아가는 거 알아야 한다. 아침에 뉴스 보던지 운동해라. 낮에 수업 듣고 과제하고 아르바이트해라. 저녁엔 감성이 올라간다. 노는 건 일과 끝나고 저녁에 해라.


음식 시켜먹지 마라. 게으른 습관이다. 조금만 걸으면 운동도 되고 비용도 싸게 밥 먹을 수 있다. 음식물 버리지 마라. 먼저 상할 것부터 먹어라. 그것도 다 낭비다. 밥•반찬 긁어먹어라.



아버지와 반대로 어머니는 독설로 상처를 주는 분은 아니셨다. 단지 자상한 표정으로 자식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분이셨다. 대학교 1학년 때 경험을 쌓고자 패스트푸드점 알바를 시작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가 알바를 시작하자마자 용돈을 끊으셨다. 이제 막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월급은 한 달 뒤에 나오는데 바로 용돈을 끊으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사정사정을 해서 차비 5만 원을 받았고 그 달은 놀지도 못하고 집과 학교만 다니면서 학생식당에서도 제일 싼 1,200원짜리 밥을 먹었다. 그리고 대학 내내 용돈벌이를 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누이들은 모두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를 일고 여덟 개씩 경험했고, 대학교를 졸업하면 학원비 등 모든 지원을 끊겠다는 엄포에 다들 졸업 전에 취업했다. 이런 방식을 조카에게도 쓰기로 했다.


내년 3월이 개강이니 그 전인 2월까지 독립시키겠다고 했다. 삼촌과 삼촌의 누이들도 다 졸업과 동시에 집의 지원이 다 끊긴다는 교육을 받았기에, 집에서 지원해주는 기간에 학원도 다니고 열심히 공부해서 다 졸업 전에 취업했다고 설명했다. 내가 곁에 있어서 네가 안심하고 망나니처럼 사는 것 같으니 너를 벼랑 끝에 내몰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독설의 영향을 설명하며, 너도 스스로의 나에게 증명해보라고 했다. 녀석이 나를 부모로 느끼지 못하고 서러움을 느낄까 봐 걱정도 됐지만, 나 때문에 조카가 독립심을 잃어버린 어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 역시도 관계의 손상을 감수하며 벼랑 끝 전술을 썼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결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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