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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회 Jan 14. 2021

17. 고쳐지지 않는 습관들

위기는 위기, 첩첩산중

회사에 큰 사건이 터졌다. 전임자가 저지른 사고를 조사하느라 이틀 동안 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그러고도 한 달 반 동안 상황을 수습했다. 난생처음으로 극심한 과로와 스트레스를 겪었다. 종종 내 마음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고등학교 서클, 대학교, 다른 어떤 모임에서도 후배나 동생들한테 화내 본 적 없는 나였다. 그런데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직원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감정이 조절 안되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신과라는 곳을 찾았다. 의사에게 3개월 쉬라는 진단을 받았다.


3개월이라니.. 그렇게 길게 쉴 수는 없어서 두 달간 병 휴가를 냈다. 코로나 때문에 돌아다니지도 못하니 집에 얌전히 박혀 쉬었다. 바쁘단 핑계로 하지 못했던 공부와 집 정리도 했다. 집에만 있으니 예측만 했던 김 조카의 생활이 정확히 눈에 들어왔다.

3월에 동거를 시작한 이후, 김 조카는 코로나 때문에 대학교를 가지 못했고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아서 9개월 동안 집에만 있었다. 녀석은 오전 10시 이후에서 오후 1시 사이에 불규칙하게 일어났다. 그러곤 일어나마 마자 드라마를 봤다. 저녁엔 친구랑 롤을 하느라 새벽 늦게 잤다. 공부나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았고, 그 남아도는 시간을 이용해 집 청소나 정리 역시 하지 않았다.


낮잠까지 포함하면 하루 12시간에서 14시간을 잤는데 그러고도 피곤하다고 했다. 보다가 너무 어이없어서 하루는 내가 욕창이 뭔지 아냐고 물어봤다. 녀석이 모른다고 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환자들은 한 방향으로 계속 누워있게 된다. 그럼 혈액순환이 안 되어 몸에 구멍 같은 게 생기는데 그게 욕창이라고 했다. 하루 절반 이상을 매일 누워만 있는데 네 몸에 욕창이 안 생기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제정신으로 살지 않으니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었다. 화장실 불조차도 제대로 끄지 못했다. 나한테 얹혀 사니 서러워할까 봐 그간 혼내는 데에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화장실 불 끄기를 6개월 동안 지적했는데도 고치지 못한다는 건 충격이었다. 다 큰 어른을 유치원생처럼 매번 불러내서 혼내면 자존심 상할까 봐 네 번 발견하면 한 번 정도 지적했다. 그렇게 여러 번 발견하고서야 한 번씩 지적한다는 사실도 설명했다. 그런데도 전혀 고쳐지지가 않았다.


오히려 변명하길 “제가 잘못하는 게 있으면 언제든 그때그때 불러서 지적해주세요.”라고 했다.

언제든지 지적하면 잘못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멋진 태도 같은가?


아니다. 화가 났다. 네가 지적받는 행동들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나 혼나는 것이다. 그런데 6개월 동안 지적받고도 안 고쳤다. 두 번 정도라면 실수일 수 있다. 그런데 6개월 동안 그대로인 건 아예 고칠 생각이 없는 것이다. 너는 누군가 잘못을 지적하면 그때만 보여주기 식으로 눈 앞에서 하는 척할 뿐 실제 고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네 얘기대로 하자면 나는 매번 화장실 앞에서 너를 불러내고, 그때마다 너는 내 눈앞에서 불을 끄겠지. 부르는 거보다 그냥 내가 끄는 게 더 편하지 않나? 네가 지금 한 말은 “나는 절대로 잘못을 고치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조카의 습관 하나가 겨우 고쳐졌다. 화장실 불 끄기. 6개월 걸렸다.


조카는 음식을 시켜 먹는 일이 많았다. 음식을 시키려면 2인분을 시켜야 하니 그건 낭비라고 지적하자, 한 번 시키면 반을 먹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먹으니 두 끼를 먹는 거라 낭비가 아니라고 변명했다. 배달비는 돈 아니냐고 음식을 자주 시켜 먹지 못하게 했다. 쓰레기가 너무 많이 배출되지 않게 분리수거와 설거지도 가르쳤다.



아르바이트를 왜 안 구하냐고 묻자 수입이 잡히면 기초생활수급비가 줄어든다고 했다. 집에서 빈둥빈둥 놀면서 55만 원 받는 삶과, 하루 6시간 일하면서 경험과 인맥도 쌓고 100만 원 버는 삶 중 어떤 게 더 낫냐고 되물었다. 그러고 나니 코로나 때문에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둥, 21살 이상 또는 여자만 구하더라는 둥, 경험이 없어서 안 뽑아준다는 둥 다른 변명을 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 몇 군데나 원서 넣었는지 물었더니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찾아서 서류를 넣어보라고도 했는데, 몇 곳은 원서조차 넣지도 않았다. 친구들이랑 같이 놀 수 있거나 자신이 해봐서 편한 PC방, 편의점 알바를 고집했다. 선택의 폭이 좁으니 아르바이트를 더 구하기 힘들었다. 다양한 경험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했지만 소극적이었다.




미래에 대한 준비 역시 하지 않았다. 조카는 모든 상황을 변명과 자기 합리화로 일관했다. 전산회계 자격증을 땄냐고 물었을 때 조카는 대답했다.

"필기 땄어요."

"실기까지 합격해야 자격증이 나오잖아. 근데 실기는 떨어진 거 아냐? 그럼 그냥 필기만 합격한 거고 자격증은 못 딴 거지."

자신이 만만하게 생각하던 전산회계 2급 자격증은 오랜 자기 합리화 속에서 시험 8번 만에 땄다.


운전면허를 따라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운전면허 필기시험도 만만하게 생각했다. 전날 친구까지 데려와 밤늦게까지 놀았다. 그러고는 필기시험에서 떨어졌다. 또 자기 합리화를 시전했다.

"2종 시험 기준으로는 합격이었어요."

"1종 시험 쳐놓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 삼촌이 7급 공무원 시험을 응시해서 떨어져 놓고 9급 시험 기준으론 합격이라고 변명하면 사람들이 비웃지 않겠냐? 시험은 패스와 노 패스만 있는 거지. 거기에 어떤 다른 기준이 있냐. 어디 나가서 그런 이상한 얘기하고 다니지 마라. 사람들한테 무시당한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데, 통영에 있다는 핑계로 내가 소홀했구나 싶었다. 나 역시 술 마시고 놀러 다니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건 아닌가 싶어 내 생활부터 정비했다. 회사를 쉬는 동안 매일 일어나자마자 하루 3시간 이상 운동을 했다. 점심 먹고는 계속 공부하고 글을 썼다. 사실 이 글을 쓸 시간이 생긴 것도 회사를 쉬게 되면서부터이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고 밤 12시 전에 잤다. 그렇게 내 생활부터 바꿔 나갔다. 하지만 조카는 그런 나를 보고도 크게 느끼는 게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로 했다. 일일 계획표를 짜 오게 했다. 조카는 메모지에 성의 없이 아주 듬성듬성 계획표를 짰다. 계획표에는 ‘아침 7시에 일어나겠다’도 아니고, 그냥 7시에서 9시 사이에 일어나서 씻고 밥 먹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첫날은 7시 반쯤 일어났지만 며칠 지나 9시에도 일어나지 못했다.



조카는 운동을 좋아해서 집에서도 평소에 혼자 운동을 했다. 그런데 매일 늦게 일어나는 거 보면 운동으로 체력이 좋아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녀석을 불러서 무슨 운동을 하는지 물었더니 대부분 소위 ‘갑빠’를 키우는 운동이었다. 유산소 운동이나 복근 운동 등 힘들거나 체력을 만드는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운동조차 겉멋만 든 편식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물었다.


“사람들이 운동을 왜 하는 걸까?”

“음.. 몸을 만들기 위해서 아닌가요?”

“야이 녀석아! 새벽에 강변에 걷는 어르신들이 갑빠 만들려고 운동하냐? 건강하기 위해서 운동하는 거 아니냐. 건강하려면 체력을 길러야 하고. 그런데 네 운동에는 체력을 기르는 게 하나도 없으니 매일 운동하고도 병든 닭처럼 집에서 골골거리지.”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녀석에게 체계적인 운동을 시켜야 할 것 같아 PT를 끊어줬다. 나를 가르친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특별히 부탁했다. 엄살이 심하고 변명도 많이 할 테니 들어주지 마시라고. 저 아이 삶을 바꾸는데 힘을 보태달라고. 선생님도 의욕적이었다. 그렇게 조카는 며칠 동안 열심히 생활했다. 그런데 며칠을 못 가 다시 느슨해졌다.


그 사이에 몸이 나아졌으면 복귀를 해달라는 회사의 연락을 받았다. 예정보다 보름 빠른 복귀였다. 이대로 출근하면 바빠져서 다시 조카를 챙길 수 없을지 모른다. 이 고쳐지지 않는 습관들을 어떻게든 바꾸고 출근길을 올라야 했다.  갈피를 못 잡던 이십 대 초반의 나를 아버지는 어찌하셨던가 떠올렸다. 중요한 결심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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