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어머니한테 이런 전화가 왔다. 아직도 내가 못 미더우신 건가 싶어 자존심이 상한 날도 있었고, 그래서 바쁜 날은 귀찮은 마음에 짜증을 담아 퉁명스럽게 얘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하루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정말 자식이 못 미더워서, 밥 못 챙겨 먹고 다닐까 봐 걱정되어 전화를 하신 걸까? 그래서 주중에 먼저 전화를 드려 보았다. 언제 밥을 먹으러 갈지 약속을 잡고 일주일에 하루는 꼭 본가로 밥을 먹으러 들어갔다. 그랬더니 ‘밥 잘 먹고 다니냐’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밥 잘 먹고 다니냐’는 어머니 전화의 의미를. 밥 잘 먹고 지내는지 궁금한 게 아니라 “아들, 보고 싶다.”라는 의미였다는 걸. 언젠가부터 다시 전화가 오기 시작했지만 내용이 바뀌었다.
“아들, 큰 누나 시댁에서 고기가 왔는데.”, “아들, 엄마가 김장했는데.”
이 모든 말의 의미가 “아들, 보고 싶다.”였단 걸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알았다. 지금은 부모님의 전화가 오면 바쁘더라도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집에 들른다. 오전에 바빠서 잠깐 짜증을 부렸더라도 다시 집으로 전화를 걸어 저녁때 집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오늘도 전화가 왔다.
"엄마가 미역국 끓였는데."
김 조카에게 할머니가 부르셔서 본가에 가서 저녁 먹고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의 전화에 대해 그 의미를 설명하며 하며 덧붙였다.
“삼촌도 나중에 나이 들어 은퇴하면 집에 혼자 있겠지. 가끔 너한테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연락할 거야. 그 전화는 너 밥 굶고 다닐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야. ‘네가 보고 싶다’는 의미이지.”
집에 가면 종종 어머니께 김 조카에 대한 투정을 한다.
‘엄마, 얘는 편식이 심해요.’, ‘햄이나 스팸 같이 유통기한 긴 걸 먼저 먹고, 나물반찬을 나중에 먹으니까 쉬어서 반은 썩혀 버렸어요.’, ‘쌀 하고 반찬 사놓았더니 안 먹고 맨날 배달시켜 먹더라고요. 그 바람에 해 놓은 밥은 다 굳어서 또 버리고요.’, ‘저번에 주신 반찬 안 먹길래 상할까 봐 제가 다 먹었어요.’
당시 통영에 근무하고 주말에만 집에 있었기 때문에, 일주일치 반찬을 미리 사서 냉장고에 재워 두었다. 그런데 김 조카는 내가 사놓은 반찬을 성실히 먹지 않았기에, 쉬어서 버려지는 음식이 많았다. 편식도 심하고 음식에 대한 절약 개념이 없었다. 밥솥에 밥이 조금 오래됐다 싶으면 모두 버렸다. 빵을 사놓고 가도 손도 안대서 일주일 뒤에는 상해 있었다. 선입선출이 없었다. 자기 입맛에 맞는 자극적인 음식만 골라서 먼저 먹었기에, 이미 사놓은 반찬이나 빵, 우유 등은 상해서 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실컷 조카의 식습관에 대해 흉보다 보니 일부는 나의 어린 시절과 닮았다는 걸 알았다. 나도 어린 시절 편식이 심했다. 그래서 아버지께 잔뜩 혼이 났다. 어머니는 내 편식을 나무라시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해 주셨다. 미역국을 좋아하는 걸 알고는 3개월 동안 미역국을 끓여 주신적도 있다. 아침·점심·저녁 하루 세끼, 세 달 동안 미역국을 먹으니,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도 계속 먹으면 질릴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어머니께 이제 미역국을 그만 먹겠다고 하니 메뉴를 바꿔 주셨다. 물론 어머니가 내 식습관을 고치기 위해서 미역국을 세 달 동안 끓여주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자식이 잘 먹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을 거다.
김 조카의 흉을 보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조카에게 나는 부모 같은 사람인데, 내 부모처럼 조카가 잘 먹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는 사람이라거나, 어떻게 하면 잘 먹을지 고민하는 사람이 아닌, 밉게만 보는 사람이었던 거다.
어머니께 미역국을 한솥 받아서 김 조카에게 전해줬다. 맛있게 먹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져서할머니의 말을 전했다.
"할머니가 엄마한테 못 얻어먹은 미역국 할머니한테라도 많이 얻어먹어야지라고 하시더라."
"감흥 1도 없는데요?"라고 녀석이 바로 맞받아쳤다.
"그래. 삼촌은 그게 참 아쉬워. 네가 핸디캡 때문에 남들과 같은 평균적인 경험과 감성을 가지지 못한 게. 엄마라는 존재는 내가 아프면 제일 먼저 달려와서 나를 지켜주고 안아주는 따뜻한 존재거든. 내 식성도 제일 잘 알아서 항상 내가 잘 먹고 건강하길 바라며 챙겨주시고. 살면서 다른 사람을 대할 때마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이 느낌을 모르면 참 불편할 거란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라고 간접적으로 익혀두면 좋겠다."
어머니가 나를 낳고 몸조리할 때 자신의 어머니(외할머니)가 끓여 주셨을 미역국, 편식하는 나를 잘 먹이려고 끓이던 그 미역국에 대한 감성은 김 조카에게 닿지 않는다. 녀석에겐 엄마란 존재는 증오의 대상이니까..
(그러면서 맛있다고 미역국을 내 몫까지 혼자 다 처먹었다.. 짜슥)
어느 날처럼 어머니 연락에 본가에 가서 고기를 먹었다. 그런데 혼자 고기를 먹은 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서 삼겹살을 사서 조카에게 건네주었는데, 녀석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엔 고기반찬이 없는 거 같아서. 너 고기 좋아하냐?”
“좋아서 죽죠!”
녀석의 반응을 보니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김 조카는 시설에서 자랐다. 시설에서는 영양사를 통해 정해진 시간에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받았다. 학교에서도 급식을 하니 똑같다. 반찬이나 국에 고기가 담긴 음식 하나쯤은 있고, 오늘 반찬은 마음에 안 들더라도 내일 반찬은 다르니 마음에 안 드는 식단도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삼촌이란 사람은 주로 김치와 나물 반찬으로 간단히 식사를 때운다. 반찬을 새로 사 와도 고기처럼 식욕을 자극하는 메뉴는 없었다. 녀석이 종종 배달을 시켜 먹고 라면을 일주일에 몇 번씩 끓여 먹는 이유가 조금 이해가 되었다.
조카가 모처럼 해맑게 웃었다. 고기 맛에 행복해하는 녀석을 보며, 다시금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미역국이 떠올랐다. 장을 볼 때 조카가 좋아할 만한 고기반찬을 챙기게 되었다. 그러니 녀석이 인스턴트를 먹는 비중도 줄었다. 2020년의 마지막 날은 소고기 집에서 외식을 했다. 고기를 구우며 생각했다. 내가 미역국을 통해 느꼈던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김 조카도 나에게서 느낄 수 있을까? 먼 훗날 자신의 아이들에게 고기를 구워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