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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회 Jan 21. 2021

21. 다시 법정으로

장발장, 그 후 8년

다시 법정으로 돌아왔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훔쳐서 감옥으로 갔던 청년 장발장을 만난 지 8년 만이다. 김 조카가 상상한 검사급은 아니지만, 어느덧 법원 계장도 되었다. 법복을 입고 8년 전 그 형사법정에 앉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법정으로 희끗하게 정리되지 않은 머리를 한 카키색 수의의 남성이 들어왔다. 50대의 피고인이었는데 키도 몸도 작았다. 16살부터 범죄를 저질러 전과는 20범에 감옥을 다녀온 것만 해도 13번이나 됐다. 그의 삶 5분의 2 가량을 차디찬 감옥에서 보낸 사람이었다. 이번엔 식당에서 무전취식을 하고 체포되었다. 현행범으로 체포되던 날. 자신을 체포하는 경찰관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알아서 해라. 겨울이라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죽을 것 같고 너무 힘들다. 감옥에 가고 싶다.”


기록을 보며 청년 장발장을 다시 떠올렸다. 세상 모든 것이 불공평하여, 내 시계 8년 흐르는 동안 그의 시간만 30년이 흐른듯한 착각이 일었다. 중년 장발장이 긴 호흡으로 최후변론을 했다.


“밖에서 생활한 9개월 동안 행복했습니다. 출소하고 사람들이 도와줘서 방도 구하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일자리도 없어지니까 11월 중순 넘어서는 돈이 떨어져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밤새도록 떨면서 동백섬의 동상 아래 차가운 바닥에서 잤습니다. 쪽팔림이고 자존심이고 다 버렸었습니다. 사람이 왜 추워서 죽는가. 왜 배고파서 사람이 힘든가. 그런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 다시 섰지만 선처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징역도 많이 살았고요. 법정도 오기 싫습니다. 밥은 주겠지만 교도소도 돈이 없으면 힘듭니다. 양말 하나 사기도 힘들고요. 그래도 왜 여기까지 왔냐면요. 너무 마지막에 기댈 데가 없었습니다. 형님과 누나들이 있지만 옛날에 나를 너무 많이 도와줘서 얘기하기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이 길을 택했는데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 죗값을 받고요. 날이 따뜻할 때 출소해서 내 힘이 되는 데까지 돈을 벌어서 열심히 다시 살아보겠습니다."


비록 다시 죄를 지어 또 감옥에 가겠지만 중년 장발장은 청년 장발장처럼 무기력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일자리도 없어지기 전까지 새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전과 20범인 그를  포기하지 않고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와준 사람들에게 미안해할 줄 아는 염치도 생겼고, 뒤게나마 온전한 삶을 살아보고픈 의지가 생겼다. 그 말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의 최후 변론을 통해 장발장들에게 희망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장발장이 중년이 됐다고 느낄 만큼이나 내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보육원의 아이를 먼 친척 어른이나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돕고 싶었다. 장발장 같은 범죄자가 되길 바라지 않았고, 머리가 짧은 아이처럼 슬픔이 가득 찬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평범한 시민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후원을 시작했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도 피가 섞이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김 조카를 7년 후원했고 현재 1년간 동거 중이다.


갈등도 있었지만 녀석의 삶은 정상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내가 부모님께 보고 배웠던 것들이 조카에게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 이제 녀석은 아침을 일찍 시작하고 책을 읽으며 운동도 하고 뉴스를 본다. 아르바이트도 찾아보고 나와 다양한 문제를 대화한다. 스스로 제법 그럴싸한 계획도 세우기 시작했다. 나의 그늘에서 벗어나 성인으로, 진정한 자립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1년 전 보육원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후원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상은 상습절도로 소년재판을 받는 녀석이었다. 경험을 통해 후원자의 세상이 시장 같다고 느낀 터라, 고등학교 1학년의 절도범은 상품성이 없을 거라 예상했다. 애초에 후원하기 꺼려하거나 후원자가 상처 받고 아이를 비난할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내가 후원하기로 했다. 김 조카가 무기력하긴 했지만 질서를 어기는 아이는 아니었기에, 사고를 친 새 조카를 챙기는 것은 나에게도 긴장되는 일이다.



1년 반 전엔 SNS 친구로부터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칠드런>의 주인공 '진나이'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궁금해서 읽어 봤는데 일본의 가사조사관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설에는 "가정재판소의 조사관이 샐러리맨보다 더 많은 경험하는 일은 배신 당하는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많은 후원자들이 보육원 아이들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것을 보아왔고 아이들의 영악함도 어느 정도 알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문제아들은 갱생이 안 된다며,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을 편견으로 대하는 어른들을 향해 가사조사관 진나이는 이렇게 말했다.


“안 되는 놈은 아무리 해도 안된다고, 당신들은 그렇게 말했지. 절대로 갱생시킬 수 없다고. 그것을 우리가 하는 거야. 우리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야. 당신들, 직장에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어? 애당초 어른이 폼 나면 아이도 폼이 나게 돼 있어.”


가사조사관은 양육권 문제, 소년범의 처분 등 아이들에게 중요한 문제들을 들여다본다. 비록 소설이라 과장된 모습이겠지만 훗날 진나이처럼 법원 가사조사관에 도전해볼 마음이 생겼다. 이번에는 후원자나 키다리 아저씨, 삼촌이 아니라 직장에서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 아이들을 폼 나게 할 수 있는 폼 나는 어른으로 조카들, 소년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아이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희망이며 미래다. 아이들을 나와 어깨를 마주할 시민으로 성장하는 그 날까지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찾으며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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