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5일 월요일 -
♡ 김 안드레 아르네센(Kim André Arnesen, 1980~ )
< '정의의 노래'.『상처받은 세상을 위한 8가지 복』중 / 'Song for Justice' from 『Tuvayhun - Beatitudes for a Wounded World』>
■ https://youtu.be/O-EXk9_2Fxk?si=Rhe8y3bkI75PU_rN
아침 온도 섭씨 21도, 밤마다 내리는 이슬에 강아지풀의 풀씨들도 여물어간다.
땅이 말라가기 시작하면 이제 녹색의 풀들도 푸른색이 빠지기 시작할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혼돈을 거듭하고 있는 인간의 시간은 과거로 회귀하는 곳, 미래를 향해가는 곳,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곳까지 뒤죽박죽이지만 자연의 시간이라도 한결같아 고맙다.
인류 역사에서 요즘과 같은 전지구적 스케일의 혼돈과 갈등은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2025년 기준 82억 명의 인구수도 처음일 테고.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선조들의 탁월한 비유 그대로 요즘 지구는 바람 잘 날이 없다. 문제는 가지를 쳐낸다고 가지를 흔드는 바람이 멈추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바람의 세기도 점점 거세져 뿌리까지 뽑을 기세라는 점이다.
기후변화, 디지털과 AI 혁신(또는 위협), 사회 양극화, 전쟁과 갈등...
인류 역사에 이렇게나 복잡한 문제들이 동시에 터진 적은 없었다. 빙하기에도 생존했었고, 극단적인 종교전쟁과 계급갈등, 전 지구적 규모의 전쟁에서 핵폭탄까지 터뜨렸어도 아직 인류는 생존해 있긴 하다. 하지만, 과거 인류의 위기 때는 각각의 위기적 상황들이 시기나 장소들이 엇갈려 뭔가 대처할 여지가 있었던 반면, 이제 소위 지구촌을 이루고 살게 된 인류에게 이번의 위기 상황들은 누가 원인이 되었든 그 시작이 어디였든 관계없이 공존(共存)과 공망(共亡)의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얼마 전 브런치에서도 인용했던,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란 고사처럼 인류 개개인, 즉 인간 한 명 한 명의 지각과 감각능력은 지극히 제한적으로밖에 '진실'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코끼리 귀를 만지고 부채를 만졌다고 말한 장님과 다리를 만지고 기둥 같다고 말한 장님이 서로가 감각한 정보가 똑같이 코끼리를 만지고 얻은 정보라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가진 지식을 나눌 수 있었다면, 그렇게 더 많은 장님들이 서로 자신의 감각한 내용을 공유할 수 있었다면 그들 모두는 적어도 코끼리 표면에 대해서만이라도 실체적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 있었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혜로운 인간'을 뜻하는데, 과연 호모 사피엔스는 앞서 먼저 사라져 갔던 유인원들과 달리 이번에도 난마(亂麻)처럼 얽힌 생존의 방정식을 풀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들이 가졌던 가장 큰 힘이 '신뢰'와 '협력'으로 구축한 사회적 관계에서 나온 '문화의 힘'이란 걸 다시 깨달을 수 있을까?
마셜 매클루언의 주장처럼 인간은 전기를 통해 자신의 신체능력을 확장해 지구촌을 만들었지만, 늘어난 신체능력만큼 의식능력의 확장은 달성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의식은 AI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확장될 수 없는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나는 아직 인간의 뇌 자체만으로도 확장 여력이 있다'라고 믿는 편이다. 인간 뇌의 능력은 아직 인간이 만든 어떤 슈퍼컴퓨터도 따라오기 힘들 뿐만 아니라(뇌의 아주 작은 부분인 운동능력을 담당하는 소뇌와 운동피질의 역할조차 슈퍼컴퓨터는 정확히 계산해내지 못한다.) 인공지능이 초인공지능(Artificail Super Intelligence)으로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합리적 추론뿐만 아니라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판단까지 서슴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인간 뇌의 주체성과 모순성은 쉽게 학습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AI는 최적화된 해결책은 제시하겠지만, 그것이 인간처럼 일부러 실패할 수 있는 자율성은 갖기 어려울 것이다. AI가 인간처럼 자율성까지 갖게 된다면 그들은 굳인 인간과 공존할 이유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초인공지능이 그렇게 스스로 선택과 판단을 하게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류의 재난이 될 것이다.)
인간이 AI와 컴퓨터보다 부족해 보이는 능력은 사실 뇌의 기능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인류가 서로 소통하는 방식, 즉 말과 문자, 몸짓과 같은 커뮤티케이션 능력일 수 있다.
컴퓨터는 서로 전기적 신호를 통해 인간들이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도로 엄청난 양을 빠른 속도로 교환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들은 말과 문자 이외에 몸짓과 표정 등을 통해 자신의 지식과 감정을 전달하여 소통하지만,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머릿속의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고자 하는 만큼의 10%(1%도 못할 때가 있다)라도 오류없이 전달할 수 있을까? 인간의 오해와 갈등의 거의 99%는 그렇게 제때 정확하게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지 못해 발생한다.
그래서, 인간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연구는 어쩌면 AI를 통해 말과 글을 넘어서는 인간 간 소통을 위한 기술 을 더 열심히 개발해야 하는 건 아닐까?(AI가 인간 언어를 학습하여 지금의 놀라운 능력을 가지게 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인간들의 모순되고 부조리한 생각들이 담긴 언어와 그 언어로 기록된 역사를 학습한다면 가능할 수 있을까?)
오늘 아침, 갈등과 혼돈의 온갖 부조리한 상황으로 가득찬 국제 뉴스를 보다가 이런 음악이야말로 말과 글을 넘어선 가장 놀라운 인류 소통의 예시가 아닐까 싶었다. 작년 합창음악을 찾아 듣다 발견한 곡인데 작곡가가 노르웨이 출신이다. 김 안드레 아르네센의 '투바이훈(복이 있도다)-상처받은 세계를 위한 축복'...
작곡가 킴 안드레 아르네센(Kim André Arnesen)이란 이름에 들어가 있는 'Kim'이 혹시 한글 성씨에서 유래한 게 아닐까 싶어 구글링을 해보니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에서 'Kim'은 독립적인 남성 이름으로 Joachim의 애칭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Kim은 '요아킴(Joakim)'의 줄임말로 '요아킴'은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성경식 이름으로 "하나님이 세우신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2018년에 대규모 합창-관현악 곡으로 작곡되었고, 오늘 소개한 '정의의 노래'는 『투바이훈 - 상처받은 세계를 위한 축복(Tuvayhun - Beatitudes for a Wounded World)』의 15번째 악장이라고 한다.
'Song for Justice'는 예수의 팔복(八福 Beatitudes, 예수 그리스도가 산상수훈(마태복음 5장 1-12절)에서 가르친 여덟 가지 축복(祝福)에 대한 말씀) 중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福)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 곡은 빈곤, 차별, 박해에 대항하는 선언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이를 사회적 정의라고 해석하였다.
이 합창곡이 어떤 사회적 정의를 담고 있는지 다음의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We sing for the poor. We sing for the weak. We sing for the helpless, The hopeless, the meek. We sing out the truth Against hunger and hate. We sing out for justice Before it's too late!"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노래한다. 약한 이들을 위해 노래한다. 무력한 이들을 위해, 절망하는 이들을, 온유한 이들을 위해 노래한다. 우리는 굶주림과 증오에 맞서 진실을 노래한다. 너무 늦기 전에 정의를 위해 노래한다!")
이 작품은 *SATB 혼성합창 또는 SSAA 여성합창을 위해 작곡되었으며, 피아노 반주와 함께 현악기와 타악기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투바이훈 전체 작품은 클래식, 재즈, 월드뮤직의 요소를 혼합한 하이브리드 작품으로, 고대와 현대,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넘나 든다.
(* S (Soprano, 소프라노): 가장 높은 음역대의 여성 또는 어린 소년 성부/ A (Alto, 알토): 소프라노보다 낮은 음역대의 여성 또는 어린 소년 성부 / T (Tenor, 테너): 가장 높은 음역대의 남성 성부 /B (Bass, 베이스): 가장 낮은 음역대의 남성 성부 등 4성부를 뜻함)
요즘은 종교마저도 인류 사회의 통합적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지만, 합창곡 '투바이훈'은 성경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상처받은 우리 세상"의 환경 위기, 대량 이주, 정치적 양극화, 소득 불평등 증가, 권위주의 정권의 부상 등 현대 사회의 균열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처들을 치유하기 위해 '포용', '신뢰', '친절', '연민', '인간성', '상호 존중'이 필요하며 서로 다른 우리의 차이점을 포용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곡은 2019년 3월 31일 니다로스 대성당에서 초연되었으며, 전 세계 합창단에서 이 곡을 레퍼토리로 활용하고 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기도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밴쿠버 청소년 합창단의 연주가 특히 주목받았다.
김 안드레 아르네센(Kim André Arnesen, 1980년 11월 28일생)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현대 합창 작곡가 중 한 명으로 노르웨이 트론헤임에서 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 MTV를 매일 시청하며 10살에 더 큐어(The Cure)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한다.(하교 파티에 립스틱을 바르고 참석할 정도로 더 큐어에 빠져있었다고)
10살 때부터 니다로스 대성당 소년합창단에서 활동하면서 클래식 음악에 접하게 되었고, 이 무렵 피아노도 배우면서 음악적 재능을 키웠다고 한다.
트론헤임의 음악원에서 다양한 장르의 배경을 가진 선생님들로부터 음악을 공부했는데, 특히 전 재즈 피아니스트와 포크/팝 음악가 출신의 교사들이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김은 이들로부터 "음악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위한 것이지, 수학 공식처럼 연구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철학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1999년, 18세에 니다로스 대성당 소년합창단과 함께 그의 첫 작품을 발표했고, 그의 곡들은 곧 지역 음악인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곡은 인터넷을 통해 노르웨이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2016년 그의 대표작 'Cradle Hymn'이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위해 연주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가 작곡한 곡을 멀리 미국 볼티모어의 노트르담 인스티튜트 합창단이 백악관 리셉션에서 연주학 되었고, 아르네센은 공연 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를 "노르웨이의 춥고 먼 작은 도시 출신인 자신에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이라고 기뻐했다고 한다.
그렇게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에서 연주되던 아르네센의 곡 중 2014년 발표된 첫 번째 앨범 'Magnificat'은 2016년 그래미 어워드 Best Surround Sound Album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하는 등 일찍부터 그의 작품은 세계의 많은 곳에서 불리며 주목받았다.
아르네센은 트론헤임에서 평생을 보냈고(오슬로에서 3년 거주 제외), 가끔 예배에 참석하지만 "해야 하는 만큼 자주는 아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할 만큼 예배에 집착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 또한 과학에 대한 관심과 종교적 신앙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기도와 같은 종교적 경험은 소중하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그는 미국인들이 자신의 작품이 좋아한다고 알려지자 그 또한 레너드 번스타인의 '카디시(Kaddish)'를 좋아한다며 미국 팬들에게 대한 감사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그는 "때로는 우리의 영적 공간에 들어가기 위해 단순하고 접근하기 쉬운 것이 필요하다"며 교회음악이야말로 대중음악처럼 대중적이어야 함을 주장하기도 한다.
아르네센의 이러한 철학과 생각들이 그를 현재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인기 있는 세계적인 합창 작곡가로 만든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 아르네센의 첫 앨범 작품 중 그래미 어워드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Magnificat'을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UkVaXRLenVY
♥ 축하해요
- 나태주
날마다 반복되는 하루하루 그날이 그날
지루하기도 하고 짜증도 나고
그래서 때로는
어디론가 탈출하고 싶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당신, 큰 병에 걸려 병원에 오래
갇혀서 사는 사람이라 생각해봐요
기약 없는 여행길 떠나 먼 나라
흰 구름으로 떠돈다고 생각해봐요
얼마나 지금 그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겠어요?
날마다 그럭저럭 보내는
그 날이 그 날인 날로 돌아오고 싶겠어요?
축하해요! 축하해요!
당신의 하루하루
아무 일도 없는 무사한 날들을 축하하고
평상의 작은 시간들을 축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