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9월 17일 수요일 -
♡ 프레데리크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 1810~1849)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그랜드 폴로네이즈, 내림마장조 Op.22/Andante spianato and Grande Polonaise Brillante, Op. 22>
■ https://youtu.be/oS_XjkILFMY?si=9Cp5yDP5S85r7KrM
아침 산책길에 길가에 늘어선 은행나무 아래 조금 일찍 낙과(落果)한 은행(銀杏)들을 발견했다. 다행히 아직 그 수가 많지 않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밟힐 정도는 아니었다. 하필 서울에는 가로수로 은행나무를 심은 곳이 많아 '서울의 가을'하면 떠오르는 것이 '쨍하게 푸른 하늘'과 함께 '은행의 악취'일 정도인데, 벌써 은행알들이 곳곳에 떨어진 것을 보니 확실히 가을이 성큼성큼 이 땅을 지나고 있음을 느낀다.
노란 은행잎들이 휘날리는 가을의 길거리는 너무 낭만적인데, 그 낭만을 송두리째 거둬들이는 '은행의 악취'라니... 가끔씩 낙과한 은행들이 길바닥에 너무 많이 깔려있어 도무지 피하지 못해 몇 개를 신발로 으깨뜨린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가 은행나무를 가로수가 심었을까 하며 고약한 냄새에 불만을 터뜨린 적들이 있을 것이다.
은행나무는 말 그대로 은행이 열리는 나무의 합성어인데, 은행(銀杏)은 '은(銀)'과 '행(杏)'이 합쳐진 말로 앞 글자 '은(銀)'은 한자 그대로 금속의 은을 뜻한다. 은행나무의 열매가 은색으로 희고 둥근 모양이기 때문이다. 뒤의 '행(杏)'자는 '살구나무'를 뜻하는데, 은행이 살구의 모양과 크기를 닮았기 때문이다. 뜻만 가지고 풀어보면 "은빛의 살구가 열리는 나무!", 너무 예쁜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지금의 은행나무에서 '은(銀)'도 '살구(杏)'도 좀 많이 낯설다.
우리는(!?, 나는) 은행 열매의 은색껍질보다는 은행잎의 노랗게 물든 단풍에 더 익숙하고, 어릴 적 실물로 '살구'를 자주 접하지 못한 탓에 비누 등의 세정제품에 사용된 달콤한 인공의 살구향과 '으깨면 악취 천국의 은행'이 도무지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젯밤 비에 떨어진 은행 몇 알 때문에 오래전 은행알을 밟았던 기억이 소환되면서 정작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떠오른 생각들은 저만치 달아나 버렸는데, 아마도 가을비가 너무 길지 않았으면 한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가을의 시골길을 차로 달리다 보면 어머니께서는 항상 9월의 따가운 햇살과 차가운 이슬이야말로 곡식과 과일을 최고의 성숙(成熟)으로 이끄는 신의 가장 큰 축복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뜨겁고 습한 여름철 한 껏 몸을 불린 곡식과 과일들이 갑작스러운 차가운 기운에 움츠러들고 위축될 때 9월의 햇살은 스스로 그 차가운 기운을 이겨낼 수 있도록 안을 단단하고 알차게 만드는 지혜를 가르쳐주는 자연의 마지막 시련이자 축복이라고 하셨다.
올해는 추석이 늦어져 가을비가 요 며칠 따가운 9월의 햇살을 가리고 있어도 햇곡과 과일들이 충분히 익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빨리 쨍하게 푸른 하늘과 따갑지만 성숙(成熟)의 지혜를 일깨우는 가을 햇살을 보고 싶다.
오늘은 시작 부분을 듣고 있으면 그냥 평온한 가을 아침이 떠오르는 쇼팽의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그랜드 폴로네이즈를 골라보았다.
이 곡은 쇼팽이 1830년부터 1834년에 걸쳐 쓴 작품으로, 폴란드인으로서의 민족적 정체성과 자부심, 그리고 낭만주의 시대의 화려한 기교가 결합된 쇼팽의 대표작 중 하나다. 또한 이 곡은 쇼팽이 조국을 떠나 유럽 각지를 떠돌며 겪은 시대적 아픔과 고뇌가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1830년 11월, 바르샤바에서 러시아의 지배에 맞선 11월 봉기가 발발했다. 니콜라이 1세가 폴란드의 헌법과 의회를 무시하고 스스로를 폴란드 왕으로 선포한 상황에서, 콘스탄틴 대공은 비밀경찰을 풀어놓고 언론 자유를 폐지하며 빌뉴스 대학(현재는 리투아니아 소재)을 폐쇄했다. 프랑스의 7월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폴란드군을 동원하려던 러시아의 계획에 맞서 바르샤바 사관학교 생도들이 콘스탄틴 대공의 궁전을 습격하며 시작된 봉기였다. 쇼팽은 봉기 발발 3주 전인 1830년 11월 2일 바르샤바를 떠나 드레스덴, 빈, 잘츠부르크, 뮌헨을 거치는 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친구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투쟁에 참여했지만, 쇼팽은 홀로 빈에 머물며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참가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1831년 9월, 파리로 향하던 중 봉기가 잔혹하게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쇼팽은 절규하며 일기에 "오, 신이여!... 당신은 거기 계시면서도 복수하지 않으시는군요!"라고 썼다. 이러한 정치적 격변과 조국 상실의 아픔은 쇼팽의 음악 어법을 후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전환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831년 가을, 쇼팽은 조국 폴란드를 떠나 빈을 거쳐 파리에 도착한다. 파리에서 쇼팽은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망명 생활의 아픔을 음악에 담아내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 시기에 쇼팽은 그의 재능을 알아본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였던 프랑수아 앙투안 아베네크(François-Antoine Habeneck)의 연주회에 초청받게 된다. 아베네크는 '콘세르바투아르 콘서트'를 주관하는 인물로, 당시 파리 음악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 중 하나였다. 이 초청은 쇼팽이 파리의 음악계에 공식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고, 1835년 4월 26일에 열린 그 첫번째 자선 콘서트에서 쇼팽은 오늘 소개한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그랜드 폴로네이즈'를
초연하게 된다. 이 무대는 쇼팽이 파리에서 연 유일한 공개 콘서트였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이 작품은 원래 두 개의 독립적인 곡으로, 각각 다른 시기에 작곡되었다. 먼저《화려한 그랜드 폴로네이즈(Grande Polonaise Brillante)》는 쇼팽이 조국 폴란드를 떠나기 직전인 1830년 바르샤바에서 작곡을 시작해 1831년 빈에서 완성한 곡이다. 쇼팽은 아베네크가 초청한 콘서트의 레퍼토리로 《화려한 그랜드 폴로네이즈》를 선택하였지만, 이 폴레네이즈에 어울리는 서주를 추가로 작곡해 포함시키게 되는데, 그렇게 탄생한 곡이 《안단테 스피아나토(Andante spianato)》다.
'Andante'는 '느리게', 'spianato'는 '평온하고 고르게'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쇼팽이 조국 폴란드를 떠나며 느낀 슬픔과 이를 달래려는 듯한 평온하고 서정적인 감정을 담고 있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특징으로, 마치 호수가의 잔잔한 물결을 연상시킨다. 《Andante spianato》는 G장조로 작곡된 피아노 독주곡으로, 6/8박자의 매우 조용하고 부드러운 4마디 아르페지오 서주로 시작한다. 이 서주는 극도로 평온하고 매끄러운 호수 표면을 묘사하는 듯하다. A섹션은 3개의 하위섹션으로 구성된 3부 형식을 취하며, 코다가 뒤따른다. B섹션에서는 박자가 3/4로 변화하며, ababa 구조의 론도 형식 또는 3부 형식을 보인다. 선율은 서정적이면서도 우울함이 깃들어 있으며, 부드럽게 굴러가는 반주 위에 펼쳐진다.
이보다 먼저 작곡한 '화려한 그랜드 폴로네이즈(Grande Polonaise Brillante)'는 내림마(E♭) 장조로 작곡되었으며 솔(G)음을 중심으로 한 장엄한 팡파르로 시작한다. 사(G)장조에서 다(C)단조를 거쳐 내림마(E♭)장조의 반종지에서 정지한 후, 곧바로 3박자의 폴란드 민속춤 폴로네이즈의 특징적인 리듬을 바탕으로 첫 번째 주제가 시작된다. 오케스트라는 간헐적으로 반주 역할을 할 뿐, 피아노가 곡의 중심을 차지한다. 중간 에피소드는 내림(E♭)장조에서 시작하여 격동적인 다(C)단조로 전개되며, 화려한 패시지로 가득한 길고 웅장한 코다로 마무리된다.
이 작품은 쇼팽의 마지막 *콘체르탄테(concertante) 스타일의 작품이자 화려한 기교를 과시하는 마지막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콘체르탄테'는 협주곡(concerto)의 일종으로 단순히 솔로 악기가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연주하는 것을 넘어, 때로는 오케스트라가 멜로디를 주도하고 솔로 악기가 이를 뒷받침하기도 하며, 두 요소가 마치 대화를 나누듯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양식은 솔로 악기의 기교와 오케스트라의 풍부한 음색을 동시에 부각하는 것이 특징이다. 쇼팽은 이 작품 이후로는 오케스트라가 동원되는 대규모 작품보다는 피아노의 독주적 성격이 강한 소품 위주로 작곡활동을 이어갔다.)
1835년 4월 26일, 아베네크가 주관하는 콘세르바투아르 자선 콘서트에서 쇼팽은 이 작품을 초연했다. 당시 파리 음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였던 프랑수아 앙투안 아베네크가 주관하는 콘서트에 초청받았다는 것 자체가 쇼팽의 위상을 증명하는 일이었는데, 초연은 대성공이었다. 이날 청중들은 쇼팽의 뛰어난 연주 기교와 그의 음악이 가진 낭만적인 감성에 깊은 감명을 받고 열광했다. 이 공연을 통해 쇼팽은 파리 음악계의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그의 작품에 대한 높은 평가와 관심이 더욱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초연 당시 쇼팽 자신도 이 작품에 매우 만족해했으며, 이후 중요한 무대에서 연주할 곡으로 자주 선택했다. 1836년에 파리의 슐레징거 출판사에서 피아노 독주용과 피아노 협주용 두 가지 버전으로 출간되었고, 작품은 당시 쇼팽의 귀족 제자였던 프랑세스 사라 데스트 남작부인(Baroness d'Est)에게 헌정되었다. 완전한 제목은 《Grande Polonaise brillante, précédée d'un Andante spianato, Op.22》다.
19세기 초 피아노 콘서트에서 높은 연주기교와 화려한 표현력은 가장 중요한 성공요소였다. 쇼팽의 콘세르바투아르 자선 콘서트에서 보여준 화려하고 수준 높은 기교는 이 모두를 만족시킨 대단한 연주였다. 당시 평론가들은 쇼팽이 작곡한 곡에 대해서 훔멜, 칼크브레너, 픽시스, 체르니 같은 피아니스트-작곡가들이 추구하던 "뉘앙스의 다양성, 아티큘레이션의 명확성, 대조의 선명함, 실행의 신속함"이라는 이상을 구현한 작품이라며 극찬했으며 쇼팽의 이날 연주 또한 당대 최고 수준의 기술적 숙련도를 보여주는 동시에 표현적 완성도 또한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 작품은 쇼팽이 소개한 폴로네이즈 형식을 통해 민족주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일깨움으로써 19세기 초 등장한 민족주의 음악 운동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후대 작곡가들의 협주적 작품 작곡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라흐마니노프가 쇼팽의 주제를 사용하여 《쇼팽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 22》를 작곡하는 등 후대 작곡가들에게 직접적인 영감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쇼팽의 독특한 피아노 작법은 연주자와 작곡가들이 악기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19세기 내내 쇼팽 작품들은 다양한 편곡과 변주로 이어졌다. 특히 쇼팽은 마주르카와 폴로네즈를 통한 폴란드 민족주의 음악의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했으며, 후대 민족주의 음악 운동의 모델이 되었다. 이 작품은 낭만주의 시대 피아노 음악의 기념비적 작품 중 하나로 인정받으며, 오늘날까지도 피아니스트들의 주요 레퍼토리로 사랑받고 있다.
■ 앞서 가장 속도감 있는 다닐 트리포노프의 쇼팽 콩쿠르 2차 본선에서의 연주를 감상했다면, 같은 곡을 피아노의 여제라 불렸던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로 비교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Uafwe0vjf8U
■ 같은 곡을 강렬한 기교와 에너지의 소유자인 이브게니 키신의 연주로도 비교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3pMt9iIGogI
♥ 가을 엽서
-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