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여름 태풍과 가을비...

- 2025년 9월 18일 목요일 -

by 최용수

♡ 에이토르 빌라 로보스(Heitor Villa-Lobos, 1887~1959)

< 브라질 풍의 바흐 제5번 / Bachianas Brasileras No.5 >


https://www.youtube.com/watch?v=Qe7bKttgT6U


요즘은 아침에 뉴스사이트를 둘러보는 일이 정신적으로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매일 아침 분열과 갈등, 전쟁(이스라엘이 또 가자지구를 맹폭하고 있다)으로 도배된 이 엉망진창 세계의 모습을 살피고 있으면 도대체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원래 세상이 이런 건지, 앞으로 이 세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 건지, 온갖 잡다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창밖 세상은 짙은 회색빛, 언제라도 비가 쏟아질 태세이고, 점점 해 뜨는 시간이 늦어지면서 오전 7시가 다되어가는데도 마치 밤이 오기 직전 저녁 어스름 같은, 해가 세상에 나오려다가 다시 잠자러 들어가려는 듯 긴장 풀린 흐린 빛이다. 그마저도 짙은 회색구름에 존재감을 느끼기도 힘들다.


아침이 이렇게 무기력해도 되는 것일까? 이런 날은 도대체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할까 유튜브를 뒤지고 있는데, 눈에 확 들어온 제목의 영상이 있었다.


"태풍이 사라진 여름..."


그러고 보니, 작년도 올해도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 피해 뉴스는 익숙한데 태풍에 관한 소식은 뜸했던 것 같다. 어릴 적 이맘때 "추석을 앞두고 늦깎이 태풍으로 수확을 앞둔 농가의 피해가 우려된다" 같은 뉴스를 거의 해마다 듣고 자랐던 나에게 '태풍이 사라진 여름'은 이제 '기상 이변'이야말로 내 남은 인생에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상수(常數)'가 되었음을 확인시키는 제목이었다.

그 내용을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 AI에게 20 문장으로 정리해 달라고 했다.


1. 올해 여름 한반도에는 예년과 달리 태풍이 거의 오지 않았다.

2. 태풍이 오지 않은 가장 큰 원인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강하게 확장한 데 있다.

3. 이로 인해 태풍의 경로가 한반도 대신 중국이나 베트남 쪽으로 치우쳤다.

4. 기후변화와 해수면 온도 상승도 태풍의 활동 패턴을 바꾸고 있다.

5. 여름 태풍의 부재는 오히려 한반도에 가뭄과 폭염을 심화시키는 위험을 초래한다.

6. 엘니뇨와 라니냐 등 이례적 기상이 함께 나타나며 변동성이 커졌다.

7. 태풍이 여름이 아니라 가을에 집중될 수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8. 전문가들은 올해 가을에 강력한 태풍이 여러 개 올 가능성을 우려한다.

9.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 태풍의 발달이 더 강력해질 수 있다.

10. 가을은 농작물 수확기여서 태풍이 오면 피해가 더 크다.

11. 늦가을 태풍은 방재 준비가 미흡해 피해가 확대될 수 있다.

12. 태풍이 한반도로 북상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13. 최근 기후가 불규칙해져 태풍 예측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14. 만약 가을에 슈퍼태풍이 북상하면 사회적 재난이 될 수 있다.

15. 강풍과 폭우, 해일 같은 복합적 피해 우려가 크다.

16. 집중호우와 병행된 태풍은 하천 범람이나 도시 침수로 이어질 수 있다.

17. 정부와 지자체는 선제적 방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18. 시민들의 재난 대비 훈련과 안전 의식 강화가 꼭 필요하다.

19. 미디어와 공적 기관은 정확한 정보와 경보 전달에 힘써야 한다.


20. 결국 올해 가을태풍에 대한 사회적 경계와 준비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혼돈스러운 세상 소식 중에서도 역시 가장 중요한 뉴스는 지금 당장 내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들, 내가 당장 관심을 가져야 하는 주제들이긴 하다. 그렇게 스스로 프레임을 짜놓고 보니 뉴스 사이트에서 밀려오는 혼돈과 불안이 조금 덜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고민스럽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뉴스를 피하다 보면 언젠가는 아예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관심을 꺼버리고 싶게 되지 않을까 싶은...


언론이 뉴스를 전달하는 방식을 좀 바꿔야 하는 건 아닌가 싶다. 자극적인 화면과 인터뷰가 마치 생생한 뉴스를 전달하는 것 같지만, 나 같은 시청자들에겐 이제 이런 자극적인 뉴스는 필요이상의 감정(感情)으로 가득한 선정(煽情)적인 정보일 뿐이니...


선정적인 뉴스화면(지금 트럼프의 기자회견 장면이 흘러가는 데 기자들의 질문 자막과 트럼프의 대답 자막이 참 웃프다)의 볼륨을 지우고 빌라 로보스의 '브라질 풍의 바흐 5번'을 틀어놓으니 한 편의 블랙 코미디 영화 같아졌다.




'브라질 풍의 바흐'가 작곡될 무렵, 브라질의 시대적 분위기


브라질 풍의 바흐 5번은 에이토르 빌라-로보스가 1938년에 작곡한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20세기 브라질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다. 이 곡이 쓰인 1930년대 브라질은 제툴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 정권 시기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포퓰리즘적이고 강력한 권위주의적인 통치가 이어지던 시기였다.


1930년 혁명을 통해 집권한 바르가스는 유럽 중심의 세계질서를 벗어나기 위해 구시대의 문화정책을 버리고 브라질 고유의 문화를 강조하는 정책을 펼쳤다. 1930년대 브라질에서는 통합주의행동당을 비롯한 파시즘 조직들과 공산주의자들이 대립하는 가운데, 바르가스는 1937년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권위주의 정부를 수립했다. 그리고, 1938년 바르가스는 브라질 파시스트들의 정부 전복 시도에도 맞서야 했다. 이러한 정치적 격변기에 바르가스 정부는 민족주의적 문화정책을 강화했고, 브라질 고유의 예술과 음악을 적극 후원했다.

세계적으로도 1938년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불안한 시기였으며, 각국에서 민족주의가 강화되던 때였다. 유럽에서는 파시즘이 확산되고 있었고, 브라질도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929년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커피 수출 중심의 브라질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고, 이는 전통적인 유럽 중심 문화에서 벗어나 브라질 고유문화를 추구하는 배경이 되었다.


빌라-로보스의 생애와 작곡 당시 상황


에이토르 빌라-로보스는 1887년 3월 5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국립도서관 수석 사서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였다. 12세에 아버지를 잃은 후 빌라-로보스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8세에 가출하여 방랑 음악가가 되었다. 그는 1900년대 초 브라질 각지를 여행하며 민속 음악을 수집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발표하며 국내에서 조금씩 그의 이름을 알려나갔다.


빌라 로보스의 이름이 유럽에 알려진 건 1917년 브라질을 방문했던 프랑스 작곡가 다리우스 미요 덕분이었다. 그는 빌라 로보스의 작품들이 담고 있었던 대담하고 개성 있는 민족주의적인 요소들에 높게 평가하고 그의 음악을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등의 여러 음악가들에게 소개하고 후원자들도 주선해 주었다. 미요의 이런 노력 덕분에 1917년 이후 빌라-로보스는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로부터 '브라질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유럽 음악계에서의 이런 명성을 바탕으로 빌라-로보스는 1922년 상파울루에서 개최된 ‘현대예술주간(Semana de Arte Moderna)’에서 선구적인 브라질 민족주의 작곡가로 추대되며, 1923년 정부 장학금을 받아 파리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사실 이때의 유럽행은 유학이라기보다 빌라-로보스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배우려 가는 것이 아니라, 브라질 음악과 자신의 성취를 보여주기 위해 간다”라고 밝혔듯이 유럽 음악계에 브라질 음악을 알리는 목적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1930년까지 빌라-로보스는 파리에 머물며 유럽의 여러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본인이 주장한 대로 브라질의 음악을 유럽에 알리는 역할에 충실했다.


1930년 브라질로 돌아온 그는 바르가스 정부의 강력한 지원으로 먼저 상파울루 주 학교 시스템의 음악 교육 감독으로 임명되어, 상파울루의 공교육 체계에서 대규모 음악 교육 개혁을 추진하고 이후 리우데자네이루(당시 브라질 연방수도)로 자리를 옮겨, “국립 음악원” 설립 및 합창 교사 양성, 대규모 합창 대회 주관 등 중앙정부 차원의 음악·예술교육 행정을 총괄하게 된다. 1932년에는 '브라질 음악·예술교육 감독국(Superintendência de Educação Musical e Artística, 줄여서 SEMA)'의 감독(국장)으로 임명되어, 브라질 전체의 공교육 음악·예술 교육 정책을 설계·집행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오늘 소개하는 브라질 풍의 바흐 5번이 작곡된 1938년 당시 빌라-로보스는 바르가스 정부의 핵심 문화정책 담당자로서 전국적인 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던 때였다. 그는 바흐 음악의 이해가 음악 교육에 중요한 기초라고 여겨 바흐 음악 보급에도 힘썼는데, 1935년 바흐 탄생 250주년에는 그가 직접 '미사 b단조'를 지휘하기도 했다. 이러한 바흐에 대한 빌라-로보스의 깊은 흠모와 예술적 동경, 그리고 브라질 민속음악에 대한 애정과 결합되어 탄생한 것이 브라질 풍의 바흐 연작시리즈인 셈이다.


'브라질 풍의 바흐 5번'의 구성과 특징


브라질 풍의 바흐 5번은 소프라노와 8대의 첼로를 위한 작품으로, 두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악장 '아리아(칸틸레나)'는 1938년에 작곡되어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초연되었고, 2악장 '단사('(Dança, 무곡 또는 춤을 뜻함)'는 1945년에 작곡되어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첫 번째 악장의 가사는 브라질의 소프라노이자 시인인 루트 코레아가 썼으며, 두 번째 악장의 가사는 시인 마누엘 반데이라가 작성했다

1악장 아리아는 바흐의 유명한 'G선상의 아리아' 선율을 창의적으로 변형하여 사용했다. 소프라노는 먼저 'a' 모음으로 노래하고, 이후 입을 다문 채 허밍(humming)으로 선율을 반복한다. 중간 부분에서는 루트 코레아의 시를 바탕으로 한 레치타티보가 하강하는 반음계적 진행 위에서 절망적으로 전개된다. 이 악장은 브라질의 정서인 '사우다지(saudade, 짙은 그리움과 향수를 뜻함)'를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무곡 형식의 2악장 단사는 브라질 내륙 지방의 특이한 '엠볼라다(Embolada, 빠른 템포의 반복적이지만 일정한 템포 위해 마치 랩같은 즉흥적 가사를 얹은 민속음악)'를 차용해 지속적이고 특징적인 리듬을 나타낸다. 이 악장에서 작곡가는 의성어를 활용하여 음악에 생동감과 넘치는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빌라-로보스는 이 악장이 브라질의 새들을 암시한다고 설명했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바흐의 대위법과 화성의 복잡성을 브라질 민속음악의 서정성과 결합한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며 슬픈 듯하지만 슬프지 않고, 즐겁지만 마냥 즐겁다고 할 수 없는 오묘하고 이색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초연 이후 브라질을 넘어 남미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다


브라질 풍의 바흐 5번의 1악장은 1938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초연되었고, 2악장은 1945년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초연을 담당한 소프라노 루트 코레아는 이 곡의 가사를 직접 썼는데, 빌라-로보스는 그녀가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1938년 미국 뉴욕의 리더크란츠 홀에서 열린 세계 최초 녹음에서는 브라질의 유명한 소프라노 비두 사이앙이 노래했다.

초연 이후 이 곡은 관객과 비평가들의 모두에게서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특히 이 곡은 유럽의 클래식 음악 전통과 브라질의 토착 음악이 완벽하게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음악으로 인정받았으며, 특히 1악장 아리아의 아름다운 선율과 독특한 편성은 청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구성적으로 소프라노와 첼로 앙상블이라는 독특한 편성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음향적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실내악 레퍼토리의 확장함으로써 20세기 음악사의 의미있는 이정표가 되었다.

국제적으로도 이 작품은 큰 주목을 받으며, 빌라-로보스의 대표작이 되었는데, 특히 1945년 파리에서의 초연은 유럽 음악계가 브라질 음악의 독창성과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중요한 무대였다. 이로 인해 이전까지 주변적 존재로 여겨지던 라틴 아메리카 음악이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고, 이후 아르헨티나의 피아졸라, 멕시코의 차베스 등 다른 라틴아메리카 작곡가들의 국제적 진출에도 영향을 미쳤다.



■ '브라질 풍의 바흐'는 빌라 로보스의 바흐에 대한 일종의 헌사같은 9곡짜리 연작이다. 1930년에서 1945년에 걸쳐 작곡되었는데,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은 제5번 소프라노와 첼로 합주를 위한 곡이다. 모두 두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통은 1악장 '아리아: 칸틸레나'만 연주하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1악장에서 소프라노의 선율은 바흐의 유명한 'G선상의 아리아' 선율이 아련하게 드러난다. 앞서 원곡 악보에 맞춰 감상했다면,

기타연주와 함께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로 '아리아: 칸틸레나'를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P4wh5ScYcIw


■ 브라질풍의 바흐 9곡 중 4번·7번·8번은 심포니 오케스트라, 1번은 첼로 앙상블, 2번은 실내 오케스트라, 3번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5번은 소프라노와 첼로앙상블, 6번은 플루트와 바순, 9번은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오케스트라는 규모순으로 현악<실내<심포니)되었고, 각 악장마다 두 종류의 제목이 붙어있는데 토카타, 푸가, 프렐류드 같은 바로크 시대의 음악 형식의 제목, 그리고 <시골마을의 작은 기차>, <우리 땅의 노래>같은 브라질인들의 삶을 담은 부제다.

제5번만큼은 아니지만, 브라질 음악적 감흥과 유럽의 음악적 자산이 잘 묘사된 제4번은 브라질 출신 헤수스 로페즈-코보스가 지휘하는 신시내티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감상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og2L-0qF_HE


■ 브라질풍의 바흐 시리즈 중 1번 첼로 앙상블은 가끔씩 국내를 찾는 첼로의 거장 미샤 마야스키와 모스틀리 첼로 앙상블 (Mostly Cello Ensemble)의 연주로 감상해보자. 비오는 날에는 특히 잘 어울리는 듯 한다.

- https://www.youtube.com/watch?v=qJMZlLd0bDY



♥ 가을비


- 조병화


무슨 전조처럼 온종일

가을비가 구슬프게 주룩주룩 내린다


나뭇잎이 곱게 물들다 시름없이

떨어져서 축축히 무심코

여기 저기 사람들에게 밟힌다


순식간에 형편 없이 찢어져서

꼴사납게 거리에 흩어진다


될대로 되어라, 하는 듯이


그렇게도 나뭇가지 끝에서

가을을 색깔지어 가던 잎새들도

땅에 떨어지면, 그뿐

흔들이 버리고 간 휴지조각 같다


아, 인간도 그러하려니와

언젠가는 나의 혼도 그렇게 가을비 속에

나를 버리고 어디론지 훌쩍 떠나 버리겠지,

하는 생각에 나를 보니


나도 어느새, 가을비를 시름없이

촉촉히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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