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허락된 시간들...

- 2025년 9월 22일 월요일 -

by 최용수

♡ 조르쥬 비제(Georges Bizet, 1838~1875)

<『아를의 여인』 모음곡 2번 / 『L' Arlesienne』 Suite No.2 >


https://youtu.be/lpbaoHnlAlE?si=9Df1_iD-9hnRYlKk (제 3곡 미뉴에트)


브런치 글을 하루 쉬었다.(금요일 쓰다가 만 글을 다시 마무리하고 있다.)

만성신부전으로 고생하시던 장인어른의 갑작스런 낙상사고와 이어진 여러 수술들...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오가시는 동안 장모님과 아내, 그리고 처남 내외까지 모든 가족들이 지난주 내내 마음을 졸이며 보냈다. 맞사위인 내가 아내와 처남보다 더 나이가 많다 보니 장인어른께서는 나를 늘 맏아들처럼 대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또 맏아들처럼 각종 병원 수속이나 진료에 대해 의견을 내고 가족들을 진정시키느라 애써 냉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올해 1월 항암투병 중 갑작스레 영면(永眠)하신 아버지가 떠올라 지난 몇 주는 몸도 마음도 계속 편하지 않았다.

브런치에 내 기분과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마뜩찮아졌고, 이제 공개적인 이 일기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또 몇 년간 지켜온 일상(日常)의 루틴이 깨어졌다. 3년을 넘겨 써오던 클래식 음악일기가 멈춘 건 딱 3번이다. 3년 전 거의 방송사고 급의 정리되지 않은 편집본과 원고를 고치고 다듬느라 연이은 밤샘작업 때문에 그랬고, 지난가을 위암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항암투병 중이시던 아버지께서 올해 1월 갑자기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장례를 마칠 때까지 대략 열흘의 시간 동안 그랬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식도 봉합수술, 혈관 스탠트 시술에 고관절 골절 접합 수술까지, 이제 아흔이 다돼 가시는 장인어른의 몸으로는 정말 감당하기 힘들었을 수술을 마치고 장인어른은 재활 요양병원에 다시 입원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의 나도 그랬지만, 사람들은 대개 '변함없는', '한결같은' '항상성(恒常性)'의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큰 일없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무료하다거나, 지루하다거나 여기면서 더 다이내믹하지(力動的이지) 못한 삶을 불평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항상성(恒常性)'이란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을 내 삶의 진동수에 동조(同調)시켜 변화를 내재화(內在化)시키고, 안정화(安定化)하는 고마운 신의 선물일지 모른다. '항상성(恒常性)'은 큰 사고 없는 안정적인 일상에 대한 고마움의 뜻도 담고 있지만, 사실 더 깊은 의미는 내 삶에 가해지는 여러 충격적 사건들을 버티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갖춰지는 흔들림 없는 마음과 자세이기 때문이다.


원래 이 곡은 지난 금요일 장인어른이 계신 병원으로 가기 전 선곡해 놓은 곡이었다. 희망과 평화가 가득한 금요일 아침에 대한 기대를 담아. 지난 주말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흔들림 없는 나로 오늘을 살기 위해서도 역시 좋은 곡인 것 같다.




조르주 비제의 『아를의 여인』 제2 모음곡 중 '미뉴에트'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음악계의 특별한 환경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탄생할 당시 프랑스는 1870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정치적, 사회적 격변기를 맞고 있었다. 프랑스는 이 전쟁으로 나폴레옹 3세의 제2 제국이 무너지고 새로운 공화국 체제가 수립되었다. 비록 프로이센에게 입은 치욕적인 패배로 유럽 열강 정치에서 주도권을 뺏기긴 했지만 이 시기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유럽은 평화와 안정을 구가한 소위 '벨 에포크(Belle Époque)'라고 불린 예술과 문화의 번성기를 맞았다. 파리 예술계는 전 세계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중심지가 되었으며, 조르주 비제의《카르멘》은 이 시기 이탈리아와 독일 중심의 오페라계에 프랑스 오페라의 진면목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지난 6월 27일 브런치 '시대(時代)는 그대를 버렸을지라도..."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비제가『아를의 여인』을 쓸 당시는 그가 파리의 오페라 무대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 무렵에 쓰인 작품이다.


19세기 프랑스 음악계의 특수한 위치


19세기 중반 프랑스 음악계는 매우 복잡하고 특수한 위치에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새롭게 탄생한 신흥 중산층과 시민계층이 새로운 청중으로 등장하면서, 그들의 취향에 맞는 오페라와 음악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음악적 소양은 과거의 귀족들처럼 그렇게 세련되지 못했기 때문에 오페라 극장들은 그들 중산층들이 좋아할 만한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고안해 내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소위 그랑 오페라(Grand opéra)라고 불리는 장르였다. 독일 출신의 작곡가 지아코모 마이어베어와 대본가 위젠 스크리브가 이 그랑 오페라의 판도를 이끌었다. 당시 프랑스 오페라계는 기존의 성공적인 작품 공식에 더해 새로운 관객층이 선호할만한 내용과 형식들이 접목되기 시작했는데, 오페라 코미크는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것 외에도 서정적이고 진지한 내용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그랑 오페라는 중창, 합창, 관현악의 비중이 증대되었다. 이렇게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대중의 기호를 반영하여 19세기 후반 프랑스 오페라계는 구노의《파우스트》, 비제의《카르멘》, 생상스의 《삼손과 델릴라》, 마스네의《마농》등이 프랑스 낭만주의 음악을 꽃피우게 된다.

프랑스 특유의 세련된 서정성이 강조된 오페라 리리크(opéra lyrique)가 새롭게 전성기를 맞았으며, 그와 정반대로 철저한 오락성으로 무장한 오페레타도 함께 발달했다. 이 시기는 색채감과 관능미를 특징으로 하는 프랑스 오페라의 황금기였으며, 특히 팜파탈(femme fatale)이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비제의 삶과 『아를의 여인』 탄생 배경


조르주 비제(1838-1875)는 파리에서 태어나 9세에 파리 음악원에 최연소로 입학했으며, 19세에 권위 있는 로마대상을 수상한 천재적 작곡가였다. 하지만, 그의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공연 기회조차 잡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비제는 탁월한 피아노 연주 실력으로 돈을 벌려 하지 않고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경력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렵게 오페라 작곡가의 경력을 쌓아가던 비제는 1872년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보드빌극장의 지배인이었던 레옹 카르발로의 권고로, 프랑스의 문호 알퐁스 도데(1840-1897)의 희곡 『아를의 여인』을 위한 부수음악을 작곡하게 된다. 도데의 희곡은 남프랑스의 프로방스 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 아를(Arles)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아를의 여인"이라 불리는 매력적이지만 바람기 많은 여자를 사랑하게 된 시골 청년 프레데리의 사랑과 번뇌를 다룬 3막 5장 구성의 비극이었다.

『아를의 여인』은 1872년 10월 파리의 보드빌극장에서 비제의 부수음악과 함께 초연되었으나, 희곡과 음악 모두 예상과 달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연극은 21회의 공연으로 마감되었고, 연극의 실패 때문에 처음엔 비제의 음악 또한 그다지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신뢰하고 있던 비제는 부수음악 27곡 중 일부를 선별하여, 합창과 소규모 극장 오케스트라용 원곡을 대규모 정규 편성 관현악용으로 재편하여 연주회용 모음곡(제1모음곡)으로 개편했다. 그리고 이 모음곡집이 조금씩 프랑스 음악계에 알려지면서 인기를 얻어가자 비제는 작지만 처음으로 음악적 성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성공은 그가 불멸의 오페라『카르멘』을 맡아 작곡할 수 있게 된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제2모음곡과 미뉴에트의 탄생


6월 27일 자 브런치 "시대(時代)는 그대를 버렸을지라도..."에서 자세히 소개했었듯이 비제는 안타깝게도 1875년 6월 3일『카르멘』초연 이후 혹독한 비판을 받으며 그 충격으로 3개월 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36세의 젊은 나이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페라『카르멘』은 바로 그 시점부터 대중들과 평단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전 세계에 프랑스 오페라를 알리는 흥행작이 되었다. 그의 갑작스럽고 비극적인 죽음에 대해 파리의 음악계는 충격과 애도로 휩싸였다. 젊은 나이에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주고 미처 그 성과를 얻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천재 예술가에 대해 비평가들과 팬들은 그의 남겨진 음악에 대해 더욱 갈망하게 만들었다.

『아를의 여인』 제1모음곡이 이미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출판업자 쇼당(Choudens)은 비제 사후 4년이 지난 1879년에 제2모음곡의 제작에 나서게 된다. 이 작업은 비제의 친구이자 파리 음악원 교수였던 어니스트 기로(Ernest Guiraud, 1837-1892)가 맡았다. 기로는 이미 《카르멘》 모음곡 1번, 2번을 편곡하여 발표했던 미국 출신의 프랑스 작곡가로, 비제의 작품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제2모음곡은 목가(Pastorale), 간주곡(Intermezzo), 미뉴에트(Menuet), 파랑돌(Farandole)의 4악장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에서 미뉴에트는 원래 『아를의 여인』 부수음악에 포함된 곡이 아니었다. 이 미뉴에트는 비제가 1866년에 작곡한 오페라 『퍼스의 아름다운 아가씨(La jolie fille de Perth)』를 위해 원래 작곡했던 '보헤미아 풍경(Scènes bohémiennes)'이라는 모음곡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아를의 여인』 제2모음곡의 미뉴에트는 우아하고 감미로운 프랑스 오페라의 분위기를 잘 담고 있는 작품으로 전통적인 미뉴에트 형식을 따르면서도 비제 특유의 남유럽적이고 화려한 색채의 음악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비제는 남유럽, 특히 남프랑스 또는 프로방스 특유의 극적이고 화려한 색채의 음악에서 강점을 드러냈는데 이는 등장인물 표현, 감정 표현, 극적 효과를 나타내는 데 효과적이었다.

이 미뉴에트는 원래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에서 나온 것이지만, 비제는 프랑스적 분위기를 고수했기 때문에 프랑스 특유의 신비롭고 변화무쌍한 선율과 남부의 따뜻함을 담고 있다. 작품은 우아한 춤곡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비제 특유의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선율이 특징적이다

미뉴에트는 18세기 궁정 무용에서 유래된 3박자의 우아한 춤곡이지만, 비제의 손을 거쳐 19세기 낭만주의적 색채를 입게 되었다. 특히 이 작품은 프랑스 음악 특유의 세련미와 우아함을 보여주면서도, 비제가 추구했던 극적 효과와 감정 표현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초연과 당시의 반응


『아를의 여인』 제2모음곡은 1880년 3월 21일 줄 파들루(Jules Pasdeloup)의 지휘로 파리의 대중음악회(Concerts populaires)에서 초연되었다. 제1모음곡이 이미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기 때문에, 제2모음곡 역시 청중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특히 미뉴에트는 그 우아하고 감미로운 선율로 인해 즉시 인기곡이 되었다.

당시 프랑스 음악계는 바그너의 영향과 독일 음악의 압도적 영향력에 대응하면서도, 프랑스 고유의 음악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었다. 비제의 음악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으로 평가받았으며, 프리드리히 니체는 비제를 '지중해의 바그너'라고 칭하며 그의 음악을 '디오니소스적'인 원초적이고 감성적인 예술 음악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제2모음곡의 성공은 비제 음악의 재평가로 이어졌으며, 특히 『아를의 여인』 음악의 인기는 나중에 원작 희곡의 재평가로도 이어졌다. 1885년 5월 5일 파리의 오데온 극장에서 희곡이 재공연 되었을 때, 처음에는 여전히 냉담한 반응을 받았지만 결국 400회 이상의 공연이라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 모음곡 2번의 3번 미뉴에트와 함께 가장 많이 연주되는 4곡 파랑돌은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먼저 감상해 보고,

https://youtu.be/l7Imi69GJTc?si=bXkllMvN6lIM-aJj


■ 모음곡 2번 전곡은 카라야인 지휘하는 베를린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M2N11BgG2Fg (I. Pastorale)


- https://www.youtube.com/watch?v=pebzp7SQ7yY (II. Intermezzo)


- https://www.youtube.com/watch?v=icLIUMafkY0 (III. Menuet)


- https://www.youtube.com/watch?v=7yKMKwy2p_c (IV. Farandole)



♥ 헌 책방에 아버지들이 살고 있다


- 최 선


사북 탄광촌 갱도를 통과한 모노레일처럼

숨 가쁘게 오르던 계단 대신 거꾸로 내려가는 지하방

얼마간 성공을 맛본

스타 교수님과 시인 철학자 요리사

세상 떠난 전직 대통령들까지 종착역에 모였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어울려도 어색하지 않은 곳


심장처럼 멈추지 않던 새벽 알람

오를 곳도 더 내려갈 곳 없어

이제는 울지 않는다

잘 나가던 시절

정가(正價)는 이제 주장할 수 없다

새 상표처럼 붙어 있는 시세 폭락한 몸값

긴 휴식 틈으로 누군가 헤집고 끼어든다


어리둥절 떠밀린 새파란 명퇴자가 마지막 들르는

눕지 못하고 서 있는 곳

그것도 호사라는 듯

자리를 좁혀 앉는 진열대원들

자존심처럼 받든 모서리가 갈라졌다


다음 정착지를 묻지 않는 이곳

들락날락하는 그 바람 사이

적막이 만조를 이루고

갈피가 품고 있던 잘 마른 은행잎 한 장

유서처럼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15화사라진 여름 태풍과 가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