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9월 26일 금요일 -
♡ 오토리노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 1879~1936)
< 『6개의 소품 』P.44 중 1번 '부드러운 왈츠' / 6 Pezzi, P. 44 : No.1 Valse Caressante>
■ https://youtu.be/qpvFjykJEpo?si=rCKFhzP9KuWpjVO1
요즘은 아침에 자꾸 일이 생기는 바람에 브런치 발간이 오후로 미뤄지고 있다. 애초에 '클래식 음악 일기'는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자 한 것이었는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내 일상의 루틴보다 가족들의 안위(安危)가 더 소중하다 보니...(본가와 처가 모두 병중인 어른들이 계신지라 ㅠㅠ)
한국의 50대 중년 남성들이 하루 중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마련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위로는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기간은 늘었고, 아래로는 어려워진 취업 여건 때문에 자식들이 자립할 때까지 양육해야 할 부담도 늘었다. 정년 연장에 대한 기대를 잠시 품어보지만, 그건 또 청년 취업률을 더 악화시키는 일이라 그것도 참 마뜩찮다가도, 국민연금 수급시기까지 5년의 월급 절벽은 겪어본 선배들이 '그건 정말 배부른 자존심일 뿐'이라는 일갈(一喝)에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해진다.
정년(停年)이 없는 전문직(專門職)이거나 성공한 자영업자(自營業者)가 아니라면, 노후를 위해 자산을 충분히 저축해놓지 못했거나 가족들 중 누군가 투병 중이기라도 한 상황이라면, 정년(停年)은 지옥문을 여는 문고리일 수밖에 없다. 개인택시 면허 가격이 치솟고, 중년 남성들의 자격증 시험 응시가 늘었다는 소식이 이제 뉴스조차 되지 않는 건 이미 지옥문 앞에 선 대한민국 중년들의 수가 상당하다는 방증(傍證)일 것이다.
이른 새벽 어머니를 청량리역에서 태백까지 가는 기차에 태워드리고 돌아오는 출근길, 한강 근처에서 200미터 전방 시야도 확보되지 않는 지독한 안갯속을 헤드라이트를 켜고 조심조심 운전하고 있는 차창너머 수많은 대한민국 중년들의 얼굴들이 룸미러 속 내 얼굴과 겹쳐졌다.
헤드라이트 앞을 뿌옇게 가린 안개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인 듯... 결국 안개는 걷힐 테고 미래는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현재에서 비롯될 것이다. "지금 내겐, 지금 이 순간이 미래다", "지금 내겐, 지금 이 순간이 미래다" 이 말을 수없이 되뇌이는 출근길이었다.
차 안은 어제 스마트폰에서 찾아놓은 레스피기의 '부드러운 왈츠'가 반복재생되고 있었다.
1879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난 레스피기는 피아노 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며 성장했다. 13살이 되던 1891년, 볼로냐 음악원에 입학해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배우게 되는데, 페데리코 사르티에게 바이올린을, 루이지 보르기에게 비올라를 배웠고, 작곡은 주로 주세페 마르투치를 사사했다. 마르투치는 이탈리아에서 기악곡의 가치를 높이려 했던 인물이었으며, 레스피기에게 오페라 중심의 이탈리아 음악 전통을 넘어서는 순수 기악 음악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레스피기는 1899년에 바이올린 학위를, 1900년에 작곡 학위를 받으며 학업을 마쳤다.
그의 성장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1900년부터 1903년까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그는 이곳의 황실 오페라 극장에서 수석 비올리스트로 활동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이 시기, 그는 당시 러시아 최고의 관현악 작법의 대가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를 직접 찾아가 작곡과 관현악법을 사사하는 행운을 얻게 된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레스피기에게 색채적이고 섬세한 악기 사용법과 견고한 형식미를 가르쳤다. 이 경험은 레스피기의 음악 세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으며, 이후 그가 '관현악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기반을 마련했다.
러시아 유학 후 레스피기는 독일의 베를린과 프랑스의 파리 등 유럽의 주요 음악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그만의 음악세계를 넓혀나갔다. 그 무렵(1900년대 초반) 유럽 음악계는 거대한 두 흐름이 충돌하고 있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구스타프 말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같은 작곡가들이 후기 낭만주의의 어법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며 거대한 규모의 교향곡과 교향시를 쏟아내고 있었던 반면, 프랑스에서는 클로드 드뷔시와 모리스 라벨이 인상주의를 통해 조성(調性)과 형식의 해체를 시도했다. 이들은 음색과 분위기를 중시하는 새로운 음악적 언어를 창조하고 있었다. 레스피기는 러시아 유학을 통해 후기 낭만주의의 대규모 관현악 기법을 배우면서도, 이런 유럽 음악계의 거대한 흐름을 예의주시하며 이들의 혁신을 자신만의 것으로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베를린에서는 막스 브루흐를, 프랑스 파리에서는 드뷔시와 라벨의 인상주의 음악에 대해 깊이 연구하게 된다. 그 결과 레스피기는 러시아의 풍부한 관현악 작법, 독일의 웅장한 구조, 프랑스의 섬세한 색채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국제적이고 복합적인 음악 언어를 가진 기악곡의 거장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할 수 있었다.
《여섯 개의 소품》(P. 44)과 같은 레스피기의 초기작들은 주로 피아노나 실내악을 통해 섬세한 감정과 새로운 화성적 실험을 시도하는 단계였지만 이 시기 그가 다듬은 풍부한 서정성은 그의 음악적 뿌리가 되었다. 이 작품 이후 레스피기는 보다 적극적으로 그의 풍부한 서정성을 러시아에서 배운 관현악 기법과 결합하여 이탈리아의 역사와 풍경을 담은 교향시 장르로 과감하게 도전했다. 그렇게 1916년에 발표된《로마의 분수》는 그의 이름을 세계적인 작곡가의 반열에 올려놓는 결정적인 작품이 된다. 이 작품은 물의 흐름과 빛의 변화를 음악적으로 완벽하게 묘사하여 '시각적인 음악'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그리고 뒤이어 레스피기의 '시각적인 음악'의 정점이라 일컬어지는《로마 3부작》즉, 《로마의 분수》, 《로마의 소나무》(1924), 그리고 《로마의 축제》(1928)를 발표하게 된다. 그중《로마의 소나무》는 로마의 역사적 장소와 그곳에 서 있는 소나무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웅장하고 다채로운 오케스트레이션의 극치를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레스피기는 다양한 악기와 음향 효과를 사용하여 마치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듣는 듯한 회화적이고 입체적인 청각 경험을 청중들에게 선사하며 이탈리아 기악곡들이 오페라에 결코 뒤지지 않는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레스피기의 《여섯 개의 소품(6 Pezzi), P. 44)》은 1905년~1907년 사이에 작곡된 피아노 소품 모음집이다. 이 곡은 레스피기가 러시아에서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관현악법을 사사한 직후의 섬세한 과도기적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모두 여섯 개의 곡으로 구성된 이 모음집은 각각이 독립된 시적인 정서를 담고 있으며 순수한 피아노의 음색만으로도 풍부한 서정성을 담고 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서 배운 다채로운 화성 사용법과 음색에 대한 민감성이 피아노라는 악기라는 한계 때문에 다 표출되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후 이 소품집은 그의 교향시에서 나타날 시각적이고 회화적인 음악 스타일의 전조(前兆)는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특히 소품집 중 첫 번째 곡인 'Valse Caressante(부드러운 왈츠)'는 이러한 작품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왈츠 리듬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춤곡의 경쾌함보다는 오히려 몽환적이고 우아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곡의 제목처럼 '부드럽게 감싸 안는 듯한 선율'은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듯한데, 피아노의 고음역대와 미묘한 화성 진행이 만들어내는 투명하고 섬세한 음색은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레스피기가 드뷔시나 라벨과 같은 프랑스 작곡가들의 음악에 얼마나 깊이 공감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레스피기는 후대 클래식 음악계에 두 가지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첫째, 이탈리아 기악 음악의 부흥을 이끌어 냄으로써 이후 이탈리아 작곡가들은 오페라 외의 장르, 특히 관현악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가지게 되었다. 둘째, 그의 혁신적인 오케스트레이션 기법은 이탈리아 작곡가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후배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특히 영화 음악과 현대 관현악 편곡 분야에서 그의 색채적이고 드라마틱한 악기 활용 방식은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었다. 그렇게 레스피기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음악적 요소를 융합하여 20세기 음악계에 낭만주의의 마지막 불꽃이자 새로운 교향악적 색채를 제시한 이탈리아의 음악 거장으로 이름을 남겼다.
■ 레스피기의 《여섯 개의 소품(6 Pezzi), P. 44)》중 피아노 못지않은(때론 더) 서정성과 섬세한 색깔을 느낄 수 있는 막달레나 호프만의 하프연주로 No. 3. Notturno을 감상해 보자
- https://youtu.be/Thv4u4eSgwo?si=tI0gMTDd7t7iCNXD
■ 《여섯 개의 소품(6 Pezzi), P. 44)》전곡은 콘스탄틴 세르바코프의 연주로 감상해 보자.
- https://youtu.be/HkV9An1Uv5g?si=Puo1HVuyrzE6EEdF
♥ 오리무중(五里霧中)
- 자작시
자전거 바퀴가
희미하게 바닥에서부터 차오르고 있는
안갯속을 뚫는다
五里霧中!
평소에는 잊고 있었다
내가 듣고 보고 만지고 냄새 맡던 그 시공간이
오리(五里)만큼도 안 되는 세상인 줄
눈이 가려져야
눈앞의 세계를 구성하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구나
시끄러운 소음으로부터 벗어나야
비로소
들리지 않는 세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구나
인간의 감각세계는
고작
1,400그램짜리 뇌가 만든 경계였구나
그런데, 매번 궁금하다
감각세계 너머
우주의 시초와
우주의 끝을
사유하는
이 1,400그램짜리 뇌의 정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