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9월 30일 화요일 -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 1873~1943)
<보칼리제, Op.34 중 14번/ Vocalise, Op. 34, No. 14 >
■ https://youtu.be/7WCwp1Dyz9c?si=E5fgcJ2M1d_49WW_ (성악 + 오케스트라)
■ https://youtu.be/KK6v4_Xxbk0?si=WXhG2lPoyHiPx48h(첼로 + 오케스트라)
3년 만에 부산을 찾았다. 9년 전 잠시 학적에 이름을 올렸던 동의대학교 대학원의 지도교수님께서 졸업을 앞둔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과 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요청해 주셨기 때문이다. 한달음에 부산으로 내려왔다.
올해 1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어머니는 아버지의 빈자리 때문이었는지 그동안 참아오셨던 지병을 숨기지 못하셨다. 태백과 서울의 병원을 오가며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으셨을 무렵, 몇 달 전부터는 갑작스레 장인어른의 만성신부전이 악화되어 몇 차례 응급실을 다니셔야 했다. 설상가상 약해진 근력 때문에 낙상으로 골절상까지 당하시면서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이런저런 수술도 받으셔야 했고... 지난 몇 개월 동안 양가의 두 어른들을 모시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면서 비로소 대한민국 중년들에게 주어진 숙제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몸보다는 마음이 많이 아프고 힘들었다. '생로병사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는 미처 다 헤어리지 못했던 환자와 가족들의 마음이 새삼스레 떠올라 죄송스러웠다.
그렇게 몸과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사라져 일상의 시간들이 팍팍해지고 있을 때, 지도교수님의 갑작스러운 부산으로의 초대는 가뭄의 단비같은 축복이었다. 부산으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짧은 일정 안에 소화해야 할 스케줄들을 짜느라 머릿속이 온통 즐겁고 행복한 상상으로 뜨거워질 무렵 마치 일상(日常)의 일처럼 하필 부산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 어머니의 부고가 카카오톡으로 전해졌다...
친구들과의 모처럼의 만남은 상갓집에서 이뤄졌다. 나이 탓인지 이제 서로의 기억들도 엇갈렸지만 이내 옛 추억을 되살리며 서로에게 주어진 숙제 같은 일들을 함께 곱씹었다. 그렇게 밤늦은 시간까지 상갓집을 다녀와 숙소로 돌아와 급하게 강의자료를 정리하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몸의 여독도 채 풀지 못하고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5시 반... 재빨리 숙소를 나와 새롭게 단장한 부산북항 공원을 다녀왔다. 10여 년 전 부산에서 TV제작부장을 하던 시절에 착공되었던 북항 재개발 사업이 아직도 다 마무리가 되지는 않았지만, 해안도로 옆 바닷가에 이런저런 시설들이 멋진 모습으로 들어서 있었다. 짭조름한 바다냄새와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금기를 머금은 조금은 습한 새벽 바닷바람조차 상쾌했다. 이런저런 시름들로 빡빡했던 머릿속을 그 바람들이 들어와 이곳저곳 막힌 공간을 틔어주는 듯했다.
북항 친수공간을 느긋하게 걸으며 정말 모처럼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들었다.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부산에서의 기억들이 잔잔한 파도처럼 머릿속을 흘러 다니기 시작했다.
보칼리제(Vocalise)는 ‘말(가사)이 없는 노래’를 뜻하는 음악이다. 성악가가 특정한 하나의 모음, 즉 '아'나 '오' 또는 '우'와 같은 모음만을 사용해 순수하게 멜로디의 아름다움과 보컬의 기교만 느낄 수 있는 곡이다. 그래서 '보칼리제'는 성악가들이 발성 연습이나 가창 기교를 다듬기 위한 연습곡으로 쓰였다. 순수한 선율미를 추구하는 지극히 서정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보칼리제> (Op. 34 중 14번째 곡)의 형식을 빌어 지극히 러시아적인 낭만적인 서정을 담았다. 이 곡의 선율은 마치 물결이 넘실대듯 부드럽게 오르내리며, 성악가의 목소리 본연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고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쓸 때 특정 음역대에 얽매이지 않고, 가수에 따라 자연스럽게 보컬 범위를 택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작곡했는데, 그 덕분에 이 노래는 소프라노가 아닌 다른 음역대의 성악가들도 이 곡을 소화할 수 있다.
원곡은 독창과 피아노 반주로 구성된 성악곡이었지만, 이 멜로디가 가진 강력한 호소력 덕분에 후대에 수많은 기악 편곡도 만들어졌다. 특히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한 음역대를 가지고 있는 첼로와 바이올린 버전이 매력적이다. 현재 가장 널리 연주되는 첼로 또는 바이올린의 반주 부분은 라흐마니노프가 아닌 후대의 연주자나 편곡자들이 만든 것이다. 라흐마니노프가 소프라노뿐만 아니라 다른 성부의 성악가들도 부를 수 있도록 작곡한 덕분에 편곡이 상대적으로 수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곡이 현재까지도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가사가 없는 노래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아름다운 시어를 가사로 하더라도 이 곡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그 시어에 갇혀버렸다면, 지금처럼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가사가 없는 침묵의 선율이야말로 감상자들이 그들의 ‘슬픔’이나 ‘향수’ 같은 감정을 담아내는 여백이지 않았을까?
라흐마니노프의 Op. 34는 총 14개의 가곡, 즉 로망스로 구성된 작품집이다. 1번부터 13번까지의 곡은 1912년에 작곡되었는데, 마지막 14번 <보칼리제>는 그로부터 3년 뒤인 1915년에 덧붙여져 완성되었다.
이 시기(1912년에서 1915년) 라흐마니노프는 이미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세계적 성공은 라흐마니노프를 작곡가로서도 피아니스트로서도 당대 가장 위대한 비르투오소의 지위로 올려놓았다.
이 무렵 라흐마니노프는 그의 절친한 벗이자 당대 뛰어난 소프라노였던 안토니나 네츠다노바를 위해, 그녀의 뛰어난 목소리가 가진 아름다움을 오롯이 선율만으로 극대화할 수 있는 곡을 쓰고자 마음먹는다. 이는 아마도 그가 이 무렵 완성한 러시아 정교회의 위대한 합창 작품 중 하나인 <철야기도> (Op.37)를 작곡하면서 생긴 영감때문이었을 것이다. 신성한 종교적 울림에 대한 탐구가 동시에, <보칼리제> 같은 극도로 개인적이고 섬세한 서정성에 대한 탐구욕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Op.34의 1번부터 13번까지의 로망스들은 모두 당대 러시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주요 시인들의 가사를 사용했다. 이는 가곡이 당시 러시아 지식인 사회에서 단순한 오락을 넘어선 문학적, 철학적 사색을 이끄는 음악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들을 작곡할 때 특정 러시아 가수들이 가진 특별한 재능들을 고려하여 그들에게 꼭 맞게 곡을 만들었고, 출판본에도 아예 각 곡을 부른 가수의 이름을 명기할 정도로 연주자와의 협업을 중시했다.
Op. 34의 로망스들은 상실, 덧없는 시간, 자연, 그리고 예술적 영감 등 낭만주의 시대의 보편적인 주제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는데, 각각의 노래들에는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깊은 감수성과 서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13개의 곡들 중 특히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곡들은 다음과 같다.
- 1번 뮤즈에게 (To the Muse)/ 알렉산더 푸시킨의 시
"그대의 얼굴은 신성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고, 나의 영혼은 영원한 사랑을 향한 갈망으로 타오른다."
- 7번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How painful for me)/ 표도르 튜트체프의 시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나의 젊은 날이 덧없이 흘러가고, 지난날의 모든 행복은 연기처럼 사라지는가."
- 13번 달콤한 침묵이 흐르는 밤 (The Day Passes)/ 알렉세이 플레셰프의 시
"낮이 지났어도, 달콤한 침묵이 흐르는 이 밤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시간을 붙잡고 싶네."
앞서 13곡이 언어, 즉 시를 통해 표현된 구체적인 슬픔과 고통을 다루었다면, 마지막 14번 <보칼리제>는 그 슬픔의 본질, 즉 '언어로는 표현 불가능한 감정'을 다루는 영역의 노래다. 라흐마니노프는 위대한 시인들의 텍스트를 통해 모든 인간의 감정을 탐구한 후, 그가 도달한 감정의 종착역이 바로 '침묵'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일까? 라흐마니노프는 시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거나 혹은 너무나 보편적이어서 언어의 틀에 가둘 수 없는 감정을 위해 <보칼리제>를 남겨두었다. 그렇게 <보칼리제>는 Op. 34라는 러시아 낭만주의 시문학 컬렉션의 가장 마지막 장에 위치하면서, 모든 언어를 내려놓고 순수한 영혼의 울림만을 남긴 '결론'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1910년대 초반은 유럽 음악사에서 가장 격변하는 시기였다. 후기 낭만주의가 절정에 달하는 동시에, 쇤베르크의 무조 음악이나 스트라빈스키의 원시주의 같은 모더니즘 조류가 유럽 전역을 휩쓸며 음악의 형식과 구조를 파괴하던 혼란기였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격변 속에서 낭만주의의 대가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당시 러시아 음악계에서는 멜로디와 기교를 중시하는 서구 지향적인 모스크바 악파(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의 흐름이 주류였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니스트로서 폭풍우 같은 기교를 보여주는 대가였지만 , 작곡가로서는 급격한 실험보다는 깊고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보칼리제>의 초연은 1916년 모스크바에서 이루어졌다. 이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사회주의 혁명의 불씨가 타오르던 암울한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불안정 속에서 청중들은 예술에서 위안과 영원한 아름다움을 갈망했다. 초연 무대는 당시 라흐마니노프의 작곡가로소의 위상을 보여주듯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네츠다노바)와 위대한 지휘자(쿠셰비츠키)가 함께했다.(이들의 협연 자체만으로 당시 큰 화제였다고 한다.) 그리고, 가사가 없는 곡이라는 독특한 시도 또한 청중에게 신선함과 함께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이 곡의 깊고 긴 선율은 불안정한 시대의 청중들에게 '천상의 멜로디'로 받아들여졌고, 이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한 비평가들 평가 또한 호의적이었다. 모더니스트들이 불협화음을 탐구할 때 라흐마니노프는 가장 고전적이고 완벽한 선율을 통해 전통적 아름다움의 가치를 알렸다. 이 곡으로 라흐마니노프는 '마지막 낭만주의자'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초연 이후 <보칼리제>는 언어의 장벽 없이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라흐마니노프가 망명하면서 그의 명곡으로서 더욱 각광받게 되었다.
<보칼리제>는 이후 다양한 악기로 편곡되어 연주되며 더 큰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첼로, 바이올린, 오케스트라 등 수많은 편곡본이 인기를 얻었다. 특히 20세기 초 세계적인 바이올린의 거장 야샤 하이페츠(Jascha Heifetz)와 첼로의 미샤 마이스키 같은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이 이 곡을 자신의 레퍼토리에 올리면서 이 곡의 인기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의 담백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첼로와 알렉산더 데듀킨의 피아노 반주 버전으로도 감상해 보자
- https://youtu.be/HknPi3rMguE?si=4KEP_PDYm-50D0v_
♥ 오륙도
- 이은상
오륙도 다섯 섬이 다시 보면 여섯 섬이
흐리면 한두 섬이 맑으신 날 오륙도라
흐리락 맑으락 하매 몇 섬인 줄 몰라라.
취하여 바라보면 열 섬이 스무 섬이
안개나 자욱하면 아득한 빈 바다라
오늘은 비속에 보매 더더구나 몰라라.
그 옛날 어느 분도 저 섬을 헤다 못해
헤던 손 내리고서 오륙도라 이르던가
돌아가 나도 그대로 어렴풋이 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