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 우리는 무얼 기념해야 하는 걸까?

- 2025년 10월 1일 수요일 -

by 최용수

♥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 1810 ~ 1849)

< '군대' 폴로네이즈 가장조, Op.40 중 1번/ 'Military' Polonaise in A Major, Op.40, No.1 >


* 사진출처 : http://www.defensetoday.kr/news/articleView.html?idxno=6329


https://www.youtube.com/watch?v=CGpPrAJ9Q2Q


달력에서 낯익은 '국군의 날' 기념일 문구를 발견하고 군대를 전역한 햇수를 꼽아 봤다. 32년...

올해는 건군 77주년 '국군의 날'이라고 한다. 작년, 재작년 윤석열 정부 시절 벌였던 국군의 날 시가행진은 올해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잘한 결정이라고 본다. 매년 수 십억의 비용은 물론 가뜩이나 입영대상자들이 줄어 부족한 군병력을 정권의 과시성 행사에 동원한다는 발상 자체가 합리적 정부에서라면 이뤄지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한민국 방산산업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일이지만, 방산산업의 경쟁력이 군대의 거리 행진으로 증명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여전히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군대의 거리 행진에 대한 이미지는 과거 소련과 현재의 북한 같은 권위주의 독재 정권의 허장성세(虛張聲勢) 같다. 신무기를 개발해 세계에 자랑하고 싶다면, 무기박람회 같은 것으로도 충분하다.

아직까지도 군대의 거리 행진을 하는 나라들의 면면을 보라.

가까이는 지난 5월 14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생일에 맞춰 벌였던 미 육군 창설 250주년 기념 퍼레이드는 과연 미국 군대에게 필요한 행사였을까? 예산만 무려 4,500만 달러(한화 약 630억 원)에 동원된 인력과 장비의 규모 또한 엄청났다.(6,500명 이상의 병력, 150대의 차량, 50대의 항공기 등)

최근 잇따른 미국의 마약 운반선(!) 공격에 정권을 뺏길까 위기의식을 느낀 베네수엘라의 급조된 군사 퍼레이드도 그랬다. 강(强)한 자일수록 자신의 강함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국군의 날은 1956년에 제정되었다. 제정 당시 10월 1일이 선정된 것은 공군이 육군에서 독립하여 삼군 체제가 완성된 날이라는 의미와 6·25 전쟁에서 국군이 38선을 돌파한 역사적 날짜라는 의미가 함께 반영되었다고 한다. 국군의 날 제정 이후 이승만 정부는 우리의 군사력과 통일에 대한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하는 중요한 정치적 도구로 국군 시가행진 행사를 활용했다.

특히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권의 부족한 정통성을 숨기고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취시킨다는 명분으로 대규모 시가행진이 매년 개최되었으나, 민주화 이후에는 그 빈도와 규모가 조정되기 시작했다. 1998년부터는 예산절감과 효율성을 이유로 대규모 군대 시가행진은 5년마다 개최한다는 원칙이 정해졌고, 마지막 대규모 시가행진은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에 이뤄졌다. 무려 4,500여 명의 병력과 105대의 장비, 총 9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국군의 날 시가행진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2018년 건군 70주년을 맞아 정부는 시가행진·열병·분열을 모두 취소하고 싸이 등 연예인 공연과 야간 에어쇼로 대체했다. 이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등 남북 화해 분위기를 고려한 정치적 결정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2019년에 "군의 무력과시가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방부 훈령을 개정하여 시가행진을 의무사항에서 선택사항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행사 축소를 넘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연계된 상징적 메시지였으나 이는 역설적으로 북한 눈치보기라는 비판을 불러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시가행진 중단 결정은 표면적으로는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 분위기 조성이라는 외교적 고려가 가장 컸지만, 실제로는 국민들의 군대 거리행진에 대한 불편함, 예산 절약, 장병 피로도 등의 실무적 고려사항도 함께 작용했다. 특히 2018년의 경우 역대급 폭염으로 인한 현실적 제약은 당시의 정치적 결정과 현실적 여건이 맞아떨어진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이 제도적으로 고착화되면서 10년간의 공백기가 시작되었고, 이는 한국군의 대외적 위상과 국민의 안보의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2023년 건군 75주년을 맞아 10년 만에 시가행진을 부활시킨 것은 이전 정부와 달라진 안보관과 대북정책의 반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첫 해인 2023년에는 6,700여 명의 병력과 174대의 장비, 99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2013년 이후 최대 규모의 행사가 개최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시가행진에 직접 참여했다. 그리고, 2024년에는 규모를 다소 축소하여 3,000여 명의 병력과 80여 대의 장비, 79억 원의 예산으로 행사를 진행했으나, 2년 연속 개최라는 점에서 새로운 전례를 만들었다.

윤석열 정부의 시가행진 부활은 여러 제도적 변화를 불러왔는데, 먼저 국방부는 기존의 5년 주기 원칙을 폐기하고 국방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매년 대규모 행사를 개최할 수 있도록 훈령을 다시 개정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 시절의 제도적 변화를 역으로 뒤집는 조치였으며, 정권의 안보관에 따라 국방 관련 정책 또한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였다. 특히 2년 연속 시가행진 개최는 전두환 정권 이후 40년 만의 일로, 이는 역사적 맥락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22~2024년 모두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는 등 대규모 행사의 개최빈도를 증가시켜 예산 낭비의 우려가 있다"라고 공식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는데, 2020~2022년 평균 21억 원이던 예산이 윤석열 정부 들어 80~100억 원대로 급증한 것은 납세자들의 부담 증가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군대의 시가행진보다 '국군의 날'에 더 심각하게 함께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는 따로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심각한 병력 부족 문제다.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감은 최근 중국의 군사굴기로 말미암아 역대 최고급으로 높아졌다. 러-우 전쟁은 물론 최근의 미국과 이스라엘 대 이란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까지 전 세계가 갈등과 분열을 겪으며 군비를 늘려가는 마당에 이 문제는 평화적인 관점에서만 이해해선 안 된다.

대한민국 군대의 전체 병력은 2019년 56만 명에서 2025년 45만 명으로 6년 만에 무려 9만 명이 감소했다. 이로 인해 사단급 이상 부대 17개가 해체되거나 통합되었다. 특히 육군 병력은 같은 기간 30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10만 명 이상 줄어들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국방부는 2040년에는 병력이 35만 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의 징집병 체계의 틀을 유지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군의 간부(직업군인) 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2023년 기준으로 육군 부사관의 수는 45.8%로 급감하여 약 4,800명이 부족한 상태라고 하며, 해군도 부사관 근무자수가 62.4%에 그쳐 약 1,020명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기존 간부들의 희망전역도 급증하여 2019년 2,577명에서 2023년 3,764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군대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처우의 문제가 그 중심에 있다고 한다.

결국 이런 추세대로라면 대한민국 군대가 동북아에서 담당하고 있는 긴장 억지력에도 조만간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군대라는 조직을 경험한 기억은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었지만, 군대를 제대한 이후 "평화를 지키기 위한 무력의 필요성"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면서 국군의 날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도 한 번 같이 생각해 보면 어떨까 했다.

그래서 오늘은 국군의날에 어울리는 음악으로 '쇼팽의 군대 폴로네이즈'를 골라봤다.



이 곡은 시작부터 강렬하고 화려한 화음, 곡 전체에 흐르는 규칙적이고 역동적인 리듬이 마치 군대가 행진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해서 '군대 폴로네이즈'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군대'라는 별칭은 단순히 이 곡이 주는 강렬하고 역동적인 리듬 때문에 붙여진 것은 아니다. 폴로네이즈(Polonaise)는 '폴란드의'라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폴란드의 춤곡 또는 그로부터 발전한 음악 형식을 뜻한다. 4분의 3박자의 17세기 폴란드 궁정에서 유행한 춤에서 비롯되었다. 이름부터 폴란드의 민족적 자부심과 역사적 영광을 상징하는 장르인 셈이다. 쇼팽은 조국 폴란드를 잃고 망명 생활을 하던 중 이 폴로네이즈 형식을 통해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과 독립을 향한 염원을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이 A장조 폴로네이즈는 당시 억압받고 있던 폴란드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상징적인 음악으로, 굳건하고 위엄 있는 분위기는 춤곡의 리듬을 타고 흐르는 애국적인 찬가로 받아들여졌다.


이 곡은 도입부부터 화려한 화음과 역동적인 리듬으로 시작하여, 곧바로 멜로디의 웅장함을 풀어낸다. 곡의 중간부분(트리오)에서는 다소 서정적이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로 전환되어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다 이내 다시 강렬한 주제로 돌아오며 곡의 긴장감과 웅장함을 유지한다. 이 곡은 마치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는 영웅의 모습을 표현한 것 같다. 그래서 쇼팽의 화려한 피아니즘과 함께 가슴속에서는 까닭 모를 용기가 느껴지는 쇼팽만의 매력이 담겨 있다.


쇼팽이 '군대 폴로네이즈' 작곡할 당시...


쇼팽이 '군대 폴로네이즈'를 작곡한 시기는 1838년이었다.


쇼팽의 고국 폴란드는 1830년 청년 장교들의 반란으로 시작된 11월 봉기가 이듬해 러시아의 막강한 군대에 의해 처참하게 진압된 이후, 입헌왕국으로서의 자치권을 완전히 박탈당했다. 러시아는 봉기에 참여했거나 지지했던 폴란드 귀족들의 토지를 대거 몰수하여 러시아 장교들에게 나눠줬다. 이는 폴란드 지배층의 경제적 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리려는 조치였다. 더불어 폴란드 국민들에게는 과도한 세금이 부과되었고 이는 폴란드 경제를 급격히 위축시켰다. 쇼팽이 '군대 폴로네이즈'를 작곡했던 그해(1838년) 폴란드에서는 러시아어 사용이 강제되었고, 폴란드어 사용은 공식적인 장소에서 완전히 금지되었으며 교육기관들 또한 러시아식으로 개편되거나 폐쇄되었다.


1838년 쇼팽은 연인 조르주 상드와 함께 마요르카 섬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쇼팽은 심각한 폐결핵을 앓고 있었고, 마요르카의 습한 기후는 그의 병세를 더욱 악화시켰다. 처음 마요르카의 호텔에서 머물렀던 두 사람은 쇼팽이 폐결핵 환자라는 사실을 알려지자 호텔에서 쫓겨나는 등 매우 힘든 육체적, 정신적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쇼팽은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조르주 상드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쇼팽이 이 곡을 작곡하던 당시의 상황을 "쇼팽은 한밤 중에 침대에 앉아 피아노를 치며, 자신의 조국을 침략한 적들에 대한 분노와 저항 의지를 음악에 담고 있었다. 그는 마치 환상 속에서 싸우는 전사처럼 보였다"라고 썼다. 쇼팽에게 이 '폴로네이즈'는 개인적인 고통 속에서도 민족적 아픔을 놓지 못했던 그의 투쟁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민족의 아픔을 담은 낭만주의 시대의 걸작, '군대 폴로네이즈'


'군대 폴로네이즈'의 초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쇼팽은 리스트처럼 대규모 콘서트홀에서 화려하게 연주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는 주로 파리의 귀족이나 예술가들이 모이는 살롱 연주회에서 자신의 곡을 선보였다. 이러한 살롱 연주회는 규모는 작았지만, 당대의 중요한 음악가와 평론가들이 참석하는 음악계의 중심 무대였다. 따라서 '군대 폴로네이즈'도 이러한 살롱에서 처음 연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섬세하고 정교한 연주 스타일은 살롱의 친밀한 분위기에 더욱 잘 어울렸을 것이다.

이 곡은 발표된 이후 평단과 동료 음악가들은 쇼팽에게 뜨거운 찬사를 보냈다. 당시 쇼팽의 친구이자 대작곡가였던 프란츠 리스트는 이 곡을 두고 "영웅적이고 위엄 있는 행진곡"이라고 극찬했으며, 이 곡에서 폴란드의 고귀한 정신을 느낄 수 있다고 평했다. 다른 평론가들 역시 이 곡이 단순히 기술적인 화려함을 넘어선 깊은 서사와 감동을 담고 있음에 주목했다. 특히 망명 중인 폴란드인들에게 이 곡은 잃어버린 조국의 희망을 노래하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당시 쇼팽처럼 망명 중이던 폴란드인들은 이 곡을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독립에 대한 염원으로 되새겼다고 한다.

'군대 폴로네이즈'는 피아노라는 악기가 오케스트라에 버금가는 웅장함과 드라마틱한 표현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 곡으로도 의미가 있다. 쇼팽은 이 곡에서 화려하고 강렬한 피아니즘을 통해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렬한 서사까지 담아내며 당시 피아노 표현력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쇼팽의 놀라운 표현력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피아노 음악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

특히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등 다른 나라 작곡가들도 자신의 민족적 배경을 담은 행진곡이나 춤곡을 작곡하는 데 큰 영감을 주기도 했다.


폴란드 국민들에게 민족의 상징이 된 음악, '군대 폴로네이즈'


1939년 9월, 2차 세계대전의 문을 연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 이후, '라디오 폴란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군대 폴로네이즈'를 방송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폴란드 민족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물론 오늘날에도 이 곡은 폴란드인들에게는 조국애의 표현이자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는 곡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세계적인 피아노 연주자들은 자신들의 연주목록에 이 곡을 포함시킴으로써 피아노의 표현 가능성을 극적으로 확장한 쇼팽의 천재성에 대해 존경을 드러내고 있다. 이 곡을 자주 연주했던 폴란드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폴란드의 황금시대를 회상케 하며 그 나라의 위대함과 몰락의 운명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라며 음악을 통해 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고스란히 예술 작품에 담아낸 쇼팽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 앞서 우크라이나 키이우 출신(출생 당시는 소련)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힘찬 연주로 감상했다면, 쇼팽의 고국 폴란드 출신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연주로 폴란드인의 감성으로 들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PC9-35ZPKn8



♥ 평화


- 고은


인간이 가장 부끄러워할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내 마음 속

아라비아 사막의 뜨거운 모래 위에 쓴다

평화! 라고

몇 천 년 이전

전혀 다른 시대의 낯선 글자로 쓴다

내 몸속

아프리카 오지 위의 캄캄한 공중에 쓴다

여기

한반도 휴전선 언저리

방금 날아간 새를 놓친 뒤

몇 십 년 동안 녹슨 철모를 어루만지며

평화! 라고

다리 하나라도 좋아라

그 다리로 목발 짚고 쓴다

모독!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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