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9월 25일 요일 -
♡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
<짐노페디 3번, '느리고 장중하게'/Gymnopédie No.3 : Lent et grave>
■ https://youtu.be/KUlZylqILKI?si=Fe55fIRFxo0m7Mij (Orchestrated by Debussy)
비가 그친 가을 아침의 공기가 더없이 상쾌하다.
아침 산책을 위해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마자 붉게 익어가는 대추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리 아파트 화단에는 감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 같은 유실수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띈다. 벚나무도 이른 봄, 벚꽃이 떨어지고 버찌가 열리니 유실수에 포함시켜야 하나?
사실 5월의 장미도 꽃들이 지고 나면 '로즈 힙'이 꽃이 떨어진 가지마다 열리니까 그럼 장미도 유실수라고 해야 할까?
'유실수(有實樹)'란 단어는 사실 나무를 지극히 인간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만든 단어다. 유실수(有實樹)의 '실(實)'은 열매를 뜻하는 글자지만, 그건 '식용(食用)' 가능한 열매라는 뜻이 내포(內包)되어 있기 때문이다.
'버찌'도 '로즈 힙'도 먹을 순 있어도 굳이 식용을 목적으로 벚나무와 장미나무를 심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엄밀히 '유실수(有實樹)'가 아니다.
"꽃이 피는 모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꽃과 열매는 자손을 남기기 위해 나무들이 선택한 고도(高度)의 진화(進化)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무를 포함해 왜 모든 생명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쓰며 진화했을까?
그건 아마도 단속적(斷續的)인 생명의 유한성을 영원(永遠)으로 이어보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慾求)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지금 여기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존재의 모든 가능성을 펼쳐보고 싶은 욕구 때문은 아니었을까?
중년을 흔히 인생의 가을이라고 하는데,
"지금 여기 당신은 당신이 존재하는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까?
빨갛게 익어가는 대추들이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성취(成就)를 드러내며 내게 묻고 있다.
오늘은 가을이면 나를 돌아보는 음악으로 자주 듣게 되는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를 골라봤다.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의 ‘짐노페디 1번(Gymnopédie No.1)’은 1888년,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라는 당대 보헤미안 예술계의 심장부에서 태어난다. 이 시기는 유럽 전체 예술사에서 변혁이 거듭되던 과도기였다. 음악에서는 독일 낭만주의가 절정을 구가하고 있었다.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 구스타프 말러(1860~1911) 등이 교향곡과 오페라에서 거대하고 극적인 양식을 추구했다. 프랑스 음악계도 카미유 생상스(1835~1921), 쥘 마스네(1842~1912), 샤를 구노(1818~1893) 같은 보수적·전통적 작곡가들이 여전히 주요 관현악 무대와 오페라극장을 장악했다. 생상스는 대표적인 “기성 거장”으로 여겨졌고, 그의 음악은 구조적 엄격함과 선명한 선율미를 중시했다. 그러나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리기 직전, 프랑스 청년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미적 반란의 기운이 일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문학과 미술의 새로운 사조가 있었다. 문학에서는 상징주의(Symbolism)가 급속히 확산 중이었다. 스테판 말라르메(1842~1898), 폴 베를렌(1844~1896), 아르튀르 랭보(1854~1891) 등 시인들은 언어의 내면적 울림과 암시를 중시하여 기존 사실주의·자연주의 문학에서 탈피했다. 미술에서는 후기 인상주의와 상징주의 화풍이 주목받았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폴 고갱(1848~1903),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1864~1901), 폴 세잔(1839~1906) 등이 각각의 방식으로 색채와 형태의 해방, 감정의 집약, 몽환적 분위기의 추구에 몰두했다. 몽마르트르에서는 카페 블랙캣(Le Chat Noir)이 시인, 화가, 음악가, 배우들이 어울리는 예술 실험의 장이 되었다.
사티는 1880년대 중반 몽마르트르의 카페 피아니스트로 일하며 사회적 하층계급과 예술적 변방의 인물로 살아갔다. 가난하고, 주류 음악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동세대 보헤미안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 미학을 모색했다. 그는 ‘에콜 노르말 파리 음악원’에서는 ‘무기력하고 기교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오히려 정형을 거부했다. 몽마르트르의 카페와 클럽, 가벼운 연극과 마술쇼, 신비적이고 엉뚱한 분위기의 공간에서 피아니스트로 소일하며 생활 안정을 겨우 유지했다. 극도의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지만, 그는 언제나 “음악은 너무 무거워선 안 된다”는 신조로 세상에 반기를 들었다.
짐노페디 1번의 작곡 배경에는 사회적 고립감, 몽상적 감수성, 그리고 주변 예술계의 상징주의적 분위기가 진하게 배어 있다. 사티는 고대 그리스의 ‘짐노파이디아’라는 청년 체조축제·의식에서 착상한 이름을 택했다. 제목부터가 의식적이고 상징적이다. 곡은 극도로 단순한 화성과 느린 템포의 3박자 왈츠로 시작한다. 멜로디는 짧고 반복적이면서도, 중얼거리는 듯한 신비감과 애수(understated melancholy)를 품고 있다. 조성은 평범한 장단조를 벗어나 불협화음을 일부러 드러내며, 이는 당시 고전주의 화성 개념에 대한 도전이자 실험이었다.
사티 음악의 특징은 미니멀리즘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반복, 단순화, 분위기 연출, 내향적 사색, 몽환적 이미지를 들 수 있다. 곡 전체에 내내 깔린 부드러운 페달링과 모호한 화성은 ‘형태의 해방’이자 ‘정서의 집약’이었다. 사티는 대규모 작품 대신 짧고 간결한 피아노곡에 감정의 극치를 담았다. 그는 “‘밝음 속의 슬픔, 평온 속의 환상’을 음악으로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가사 없는 내면의 시, 그림 없는 회화처럼 그의 곡은 시와 그림의 요소가 음악 안에 녹아 있다.
에릭 사티가 짐노페디 1번이 발표했을 때, 파리 음악계는 이 작품에 대해 아무런 주목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보수적 평단과 관객들은 이 짧고 희미한 곡이 ‘진짜 음악’인지조차 의심했다. 이 곡을 높게 평가한 것은 같은 청년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였다. 드뷔시는 사티의 친구이자 정신적 동지로, 짐노페디 1·3번을 직접 관현악 편곡해 연주함으로써 사티 음악에 영예와 사회적 인정을 안겨주었다. 이후 프랑스 신세대 작곡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 프랑스 6인조(레스 식스) 등은 모두 사티의 영향을 받아 극적인 화성, 미니멀리즘, 모더니즘 등 다양한 실험을 이어갔다.
사티의 생애는 한마디로 예술가적 이단아의 길이었다. 그는 평생 가난, 실패, 사회적 지위를 넘어서 자신만의 예술적 논리와 ‘아이러니’를 고수했다. 그는 신비주의 단체에 입회하거나, 시간당 몇 프랑짜리 카페 공연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등 기행과 고독을 일상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음악에 대해 결코 타협하지 않았고, 음악의 목적을 ‘장대한 감정이 아니라 간소함, 대화, 일상성의 미’에서 찾았다.
20세기 초, 사티는 연극과 영화, 실내악, 발레음악까지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그의 대표작 ‘헛소리(Parade, 1917)’, ‘아침의 명상’ 등은 고전음악과 대중예술, 퍼포먼스의 경계를 허물었다. 사티의 미니멀한 미학은 훗날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1948~),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1937~) 등 뉴에이지와 현대 실험음악, 앰비언트 뮤직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티는 짐노페디란 제목으로 모두 3곡을 썼다. 모두 1888년에 작곡되었고, 출판 또한 같은 해 파리에서 동시 출판되었다. 출판본에는 각각 다음과 같은 원제들이 붙어 있다.
짐노페디 1번 (Gymnopédie No. 1: Lent et douloureux 느리고 고통스럽게)
짐노페디 2번 (Gymnopédie No. 2: Lent et triste 느리고 슬프게)
짐노페디 3번 (Gymnopédie No. 3: Lent et grave 느리고 장중하게)
공식 첫 연주는 사티가 생전에 몽마르트르에서 피아노로 연주한 것이었으며, 관현악 편곡 및 대중적 인기는 1897년 클로드 드뷔시의 편곡 연주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피아노 연작곡들은 낭만적 웅장함과 박진감 대신, 몽상과 고요, 단순함과 예술적 아이러니의 현대적 문을 연 음악적 전환점이 되었다. 이 곡들을 통해 사티는 몽마르트르 변방의 루저(Loser)가 아니라, 20세기 예술미학의 선구자이자, 예술을 일상의 감각으로 되돌려놓은 영원한 실험가로 독특하게 자리매김한다. 그의 음악은 ‘아무것도 아닌 듯한’ 신비와 슬픔, 그리고 침묵 사이에 피어오르는 우아함으로 시대를 거슬러 남아 있다.
■ 사티가 몽마르트르의 어느 살롱에서 연주했음직한 톤으로 카티아 부니아티슈빌리(Khatia Buniatishvili) 피아노 연주로 먼저 짐노페디 1번을 감상해 보자
- https://youtu.be/TL0xzp4zzBE?si=pBsFKrDiIIryekgg
■ 1~3번 전 곡은 일본의 감성적 피아니스트 이쿠야 카미야(Ikuya Kamiya)의 연주로 감상해보자.
- https://youtu.be/TWhoK21Rg1c?si=OGcEGNXb16dONHyi
♥ 가을 바람
- 이해인
숲과 바다를 흔들다가
이제는 내 안에 들어와
나를 깨우는 바람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놓고
햇빛과 손잡은
눈부신 바람이 있어
가을을 사네
바람이 싣고 오는
쓸쓸함으로
나를 길들이면
가까운 이들과의
눈물겨운 이별도
견뎌낼 수 있으리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사랑과 기도의
아름다운 말
향기로운 모든 말
깊이 접어두고
침묵으로 침묵으로
나를 내려가게 하는
가을 바람이여
하늘 길에 떠가는
한 조각 구름처럼
아무 매인 곳 없이
내가 님을 뵈옵도록
끝까지
나를 밀어내는
바람이 있어
나는
홀로 가도
외롭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