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 2025년 9월 24일 수요일 -

by 최용수

♡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

<오페라 『로엔그린』중 제3막 '혼례의 합창'(결혼행진곡) WWV 75/ 'Bridal Chorus' from Opera 『 Lohengrin』, Act 3, WWV 75 >


https://www.youtube.com/watch?v=_7Su2qPT_P0


미국 우파 보수진영의 젊은 리더였던 찰리 커크의 암살이 미국 사회를 극단적 분열로 내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비극적 사건을 이용해 그에게 제기된 여러 의혹들(특히 '제프리 엡스타인 스캔들')을 무마(撫摩)하고, 더불어 그와 공화당이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우파정책들을 폭력적으로 관철하려 하면서 민주당과 미국 내 진보 진영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극단적인 갈등과 대립은 사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의 많은 국가들은 지속적인 저성장과 고용 불안을 반복하고 있지만 이 와중에도 일부 특권층으로의 부의 편중은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 월스트리트의 대형 금융사들은 (세금으로 마련된) 공적 자금 투입과 구조 조정을 통해 살아남았지만, 그들의 부도덕한 이익 추구의 결과 중산층과 서민들은 실업과 파산으로 내몰렸다. 금융위기 사태는 역설적으로 그 원인을 제공한 대형 금융사들과 함께 미국 상위 10% 부자들의 자산과 소득을 더욱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한때 복지국가 이상으로 비춰졌던 유럽은 2008년 위기 이후 더욱 심각한 위기 상황에 내몰렸다. 남유럽은 막대한 실업과 긴축재정의 그늘 아래 흔들렸고, 청년 실업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은 IMF와 유럽중앙은행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에 따라 유래없는 복지제도 축소, 노동시장 유연화를 받아들여야 했으며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긴장은 가파르게 높아져만 갔다. 독일과 프랑스 등 EU를 지탱하던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빈부격차 확대와 이민자 유입에 따른 일자리 감소 등 기존 정치엘리트와 제도권 정당의 정책적 무능에 환멸을 느낀 대중들을 우파(극우를 포함한) 정당의 포퓰리즘 정책과 구호에 열광하게 만들었다.


'사회적 연대와 포용'의 깃발은 '배제와 경쟁'의 구호로 바뀌었고, 세계는 바야흐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처절한 생존 경쟁의 장으로 변해 버렸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갈등과 분열을 더욱 극단적으로 부추기고 있는 것은 미디어다. SNS, 유튜브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들은 그동안 소수의 언론사들이 마치 특권처럼 누리던 언론의 자유를 수많은 개인들이 나눠가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SNS와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에 의해 발생했다. 이들 플랫폼들은 더 많은 조회수와 더 많은 공감으로 유지되는 시스템이다 보니 정제되지 않은 정보, 허위 과장 정보, 그리고 악의적인 왜곡과 선동까지 무분별하게 확산시켰다. 그들의 알고리즘은 이용자들이 보고 싶은 것만 계속 보게 만드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을, '진실'에 대한 충분한 검토도 없이 자기가 믿고 싶은 사실만 계속 받아들이게 만드는 '확증 편향(確證 偏向)' 현상을 유발하였다. 결국 우리 사회의 소통은 합의(合議)와 숙의(熟議)와는 거리가 먼 '편 가르기'와 '증오'만 가득 차게 되었다. 플랫폼 기업들은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 뒤에 숨어 '사회적 신뢰'와 '공동체적 가치'는 내팽개친 채 여전히 이윤 창출에만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끔 아침에 내가 왜 이런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를 브런치란 공간에서 다루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어차피 다 아는 얘기이기도 하고(문제는 알고는 있지만 극복할 방법은 참 쉽지 않은), 굳이 내가 여기서 말하지 않아도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충분히 접할 수 있는 내용을 왜 하필...


하지만, 30년 넘게 공영방송에 종사한 나에게 이 문제는 직업적인 의무감 때문 에라도 다룰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는 하루빨리 우리나라의 공영방송이 정상화되어서 이런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완화시켰으면 하는 강력한 바람을 갖고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오늘 브런치글 제목으로 인용한 이 문장은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언론학도에서부터 부끄럽지 않은 언론을 꿈꾸는 언론인들이라면 모두 존경해마지 않는 리영희(1929~2010) 선생께서 1994년에 발간한 평론집의 제목이다.

이 책은 좌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의 중요성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한국 사회의 극단적 이분법과 냉전적 사고방식에 대해 비판한다. 리영희 선생은 이 책에서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갈 수 없다”는 중요한 통찰을 제시한다.

좌와 우(左右)는 빛과 어둠, 높음과 낮음처럼 대립되지만 결코 둘로 나눌 수 없는, 마치 우리의 손바닥과 손등이 합쳐져서 손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상대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함께 존재해야 하는 것들이다.


얼마 전 브런치글에서도 썼지만, 인간의 감각능력으로 진실을 다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불가능에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다.) 그래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 서로 보고 만진 것만 전부인 것처럼 얘기해선 안된다. 우파의 등장은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다. 좌파의 등장 때도 그랬지만.

지금 인류에게 닥친 위기는 좌우가 함께 깊은 통찰(洞察)의 힘으로 해결방법을 찾아도 극복가능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인류는 지금 어느 때보다도 '좌우의 날개'의 힘이 필요하다.


오늘은 그래서 이런 비장한 주제와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음악, 서로 다른 입장의 존재들이 서로 하나가 되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바그너의 오페라『로엔그린』제3막에 나오는 '혼례의 합창'을 골라봤다.




신화와 현실의 경계에서 인간의 감정을 탐구한 오페라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은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의 정점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3막에 등장하는 '혼례의 합창'(독일어: Treulich geführt, 영어: Bridal Chorus)은 오페라 보다 더 대중적으로 인기를 모은 작품으로 결혼식에서 신부 입장곡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곡이다.

그런데, 이 곡의 장엄하고 진지한 분위기는 가족과 친지들의 축복 속에서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리는 신랑과 신부의 희망차고 행복 가득한 느낌과는 조금 다른 결의 음악이다.

오페라 『로엔그린』에서 이 곡은 결혼에 대한 설렘과 기대, 그리고 희망만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곡은 사실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는 중요한 복선으로 작곡되었기 때문이다.

이 곡은 주인공 로엔그린과 엘자가 행복한 결혼식을 마친 직후, 비극의 서막이 될 신방으로 들어가는 순간에 흘러나온다. 축복의 절정으로 시작되는 이 장면은 신부 엘자에게 허락되지 않은 금지된 질문, 그러나 엘자는 무심코 이 금지된 질문을 던지고 이 때문에 로엔그린은 엘자를 떠나게 된다. 바그너는 이 극명한 대비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은 본성의 면과 사랑의 불완전성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격동의 1840년대, 그 중심에 서고자 했던 바그너


『로엔그린』이 작곡된 1840년대 유럽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이 사회 곳곳에서 기존 질서와 충돌하고 있었다. 또한 증기기관으로 촉발된 산업혁명은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내며 사회 구조를 빠르게 재편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중산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힘은 커져만 갔고, 급기야 1848년은 기존의 권위와 질서에 대항하는 자유주의 혁명의 불길이 전 유럽을 휩쓸었다.

바그너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예술에 투영한 작곡가였다. 1848년 당시 작센 드레스덴 궁정 극장의 카펠마이스터(궁정악장)였던 바그너는 안정된 사회적 지위를 포기하고, 1849년 5월 드레스덴 봉기에 직접 가담했다가 당국에 수배되어 스위스로 망명하는 신세가 되었다.(일설에는 평생 낭비벽으로 인한 채무와 빚 독촉에 시달리던 바그너는 명백한 정치적 신념에 의한 투쟁의 결과 망명자의 신분이 된 것은 맞지만, 과도한 채무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런 정치적 결단과 고난은 바그너의 예술 세계에 깊숙이 투영되었다. 현실의 혁명에서 이상을 추구하다 좌절한 그의 경험은, 『로엔그린』에서 신비로운 이상향의 존재가 인간 세계의 불완전성과 마주하며 비극을 맞이하는 서사와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즉, 로엔그린이 인간 엘자의 나약함으로 인해 자신의 이상을 포기하고 신성한 세계로 돌아가는 모습은, 바그너 자신이 현실 정치에서 겪었던 이상과 현실의 충돌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바그너는 자신의 삶의 비극적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단순한 서사를 넘어 인간의 한계와 불완전성이라는 보편적인 철학적 메시지를 작품에 녹여냈다.


『로엔그린』이 탄생하기까지


바그너는 젊은 시절부터 중세 시대의 전설과 신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는 볼프람 폰 에센바흐의 서사시 <파르치팔>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었는데, 1845년 요제프 괴레의 희곡 <로엔그린>을 읽고 난 후 바로 이 전설을 오페라로 만들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는 1846년부터 1848년까지 직접 대본까지 쓰고 음악을 완성하였는데, 바그너의 『로엔그린』은 '로엔그린의 전설'만을 다룬 요제프 괴레의 원작에다 '니벨룽의 노래'와 '텔라문트 부부의 전설' 등 여러 요소를 결합하여 구성을 더 극적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의 배경은 10세기 초 독일과 네덜란드로, 실존 인물인 하인리히 1세를 모티브로 중세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신비로운 소재와 동화 같은 줄거리를 낭만적이고 화려한 음악과 결합시켰다. 이는 당시 청중들이 원하는,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와 구성이었다.


『로엔그린』은 1848년 완성되었지만, 바그너의 정치적 망명으로 인해 초연이 그해에 이뤄지지 못했다. 1849년 드레스덴 봉기 참여로 수배령이 내려진 바그너는 체포를 피해 스위스 취리히로 망명하였고, 작품의 상연은 기약 없이 연기되었다. 이때 바그너의 친구이자 강력한 후원자였던 프란츠 리스트가 나섰다. 리스트는 바이마르 궁정악장으로서의 영향력을 동원해 바그너를 대신하여 1850년 8월 28일 <로엔그린>의 초연을 지휘하였다. 이 날짜는 바이마르의 대문호 괴테의 탄생일로서, 리스트는 그가 평생 존경했던 괴테와 바그너의 혁명 사상을 연상시키고자 했다.

리스트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에 초연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으나, 정작 작곡가인 바그너는 수배된 상황이라 초연에 참석하지 못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본 것은 초연으로부터 무려 12년 뒤인 1862년 빈에서였다.

『로엔그린』의 성공은 바그너의 천재성뿐만 아니라, 망명객이라는 그의 극적인 개인적 배경과 리스트라는 거장의 헌신적인 지원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결과였다. 로엔그린이 위기에 빠진 엘자를 구원하는 오페라의 서사처럼, 현실에서 리스트는 바그너의 예술적 재능을 보호하고 세상에 알리는 구원자 역할을 하였다. 바그너의 삶과 작품 속 서사가 현실에서 교차하는 이 놀라운 우연은 예술의 탄생이 단순히 창작가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맥락과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복합적인 사건임을 보여준다.

『로엔그린』과 '결혼 행진곡'의 음악적 성격과 특징


『로엔그린』은 바그너가 '음악극(Musikdrama)' 개념을 본격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한 중요한 작품이다. 그는 기존 오페라의 형식이었던 아리아, 레치타티보, 합창의 명확한 구분을 없애고, 한 막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무한선율(unendliche Melodie)'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는 드라마의 내적 행위가 중단 없이 지속적으로 펼쳐지는 것처럼, 음악 또한 지속적인 흐름을 유지해야 한다는 그의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또한, 『로엔그린』에서 바그너는 인물이나 감정, 상황을 상징하는 짧은 선율인 '라이트모티프(Leitmotiv)'를 체계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작품에는 '성배 모티프', '로엔그린 모티프', '엘자 모티프' 등 총 38개의 라이트모티프가 등장하여 유기적으로 반복, 변주되면서 작품 전체의 통일성을 높인다. '혼례의 합창' 또한 이 오페라를 관통하는 주요 라이트모티프 중 하나로, 단순히 아름다운 선율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극의 서사적, 심리적 흐름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처럼 바그너는 <로엔그린>을 통해 음악, 드라마, 무대 효과를 하나의 유기체로 통합하는 '총체예술작품(Gesamtkunstwerk)'의 개념을 실현하기 시작했고, 이는 20세기 현대 음악과 예술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초석이 되었다.


'혼례의 합창'은 『로엔그린』제3막의 전주곡이 끝난 후 등장하는 곡으로,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엘자와 신녀들의 합창으로 구성된다. 이 곡은 밝고 화려한 금관악기의 시작과 함께 힘차고 행복한 느낌을 주는 선율이 이어지며, 축하의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이러한 음악적 표현은 듣는 이에게 완벽한 행복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이 곡이 연주되는 시점은 오페라 줄거리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순간이다. 결혼식 직후 신방에서 행복을 누려야 할 엘자는 오르트루트의 계략과 내면의 불안감에 흔들려 결국 로엔그린에게 그의 정체를 묻는 금지된 질문을 던지게 되고, 이는 곧 파멸의 시작을 알리는 방아쇠가 된다.

바그너는 의도적으로 이토록 축복 가득한 음악을 비극적 파멸의 직전에 배치함으로써, 단순한 행복의 순간이 아닌, 그 안에 숨겨진 불안과 의심의 씨앗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한다. 이는 마치 인간의 삶에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듯, 완벽해 보이는 사랑과 행복 속에도 불완전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미학적 장치이다. 이 곡은 대중적으로는 영원한 축복의 노래이지만, 오페라의 맥락에서는 '사랑은 의심이 있는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바그너의 철학적 메시지를 극적으로 전달하는 비극적 서사의 첫 페이지였던 것이다.

『로엔그린』의 주인공과 막별 줄거리


오페라의 줄거리는 엘자를 중심으로 '믿음과 의심', '구원과 파멸'이라는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등장인물

▶ 로엔그린/테너

성배의 수호 기사이자 백조 기사. 완벽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인간 세계의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 나타난다. 인간에게 무조건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신성을 상징한다.

▶ 엘자 폰 브라반트/소프라노

브라반트 공국의 공주. 순수하고 낭만적인 인물로, 신비로운 구원자를 꿈꾼다. 그러나 인간 본연의 불안과 의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비극을 초래하는 나약한 인간성을 상징한다.

▶ 텔라문트 백작/바리톤

브라반트의 대관. 세속적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며 엘자를 모함하는 현실적 인물이다.

▶ 오르트루트/메조소프라노

텔라문트의 아내. 이교도 마법사로, 로엔그린과 성배의 신성한 힘에 대항하는 '어둠의 세력'을 상징한다. 그녀는 교활한 계략으로 엘자의 의심을 부추겨 비극을 초래한다.

▶ 하인리히 1세/베이스

독일의 왕. 극의 질서와 정의를 상징하며, 신명재판을 주관하고 로엔그린의 등장을 지켜본다.


줄거리 요약

제1막: 브라반트 공국의 공주 엘자는 남동생 고트프리트 살해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게 된다. 그녀를 모함한 텔라문트 백작과의 신명재판이 시작될 위기의 순간, 엘자가 꿈에서 본 백조가 이끄는 배를 타고 신비로운 기사가 나타난다. 이 기사는 엘자에게 자신을 믿고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절대로 묻지 말라는 '금지된 질문'을 조건으로 내걸고, 결투에서 텔라문트를 이겨 엘자의 무죄를 증명한다.


제2막: 이교도 마법사인 오르트루트와 텔라문트는 엘자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오르트루트는 엘자의 불안정한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정체를 알 수 없는 로엔그린과의 결혼에 대한 의심을 조장한다.


제3막: '혼례의 합창'이 울려 퍼지는 결혼식 후 신방에서, 엘자는 마침내 오르트루트의 계략과 내면의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로엔그린에게 금지된 질문을 던진다. 질문을 받은 로엔그린은 자신의 정체를 '성배의 기사'이며, 자신의 신분을 밝힌 이상 인간 세계에 머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마법에 걸려 백조로 변해 있었던 엘자의 남동생 고트프리트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지만 , 결국 신성한 세계로 돌아가야만 한다. 로엔그린이 떠나자 엘자는 절망에 빠져 쓰러진다.


이 비극적 결말은 로엔그린의 '구원'이 일시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역설을 담고 있다. 그는 엘자를 위기에서 구해냈지만, 동시에 '절대적 믿음'이라는 조건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성을 시험하였다. 엘자는 이 시험에 실패함으로써 자신의 나약한 인간성을 드러냈고, 이는 로엔그린이 '사랑은 의심이 있는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보편적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 떠나야 하는 서사적 필연성을 만들었다. 바그너는 이 비극을 통해 신비와 믿음 없이는 온전한 사랑이 유지될 수 없다는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오페라『로엔그린』이 남긴 영향


『로엔그린』은 바그너에게 확고한 명성을 가져다주었고, 이후 그가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니벨룽의 반지> 등 더욱 심오한 작품 세계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었다. 이 작품은 또한 19세기말에 절정에 이른 '바그너주의(Wagnerimus)'를 촉발하였는데, 이는 그의 음악이 단순히 예술을 넘어 철학과 사상, 심지어는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현상이었다. 바그너의 작품은 독일 민족주의와 결합하며 유럽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바그너는 1854년 이후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깊이 매료되어 그의 염세주의적 세계관을 작품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쇼펜하우어는 음악을 '의지 자체의 모방'이라 보았는데, 바그너는 이 철학을 통해 음악의 초월적인 힘을 자신의 작품에 담아냈다. 바그너의 초기 작품을 '초인'의 예술로 극찬했던 철학자 니체는, 바그너가 점차 종교적, 염세주의적 경향으로 기울자 실망감을 표하며 그와 결별하였다. 이들의 복잡한 관계는 19세기 예술과 철학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또한, 추상 회화의 선구자인 바실리 칸딘스키는 모스크바에서 <로엔그린>을 듣고 "정신 속에서 내가 가진 모든 색을 보았다"라고 말하며 '공감각(synaesthesia)'을 경험하였는데 , 이는 음악이 회화적 영감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고, 그를 추상 미술의 길로 이끌었다. 이처럼 바그너의 음악은 단순히 음악사를 넘어, 철학과 다른 예술 분야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총체예술'의 파급력을 증명하였다.


■ 오페라 『로엔그린』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들을 담고 있는 서곡을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 하모닉의 연주로 감상해 보자

- https://youtu.be/zyodILZEQFg?si=SjcTBlIlqYRX_veU


■ '혼례의 합창' 전 연주되는 3막 전주곡은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감상해 보자.

- https://youtu.be/tRQCnnxfeO0?si=1UbnYyzdzg7y-q9N



♥ 동그란 길로 가다


- 박노해


누구도 산정에 오래 서 있을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환희의 날들은 짧다

고난의 날들도 짧다


돌아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힘든 때도 순간인 것을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진실된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로 돌아 나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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