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비가 내린다...

- 2025년 6월 20일 금요일 -

by 최용수

♡ 알버트 윌리엄 케텔비(Albert William Ketelbey, 1875~1959)
<어느 수도원의 정원에서/ In a Monastery Garden>


https://www.youtube.com/watch?v=tm_fgSN9SZI


이 곡은 영국의 현대 클래식 음악 작곡가 알버트 윌리엄 케텔비가 1914년에 작곡한 관현악 소품으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수도원의 정원을 묘사한 이 작품은 음악을 따라 듣고 있으면 이내 한적한 수도원의 정원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지난 주말부터 벌써 일주일째 살벌한 전쟁 소식으로 황폐해진 마음을 치유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골랐다.


이란과 이스라엘에서는 여전히 폭발의 굉음과 사이렌 소리가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 참전 여부가 가장 큰 변수가 될 거란 보도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미국은 이번 이스라엘-이란 전쟁의 참전 여부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건 아마도 이제는 점점 기억속에서 지워져 가고 있는 2001년 알카에다에 의해 자행된 9·11 테러의 끔찍한 교훈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 관련 뉴스, 특히 군사전문가들이 등장하는 유튜브들을 보고 있으면 미군이 개입하면 마치 금방이라도 전쟁이 끝날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지만, 현대의 전쟁은 고대와 중세의 대회전(大會戰)처럼 결코 한 번의 전쟁으로 승부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지난 미국과 베트남의 전쟁, 구 소련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에서 배운 바 있다.

'부전이굴인지병(不戰而屈人之兵), 선지선자야(善之善者也)',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승리라는 손자병법의 교훈이 그냥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강하게 누르면 처음에는 쉽게 굴복되는 것처럼 보여도 반드시 반작용으로 저항하는 힘이 생겨나게 된다.

저돌적이고 예측불가한 성격이라고 여겨졌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저런 신중한 선택이 어디서 나올까 싶을 정도로 지금 미국은 과거의 교훈들을 잘 되새기며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는 듯 보인다. 아마도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질까지를 감안해 미국의 전략수뇌부들이 적절하게 조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기급에서도 세계 최강이지만, 이런 뛰어난 전략 스태프들을 보유한 미국이기 때문에 '팍스 아메리카나'의 세계 질서가 유지되지 않는가 싶다.




이 곡을 작곡한 케텔비는 1875년 영국 버밍엄에서 태어났다. 보석 세공사였던 아버지 조지 헨리는 모두 5남매를 두었는데, 케텔비는 그중 둘째였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고 하는데, 케텔비가 11살 때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는 에드워드 엘가의 칭찬을 받을 정도였으니... 13살의 어린 나이에 빅토리아 여왕 장학금을 받아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했고, 고작 16세의 나이에 세인트 존 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이후 런던의 여러 극장에서 지휘자로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20세기 들어 영화와 음반 시장이 발전하기 시작하자 영국 컬럼비아 레코드와 그라모폰의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20년대는 무성영화의 전성시대, 극장에서는 관객들에게 영상이 담지 못한 분위기와 느낌을 소리로 채워줘야 했는데, 그래서 케텔비는 바로 그런 음악들을 작곡해 주었다. 대중적인 영화와 음반 시장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보니 그의 작품들은 대중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가볍지만 매력적인 클래식 소품들이 많다.


케텔비의 '페르시아 시장에서'라는 작품을 들어보면 그의 음악적 특징을 금방 눈치챌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VzLc7syPkA


지금은 끔찍한 전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란이지만, 이 작품을 듣다 보면 과거 화려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A단조로 시작하지만 4분의 2박자의 경쾌한 속도로 관현악과 합창의 다채로운 음색과 화려한 멜로디가 페르시아의 이국적인 시장 풍경을 묘사하는데, 낙타를 탄 상인들의 경쾌한 행진곡 풍의 리듬, 시장을 찾은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모습을 합창과 금관, 그리고 타악기로 잘 묘사하고 있다. 이어서 수많은 하인을 거느린 아름다운 공주의 행렬이 하프와 첼로, 클라리넷으로 우아하게 그려지다 힘찬 관현악의 연주로 끝을 맺는다.


런던의 여러 극장에서 지휘자 겸 작곡가로 활동하던 있던 케텔비는, 1912년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환상의 선율 Phantom Melody>로 작곡가로서 첫 번째 큰 성공을 거둔 이후 '페르시아 시장에서'처럼 다양한 실용음악의 효과를 시험하고 있었는데 처음 소개한 '어느 수도원의 정원에서'는 바로 이런 그의 실험 정신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케텔비의 작품 중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 작품은 당시 무려 100만 부가 넘는 악보가 팔려나가며 런던 음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이다. 이는 케텔비가 20세기 초 영화와 음반이 보급되기 시작할 그 무렵 영국 대중의 정서와 감성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제대로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수도원의 정원에서'는 케텔비가 영국 요크셔 지방의 해안도시 브리들링턴(Bridlington)에서 곡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지휘하던 런던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단원이자 절친이었던 엔리코 스코마(Enrico Scoma)와 함께 자동차 여행을 떠났을 때, 폐허가 된 수도원에 들렀는데 그곳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새들의 지저귐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작곡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 곡이 발표된 1914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해였기 때문에 평화와 안정을 갈망하던 영국시민들에게 수도원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담은 이 작품은 그들의 욕구를 아주 정확하게 반영한 것이었다.


20세기 초 영국은 해외 각지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대 제국(ㅠㅠ 영국인들에겐 제국의 영광이겠지만, 식민지 주민들에겐...)으로 세계 각지의 여행담이나 기행문이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이를 '이국취미(Exoticism)'라고 불렀다.) 이 때문에 동양과 이국지방에 대한 환상과 호기심이 컸다. 케텔비는 이러한 대중의 욕구를 음악으로 채워주기 위해 <어느 수도원 정원에서>(1914) 이후 <페르시아의 시장에서>(1920), <중국 사원의 정원에서>(1923~25), <신비의 땅 이집트에서>(1931) 등 각각 다른 지역과 문화의 특성을 음악으로 표현한 4부작을 작곡하게 된다. 특히 앞서 소개한 '페르시아 시장에서(In a Persian Market)'는 "동양적 분위기를 서양 관객에게 각인시킨 대표작"으로 평가받으며 이후 많은 음악가와 평론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 연작 시리즈는 동양적이고 이국적 풍경을 관현악으로 감각적으로 잘 표현해 대중적 인기와 예술적 완성도를 동시에 갖춘 작품들로 인정받았다. 이 덕분에 케텔비는 "영국의 슈트라우스"라 칭송받으며 영국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케텔비를 '영국의 슈트라우스'라는 인기작곡가로 만들어 준 <어느 수도원 정원에서>(1914) 이후 <페르시아의 시장에서>(1920), <중국 사원의 정원에서>(1923~25), <신비의 땅 이집트에서>(1931) 연작 중 감상 못한 나머지 두 곡들도 함께 들어보자.

- (중국 사원의 정원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t6eNs6Hpo0M

- (신비의 땅 이집트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1G0biVs7Jms



♥ 향기로운 비


- 이어령


얼마나 큰 슬픔이었기에

너 지금 저 많은 빗방울이 되어

저리도 구슬피 내리는가


한강으로 흐를 만큼

황하를 채울 만큼

그리도 못 참을 슬픔이었더냐


창문을 닫아도 다시 걸어도

방안에 넘쳐나는 차가운 빗발


뭔가 말하고 싶어 덧문을 두드리는

둔한 목소리 그런데 이 무슨 일이냐


시든 나뭇잎들은

네 눈물로 살아나 파란 눈을 뜨고


못생긴 꽃들은 네 한숨으로 피어나

주체하지 못하는 즐거움으로 빛살을 짓는다.


얼마나 큰 기쁨으로 태어났으면

저리도 많은 빗방울들이

춤추는 캐스터네츠의 울림처럼


그리움에 목 타는 목을 적시고

미어지는 가슴을 다시 뛰게 하더니

어느새 황홀한 무지개로 오느냐


향기로운 비가 내린다

너 지금 거기에 살아있구나


표주박으로 은하의 강물을 떠서

잘 있다 잘 산다 말하려고


저 지금 그 많은 비가 되어

오늘 내 문지방을 적시는구나

비야 향기로운 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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