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

- 2025년 6월 24일 화요일 -

by 최용수

♡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 1897)

<피아노를 위한 16개의 왈츠, Op.39 / 16 Waltzes for solo piano, Op. 39>


https://youtu.be/UP6oS-9qLp4?si=dfYiQSzyGYceuH3Q (15번, 내림가 장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미국의 주식 시장 사이트를 둘러봤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란 의회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의결해도 이란이 이라크와 카타르의 미군 기지를 미사일로 공격해도 냉정한 주가(主價)는 지금 중동의 정세가 결코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 거라는 듯 평온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건 아마도 지난 토요일 이란 핵심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공습이 이란 군이나 민간인이 아닌 핵시설만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점,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여러 차례 하메네이의 정권 교체가 목표가 아니라고 명확히 밝힌 점 등이 이란내 강경파들의 목소리를 낮추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는 하메네이 정권에게 '확전 의도는 없다'는 신호를 주면서도, 핵개발 포기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한 셈이어서 미국으로서는 전략적 승리라고 볼 수도 있다.


아침에 빠르게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외국 뉴스 사이트를 살펴본 결과(언론, 특히 방송은 하메네이와 이란 정부의 결연한 인터뷰, 미군 기지 피습과 같은 강렬한 인터뷰와 자막를 반복해 편집하다보니 사태의 이면에 있는 더 중요한 흐름을 읽기도 전에 감정을 먼저 뒤흔드는 경향이 있다. 분명 객관적이고 신중한 분석 내용을 말하고 있어도 앞서 강력한 이미지의 메시지는 마음을 흥분하게 만들고 차분하게 뉴스를 보지 못하게 한다.) 주식시장은 이란이 자신들의 중요한 전략수단으로 내세우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조차 힘들 것이라고 판단하는 듯 하다. 하지만 뉴스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가져올 세계의 고통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이란에게도 아킬레스건같은 곳이다.


세계 원유의 20~25%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만약 이란이 봉쇄한다면 단기적으로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이 요동치며 특히 원유의 70%를 중동에서 수입하는 우리경제는 심각한 혼란에 빠질 수 있겠지만, 문제는 바로 그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서 이란이 현재 일일 약 170만 배럴의 석유를 수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액은 무려 670억 달러(우리 돈으로 약 90조원이나 된다)에 이르는데, 최대 수출국은 하필 이란과 거의 동맹수준의 우방 중국이다. 중국은 이란 원유의 90%를 수입한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중국은 수입 원유의 약 13%나 차지하는 값싼 이란 원유를 더 비싼 가격으로 다른 곳에서 사야한다. 중국은 이란 원유의 수입대금을 위안화로 결재하기때문에 핵 개발로 인한 경제 제재로 다른 나라와 교역이 막힌 이란은 그 돈으로 또 중국의 물자를 사서 쓸 수 밖에 없다. 중국은 저렴한 이란산 원유 수입 뿐만 아니라 자국에서 생산한 물품을 이란으로 수출까지 하며 정말 꿩먹고 알도 먹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호르무즈 해협을 이란이 봉쇄한다면 가뜩이나 경제난을 겪고 있는 중국으로서도 말리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게다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가뜩이나 장기침체로 어려운 이란의 경제가 압박받게 되면,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격보다 하메네이 정부는 이란 국민들의 저항이 더 위험해질 수 있다. 최종결단은 이란 지도부의 몫이지만,

부디 이란 정부가 앞뒤 못가리는 강경파에 의해 휘둘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핵을 포기하더라도 이란 정도의 인구와 국력이라면 원리주의 종교지도자들의 헛된 꿈과 다른 방식으로 중동에서 그들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상상력을 갖길 바란다.(이 글을 마무리할 무렵 미군 기지에 대한 이란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면 휴전 합의를 선언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다행히)


여전히 미래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큰 고비를 하나 넘겼다 싶었는지 갑자기 머리 한 켠에 이런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이 혼돈과 모순의 인간세계가 무너지지 않고 존재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그건 아마도 ... 우리가 이젠 너무 진부한 단어로 만들어버린 '사랑'이지 않을까?

끔찍한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목숨을 건 돌격에 나설 수 있는 건 내 옆을 지키는 전우들에 대한 사랑, '전우애' 때문이라고 한다. 죽음을 마주한 끔찍한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게 만드는 게 '사랑'이라니...


흔히 우리는 사랑이란 감정이 부모와 자식 사이 또는, 연인 사이, 아니면 친구사이에서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런 친숙하고 익숙한 관계일수록 '사랑'이란 감정은 '질투', '분노', '섭섭함'같은 다른 감정들에 뒤섞여 왜려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오히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 또는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다'라는 감정을 느꼈을 때는 뜻밖에도 내가 또는 그들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던 때가 훨씬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때때로 '사랑'은 내가 익숙한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아주 낯설고 생경한 상황에서 느끼기도 한다. 그건 놀라운 은총의 순간에 생길 수도 있고(극단적인 절망적 상황에서 극적으로 나를 구해 준 누군가를 만났을 때), TV나 라디오 또는 책을 통해서도 도무지 믿기 어려운 선행을 접하게 되면 눈물 흘리며 감동할 때가 그렇다.

하나 하나만 보면 인간은 모순투성이 그 자체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인간이 아니면 결코 느낄 수 없는 숭고한 사랑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정체성의 본질이고 또 그게 이 모순투성이 세상이 허물어지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바쁘게 움직이던 디지털 시계 숫자가 6시 30분에 맞춰지자 알람이 소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한다. 정신이 번쩍들어 오늘 아침 무슨 곡이 좋을 까 하다 바로 골랐다. 흔히 '사랑의 왈츠'라고 불리는 브람스의 16개 왈츠 모음곡 중 15번, 곡이 너무 사랑스러워 '사랑의 왈츠'란 부제가 붙은 곡이다. 들으면 너무나 익숙한 곡인데, 막상 작곡가가 누굴까 하고 생각해보면 은근히 맞추기 어려운 곡이다. 브람스의 왈츠라니... 하지만, 헝가리 무곡과 함께 가장 사랑받는 브람스의 작품 중 하나다.


왈츠는 19세기 유럽 사교계를 지배한 최고의 음악장르였는데, 그 인기가 예전 비틀즈의 음악이나 요즘의 아이돌 그룹의 K-pop 못지 않았다. 그 당시 최고의 왈츠 작곡가는 '왈츠의 황제'로 불리던 요한 스트라우스 1세와 그의 아들 요한 스트라우스 2세로 특히 요한 스트라우스 2세는 교향곡에 맞먹는 규모의 악기 편성과 섬세하고 웅장한 사운드의 곡들도 많이 남기며 왈츠 장르를 확장시켰다.(현재의 빈 필하모닉의 유명세는 이들 부자(父子)의 덕이 크다!!)


왈츠 음악의 성공은 산업혁명으로 부유해지던 유럽의 경제상황과 맞닿아 있었다. 귀족들의 무도회장에서 수시로 연주되던 왈츠곡들뿐만 아니라 윤택해진 부르조아지와 인텔리겐차들이 즐겨찾던 카페, 그리고 일반가정에서 연주할 수 있는 음악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 증가로 말미암아 당시 작곡가들은 왈츠와 녹턴, 무곡 등 다양한 소품곡들을 양산했기 때문이다.


1865년에 작곡된 브람스의 왈츠도 이런 시기에 탄생했다. 원곡은 피아노 연탄곡집(4손용)의 총 16곡인데, 1분~5분 정도의 길이의 짧고 단순하지만 경쾌하면서도 부드러운 선율들이 매력적이다. 특히 15번은 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선율로 일명 『사랑의 왈츠』라고도 불리며 결혼식장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클래식으로 등극했다. 브람스가 플라베리 자매를 위해 두손용으로 더 단순하게 고친 버전도 있으며 바이올린 곡으로도 편곡된 버전도 있다.(Ab major에서 A major로)


이 곡은 당시 유명한 음악 비평가 한슬릭에게 헌정되었는데, 그는 이 피아노 곡집에 대해 "착실하고 과묵한 브람스, 순수한 슈만의 제자로서, 북독일풍의 음악을 작곡하는 사람으로서, 프로테스탄트로서, 슈만처럼 비세속적인 사나이가 왈츠를 작곡했다"라고 썼다. 그의 비평처럼 이 곡은 브람스답지 않게 부드러운 빈 풍, 브람스 스스로는 "슈베르트다운 형태의 순진한 작은 왈츠"라고 할 정도로 브람스답지 않은 섬세하고 부드러움이 있다. 그래서 이 곡은 왈츠의 전신이었던 렌틀러 춤곡(3/8, 또는 3/4박자의 비교적 느린 템포의 독일-오스트리마의 민속춤)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7년 제작된, 덴마크 영화 <바베트의 만찬>의 무도회 장면에서 잠시 흘러나오는데, 이 영화의 예고 트레일러에 또 하필 이 음악이 깔려 있다. 먹방영상들이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 음식과 요리의 의미를 한 번 되새겨보면 어떨까 싶은 마음에 이 영화 트레일러에 깔린 왈츠도 소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fcIAtfaLOh8


■ 임윤찬보다 먼저 2017년 반 클라이번 콩쿨에서 우승한 선우예권의 피아노 연주로 들어보고

- https://www.youtube.com/watch?v=m-CgAb8Bjsc


■ 선우예권이 우승한 2017년 그해 서울시향의 현악 4중주 하임콰르텟의 연주로도 들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d_6k0n1ez68


■ 16곡의 왈츠 전곡은 요즘 잘 연주가 되지 않아서 전곡 녹음이 있는 유튜브 링크가 드문데 마침 한 곳이 있어 소개한다. 미국의 유명한 클래식 음반 전문회사 낙소스에서 독일 출신의 피아니스트 실케 소라 마티즈의 연주로 녹음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3OFjie837Sw



♡ 내 손과 발로 무엇을 할까


- 안도현


세끼 밥을 굶지 않고 나 혼자 등 따뜻하다고 행복한 게 아닙니다.

지붕에 비 안 새고 바람 들이치지 않는다고 평화로운 게 아닙니다.

내가 배 부를 때 누군가 허기져 굶고 있습니다.

내가 등 따뜻할 때 누군가 웅크리고 떨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발걸음 옮길 때 작은 벌레와 풀잎이 발 밑에서 죽어갑니다.

남의 허물을 일일이 가리키던 손가락과

남의 멱살을 무턱대고 잡아당기던 손아귀와

남의 얼굴을 함부러 치던 주먹을 거두어야 할 때입니다.

가진 것을 나누는게 사랑입니다.

사랑해야 우주가 따뜻해집니다.

내 손을 행복하게 써야 할 때입니다.

내 발을 평화롭게 써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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