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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Apr 10. 2021

의사에게 필요한 것

항암치료를 앞두고 있지만 병원을 나서는 발걸음이 참, 가벼웠다


수술을 잘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수술이 끝났다고 모든 여정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나에겐 이름만으로도 이가 떨리는 그것, '항암치료'가 남아있었다. 항암치료, 드라마에서 보면 굉장히 고통스러운 그야말로 병원 진료의 끝판왕 정도라고 내심 여기고 있던 그 치료를 내가, 받게 되었다. 우선은 그 공포 따위는 뒤에 느끼기로 하고 두 번째 수술까지 오는 동안 바닥을 쳤던 나의 정서적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항암치료는 통원을 해야 했기에 집 가까운 곳에서 받고 싶었다. 첫 번째 수술을 했던 병원의 주치의 교수님께실례를 무릅쓰고 다시 연락을 드렸다. 기꺼이 다른 병원에서의 진료를 추천해 주셔서였을까. 보통 의사선생님과의 진료를 보기 위해서는 병원 콜센터로 연락해 진료 스케줄을 잡는 것이 원칙이지만 무슨 용기가 나서인지 의사 선생님의 개인 휴대폰 번호로 연락을 드렸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3월에 교수님께 수술 받았던 환자 이소연이라고 합니다. 난소암과 자궁내막암 동시에 판정받았던 30대 환자요. 기억하실까요?


-아~ 네 기억하지요. 수술은 받으신 거죠?


-네, 교수님께서 신경써주신 덕분에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수술 받고 회복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항암치료는 교수님께신 병원에서 받을 수 있을까 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연락드립니다. 수술을 다른 병원에서 받아서...


-당연히 가능합니다. 다른 병원에서 수술 받으셨어도 항암은 댁 가까운 곳에서 받는 것이 환자분이 덜 힘듭니다. 항암약 쓰는 것은 대부분 매뉴얼대로 하기 때문에 병원이 달라도 큰 차이가 없어요. 언제든 편히 오시면 됩니다.


참 따뜻하고 진정성 있는 한 마디 한 마디였다. 의사들이 바쁜 건 익히 알고 있다. 특히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간 나이 든 교수들이 아니고서야 인턴, 레지던트, 젊은 교수들은 환자들을 보는 외래 진료외에도 수술이나 연구, 논문 등등 의학드라마만 봐도 알 수 있는 업무의 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늘 피곤해보이고 불친절해도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이 의사선생님은 늘 진심이었다. 본인이 피곤해도 환자를 생각해주는 마음과 노력이 진심으로 전해졌다. 의사와 환자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으로서 교류되었던 따뜻한 정서가 내 마음에 큰 믿음이 되어 쌓이기 시작했다. 되돌아 생각하면 난 이 의사 선생님을 참 많이 믿고 의지했던 것 같다.


진료 일정을 정식으로 잡고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필요한 서류들을 발급받았다. 수술을 해주신 교수님도 항암치료를 다른 병원에서 받는 나의 상황을 잘 이해해주셨다. 이 또한 참으로 감사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수술을 이런 좋은 의사선생님들에게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참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발급받은 서류를 가지고 의사선생님을 다시 만난 날, 혈색이 좋아진 나를 보고 참 반가워하셨다. 앞으로의 항암 치료 일정과 중간 중간 받아야 하는 검사들에 대해 설명하고 BRACA 유전자 검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의 질병인 난소암의 경우 발병의 원인에 유전적인 영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추후 쓰게 될 항암약의 종류도 차이가 생긴다고 했다. 또한 유전적인 영향이 있을 경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가족들 역시 미리 미리 검진을 한다거나 검사를 받는 등의 대비도 해야한다고 했다. 유전자 검사의 경우 피검사를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크게 어렵진 않고 별도의 비용이 발생하지만 '중증적용'이 되기 때문에 큰 비용은 들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주었다. 유전자 검사는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을 했을 때 함께 받기로 했다. 



항암치료 일정은 수술 이후 약 한 달이 지난 5월 마지막 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2박 3일 입원을 해서 진행할 것이고 3주에 한 번씩 진행한다고 했다. 치료를 위해 쓰는 약은 탁솔 계열이라 불리는 '카보플라틴, 파클리탁셀' 라는 항암제이고 '케모포트'라는 500원짜리 동전만한 장치를 삽입하는 시술 후 그 포트를 통해 주사를 주입하는 형태로 항암을 진행한다고 했다. 

사실 처음 듣는 용어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네네, 대답은 하고 있었지만 애써 눌러놓고 있었던 병원진료 끝판왕 '항암치료'에 대한 공포가 이제 슬슬 올라오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서 보면 항암치료 받으면 얼굴이 막 시커매지고 맨날 토하고 머리도 다 빠지고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하던데, 저도 그럴까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입 밖까지 나오지는 않았다. 다만,


-머리도 빠지겠죠?

-네, 탈모는 진행될 겁니다.


이 질문이 다였다. 아 하나 더,


-환자분, 수술 이전에 술은 잘 드셨나요?

-수술 이후엔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아프기 전엔 잘 마시는 편이었습니다. 그게 관계가 있나요?


이 상황에 술을 잘 마셨었냐는 질문이 왜 나올까, 의아했다. 잠시 폭소가 나올 뻔도 했다. 질문의 요지는 이것이었다. 술을 잘 마시던 사람들은 항암 주사에서 나는 그 특유의 냄새로 인해 구토가 올라오는 것을 어느 정도 잘 참을 수 있단다. 숙취로 단련된 강한 정신력이랄까. 문득 턱 밑까지 차올랐던 공포가 어느 정도 누그러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모로 센스있는 의사선생님이라 생각했다. 아무 걱정 마시고 푹 쉬다가 오시라는 그 말에 정말, 걱정이 사그러들었다. 이 선생님께 치료를 받으면 정말 완치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강하게 생겼다. 항암치료를 앞두고 있지만 병원을 나서는 발걸음이 참, 가벼웠다. 




의사에게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진료는 훌륭한 처방도, 훌륭한 수술도 아닌 진심어린 공감과 이해라는 것, 그것을 느끼자 나는 이미 절반의 치료를 마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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