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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울면서 빌었다

by 빈센트 Mar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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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부산에서 암 수술로 유명한 대학병원이었다. 이 대학병원은 어머니가 같은 암 수술을 받으셨던 곳이기도 하다. 지역에서 암 수술을 잘하시는 유명한 교수님이 계신 곳이기도 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아버지는 어떻게든 가장 빠른 진료 날짜를 잡으려고 애쓰셨다.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피검사와 초음파, 그리고 몇 가지 검사를 받느라 바삐 움직였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평소와 달리 아버지가 말이 많으셨다. 온갖 사소한 이야기를 다 꺼내셨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이다. 무뚝뚝한 분이시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말을 많이 안하시는 분이셨다. 부자 간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전화를 잘 안했다.


아마도 그가 갑자기 이렇게 수다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서가 아닐까. 내 마음을 달래주려 애쓰시는 것 같기도 했고, 혹은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려고 하시는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검사 결과가 나왔고, 드디어 교수님을 만났다. 소문대로 백발이 어울리는 경험이 많아 보이는 베테랑 의사 선생님 같았다. 차분하고 느린 말투로 검사 결과를 설명해 주셨다.


암 4기입니다.


우선 암이 확실하다고 했다. 진행 상황만 보면 4기에 해당되지만, 법적으로 나이가 20대이기 때문에 암 진행 상황과 관계없이 서류 상으로는 2기로 분류될 것이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그리고 더 무서운 소식이 이어졌다. 이미 왼쪽 성대 신경이 완전히 손상되어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쉰 목소리라도 나오는 이유는 오른쪽 성대 신경이 조금이나마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마저도 수술 중에 손상되면 목소리를 완전히 잃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 하셨다. 최악의 경우에는 숨 쉬는 것에 어려움이 생겨 목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머리가 멍해졌다. 사람이 너무 충격적인 일을 겪게 되면 슬픔이나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이 멍해진다. 어떤 감정과 생각을 떠올려야 할 지 조차도 모르게 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수술 날짜를 3개월 뒤에나 잡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워낙 인기가 많은 분이라 수술 일정이 이미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아버지는 갑자기 교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으셨다.


제발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


전형적인 부산 경상도 남자이신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제발 우리 아들 좀 살려달라" 며 울먹이시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대쪽같던 사람, 어떠한 풍파에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거암 같은 사람. 아버지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평생을 깎아온 자존심도, 강인한 모습도 모두 내려놓은 채, 아버지는 오직 내 목숨을 걱정하며 흐느끼셨다.


그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 보기가 너무 힘들어서,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그게 아버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당황하시던 교수님은 황급히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며, 최대한 일정을 조정해보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일단 진료실을 나왔다.


진료실을 나온 뒤, 그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옷소매로 훔치셨고, 나도 무거운 침묵 속에 한 발자국씩 밖으로 걸어나왔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었던 만큼, 아버지께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것저것 필요한 등록 절차를 마쳤다. 이제 나는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중증 암 환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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