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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Sep 23. 2022

가을 일상

작고 소중해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나의 가을

밤을 따고 단호박을 찌고 홍옥을 와삭 베어 먹는다. 구운 밤은 얼마 전 직접 따온 밤이다. 밤이 익고 도토리가 떨어지는 계절. 호지차와 단호박, 사과, 땅콩. 듣기만 해도 묵직하고 구수한 아이들로 케이크와 과자를 만들고 따스운 수프를 끓인다. 밤이 생겼으니 약밥 만들어야지. 약밥 만들 찹쌀을 사 와 씻어 불려 놓고 나니 가을에도 참 잘 먹는다 싶다.


오늘은 간만에 여유롭게 아침을 보냈다. 수강생분이 주신 맛있는 빵을 구웠고 가지와 당근, 단호박과 함께 먹었다. 요즘은 하늘, 나무 할 거 없이 온통 가을색이다. 그릇에도 가을이 담겼다.


조카가 오는 날은 아침부터 설렌다. 자주 봐도  보고 싶은  조카지:) 며칠  본새에 조카는 옹알이가 부쩍 늘었다.  생명에겐 성대를 울려 소리를 내는 것조차 당연하지 않다. 음마- 으바바- 하는 소리에 얼마의 노력이 들었을까 싶어 기특하고  기특하다. 아가는 쑥쑥 큰다. 배밀이에서 기는 걸로, 기는 것에서 걷는 걸로. 어떤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부지런히 자란다. 지난 계절 복숭아는  먹었는데 이번 계절 배와 포도, 귤과 사과는 먹는다.  신경을 동원해 세상의 여러 가지 맛들을 알아갈 걸 생각하니 이모는 이것도 기특하고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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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계절에서 다시 추운 계절로 간다. 해가 짧아지고 옷소매가 길어지고, 입에서 춥다는 소리가 나오면 조금은 마음이 급하다. 일 년이 거의 다 지나가는데 나는 올해 뭘 했나, 잘 살았나, 바르게 나아가고 있나- 따위의 생각이 때때로 치고 올라오기 때문이다. 잘 사는 건 무엇인가? 남 들으면 유난스럽다 할 질문들이 가슴에 엉겨있는 걸 보니 가을이긴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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