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소중해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나의 가을
밤을 따고 단호박을 찌고 홍옥을 와삭 베어 먹는다. 구운 밤은 얼마 전 직접 따온 밤이다. 밤이 익고 도토리가 떨어지는 계절. 호지차와 단호박, 사과, 땅콩. 듣기만 해도 묵직하고 구수한 아이들로 케이크와 과자를 만들고 따스운 수프를 끓인다. 밤이 생겼으니 약밥 만들어야지. 약밥 만들 찹쌀을 사 와 씻어 불려 놓고 나니 가을에도 참 잘 먹는다 싶다.
오늘은 간만에 여유롭게 아침을 보냈다. 수강생분이 주신 맛있는 빵을 구웠고 가지와 당근, 단호박과 함께 먹었다. 요즘은 하늘, 나무 할 거 없이 온통 가을색이다. 그릇에도 가을이 담겼다.
조카가 오는 날은 아침부터 설렌다. 자주 봐도 또 보고 싶은 게 조카지:) 며칠 못 본새에 조카는 옹알이가 부쩍 늘었다. 새 생명에겐 성대를 울려 소리를 내는 것조차 당연하지 않다. 음마- 으바바- 하는 소리에 얼마의 노력이 들었을까 싶어 기특하고 또 기특하다. 아가는 쑥쑥 큰다. 배밀이에서 기는 걸로, 기는 것에서 걷는 걸로. 어떤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부지런히 자란다. 지난 계절 복숭아는 못 먹었는데 이번 계절 배와 포도, 귤과 사과는 먹는다. 온 신경을 동원해 세상의 여러 가지 맛들을 알아갈 걸 생각하니 이모는 이것도 기특하고 참 예쁘다.
-
추운 계절에서 다시 추운 계절로 간다. 해가 짧아지고 옷소매가 길어지고, 입에서 춥다는 소리가 나오면 조금은 마음이 급하다. 일 년이 거의 다 지나가는데 나는 올해 뭘 했나, 잘 살았나, 바르게 나아가고 있나- 따위의 생각이 때때로 치고 올라오기 때문이다. 잘 사는 건 무엇인가? 남 들으면 유난스럽다 할 질문들이 가슴에 엉겨있는 걸 보니 가을이긴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