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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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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Apr 20. 2024

오랜 꿈을 이루다_Stone barns 투어

미국생활 246일 차



7-8년 전쯤 ‘제3의 식탁’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농장과 식당이 함께 있는 Stone barns라는 곳을 운영하는 사람이 쓴 책인데,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면서 인간도 더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 위한 식단에 관한 책이었다. 그리고 Stone barns을 그런 식단을 실험하는 곳으로 소개하고 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예를 들어 돼지고기 요리는 그 농장 내에서 자란 도토리를 먹은 돼지를 길러서 직접 잡아서 낸다고 했다. 그렇게 내는 식재료 하나하나는 더 귀하게 쓸 수밖에 없고 (자원을 아끼고), 더 맛있단다.


지속가능한 음식에 관심 있는 사람리라면 추천!


그때부터 쭉 이곳을 와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다. 출장으로 몇 번 뉴욕을 왔지만, 뉴욕에서도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을 올만한 여유는 없었다. 이번에도 오자마자 찾아봤는데, 내가 가고 싶은 레스토랑은 노키즈 존이라 (카페는 아이도 갈 수 있다.) 뉴욕에서 따로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상황에서 오기 어려웠다. 그래서 엄마가 오면 엄마랑 같이 오거나 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푸드 시스템 수업에서 현장학습으로 왔다! 푸드 시스템 첫 수업 때 이 현장 학습에 대한 안내를 받고는, 이 수업은 절대 드롭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하루하루를 손꼽아 왔고 오늘 드디어 방문했다!


밑에 깃발이 무지막지하게 꽂힌 곳이 맨하탄이고 빨간 표시점이 농장


이곳은 록펠러 가문에서 가족 농장으로 쓰던 곳으로 아직도 그쪽의 후원을 받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여타 농장들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이 직전에 현장학습을 갔던 Glynwood의 경우에도 여타 농장과 좀 다르긴 했지만 그래도 (교육 시스템을 갖춘 깔끔한) 농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는 여유로움이 철철 흘렀다. 입구부터 엄청 멋진 석조 건물들이 즐비했고, 여유롭기에 가능해 보이는 여러 가지 실험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입구 ㄷㄷ


우선 작물들이 엄청 다양했다. 바나나 나 한국 밤나무도 기르고 있었고, 유채와 비슷한 작물도 있었다. 식당에서 사용될 수 있고 이곳에서 자랄 수 있는 다양한 작물들을 길러보고 있다고 했다. 수익성보다는 이상을 추구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린하우스 안에는 콩도 있었는데, 그린하우스 안에서 키우기에는 수익성이 낮지만 화학 비료를 쓰지 않고 땅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 꾸준히 심는다고 했다. 농장 전체를 하나의 생명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농장에서는 보통 따로 구매하는 모종도 직접 기른다고 한다.


그린하우스라기보다 엄청 큰 농업 실험실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른 농장들과 달리 다른 이들을 도울 여유를 보였다. 벌도 기르고 있었는데, 주변에 야생 벌이 많아서 딱히 수분을 위해 기를 필요는 없지만 학계와 협력할 때 연구 지원을 위해 기른다고 했다. 농장 주변은 꽤 넓은 주립 공원이었는데, 입지 좋게 주립 공원 바로 옆에 위치했나 싶었더니 그게 아니고 원래 농장 땅을 주에 기부해서 주립 공원이 되었다고 한다. 거기서 소도 기르는데, 초지가 워낙 좋아서 (뉴욕주는 초지가 워낙 좋아서 유제품이 맛있고, 그래서 Dairy farm이 많다고 한다.) 100% 방목으로 키우긴 하지만 딱 필요한 만큼만 기르고 있다고 했다.


지나갈 때 좀 쫄았다…


이렇게 여유가 넘치는 농장이란 상상한 적도 없어서 굉장히 낯설었다. 여유가 넘치는 만큼 굉장히 이상적이었는데, 약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딘가는 이런 농장과 이런 사람들이 있어야 새로운 것들이 시작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간단하게나마 이곳의 음식을 체험해볼 수도 있었다. 우선은 점심. 도착하자마자 이곳의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조금씩 담겨 나온 음식들이 모두 독특하고 맛있었다. 겨우 내 묵혀서 당도가 높아진 파스닙을 익혀 레몬 소스에 낸 것도 맛이 진해서 맛있었고, 토르티야에 그날 아침 낳은 계란을 수란으로 만들고 홀스래디쉬에 절인 다진 양파/ 당근/ 브로콜리의 일종과 함께 낸 요리도 아주 신선하고 좋았다. 발아시킨 렌틸로 만든 후무스 비슷한 것에 100% 통밀 빵을 찍어 먹는 것도 별미였다. ‘제3의 식탁’에서 통밀이 맛이 없는 이유는 좋지 않은 토양에서 자라서 그렇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진짜 100% 통밀 빵인데 쿰쿰한 냄새도 별로 없고 정말 맛있었다.


수란도 진짜 딱 먹어보면 신선한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비린내가 하나도 없다.


투어를 하는 중간에 레스토랑에서 낸 돼지고기 소시지 바비큐와 페퍼 피클을 맛볼 기회도 있었다. 직화로 구운 돼지고기 소시지는 정말 독특하고 맛있었는데, 돼지고기는 3-40%가 쓰였고 나머지는 귀리가 쓰였단다. 미국 애들은 낯설어했지만 요리사가 생각보다 많은 문화권에서 소시지에 곡물을 섞고 있고 그 방법을 차용해 왔다고 설명했다. (쌀을 넣어 만든 순대가 생각났다.) 귀리는 소시지에 잘 어울리도록, 보통의 귀리보다 지방 함량이 2배가 높은 품종을 찾아 썼다고 했다. 오독오독 귀리 씹히는 맛도 있고 기름진 귀리가 고기랑 잘 어울리는 데다 직화의 맛이 어우러져 좋았다.


동글동글 귀리 알갱이가 보이는 소시지


더 좋았던 건 페퍼 피클이었다. 하바나다 페퍼라고, 아주 매운 걸로 유명한 하바네로 페퍼를 안 맵게 개량한 품종을 쓴 피클이었다. 맵지 않은데 매콤한 고추의 상큼함과 개운함만 남아서 최적의 피클 재료가 되었다. 진짜 사다 놓고 먹고 싶은데, 인터넷에 찾아보니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여기도 샵이 있는 것 같은데, 투어 하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서 못 갔다. 힝


이건 진짜 재놓고 먹고 싶다


와보니 이곳이 더 궁금해졌다. 이곳 직원이, 여기서 일한다는 건 아주 약간의 관리만 되고 있는 (좋은 의미의) 카오스 속에서 유연하게 해 나가는 거라고 했다. 레스토랑도 메뉴가 정해져 있지 않고, 기본적인 90가지 play를 가지고 그날 그날 수급 가능한 최상의 재료를 최상의 방법으로 요리한다고 했다. (레시피가 아니고 플레이 라고 하는 이유는 워낙 재료가 가변적이라 그런 것 같다. 예를 들어 사이드로 시금치를 쓸 수도 있고 청경채를 쓸 수도 있고 그런.) 원래는 엄마와 레스토랑을 다시 올 계획이었는데, 날 좋은 날 딸내미와도 한번 카페라도 와야겠다. 우리나라도 이런 엄청나게 여유가 넘치는 이상적이고 실험적인 농장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카페 안도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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