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271일 차
드디어 그날이 왔다. 스페인어 플레이데이트의 날. 요새 딸내미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 중 한 명이 중남미계에 엄마는 아예 영어를 못하는데, 딸내미가 이 친구를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전에도 한번 플레이데이트를 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남편이 데리고 나갔고 얘기를 나누긴 다소 산만한 놀이터에서 만난 거였다. 하지만 이 좁은 집에서는 피할 곳이 없다… 여기서는 플레이데이트를 할 때 아이만 두고 가는 경우도 있으니,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같이 왔다.
스페인어를 배운 적이 있긴 하다. 1년 조금 넘게 공부했고, B1 취득을 목표로 했었다. 그래도 그땐 여행 스페인어 정도는 됐는데, 손 놓은 지 10년이 넘어서 이젠 불가능하다. 플레이데이트를 잡는 것도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았다.
애들이랑 섞여서 어떻게든 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오늘따라 아이들은 손도 안 타고 자기들끼리 너무나도 알아서 잘 놀았다. ㅋㅋㅋ 그 집 엄마와 테이블에 나란히 마주 보고 앉았을 때 그 막막함이란 ㅎㅎㅎ
그런데 놀랍게도 잘 있었다. ㅋㅋㅋ 한 시간 반을 수다를 떨었다. 심지어 ‘학생’이란 단어도 생각이 안 나서 ‘나는 컬럼비아 대학에 간다’라고 얘기하고, 대여섯 번 구글 번역기를 동원하면서 ㅋㅋ 기본적인 소개(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온 지 8년 됐고, 첫째는 BTS의 팬이고, 방학 때는 애들과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돌아간다 등등)를 나누고, 서로 공통점에 대한 얘기를 하고 (남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데, 우리는 애 교육을 생각했을 때 여기가 좋을 것 같다.), 서로의 음식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소개를 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그 집에 저녁 식사 초대도 받았다. ㅋㅋㅋ
플레이데이트를 하는 동안 자유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남편은 내가 그 엄마랑 수다 떨고 있는 모습은 보고 ‘이 여자는 대체 뭐지’라고 생각했단다. 내가 생각해도 스페인어 플레이데이트를 해내고 말아서 뿌듯하다. ㅋㅋ 다음에 그 집에 갈 때까지 스페인어를 조금이라도 다시 들춰봐야겠다. ㅎㅎ 진짜 이런 게 뉴욕 사는 잔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