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주차] 셀프서비스, 결혼식 뷔페

음식임신일기

by 솜대리




임신을 하니 아이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퇴근길에 이어폰을 끼고 앞만 보고 걸었다면 요즘에는 아파트 놀이터에 유모차 타고 놀러 나온 아이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예전에는 음식점에서 음식과 일행에만 집중했다면 요즘에는 옆 테이블의 아이들을 자꾸 힐끔거리게 된다. 아이들을 보는 마음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냥 '귀엽네' 하고 지나갔을 것을 요즘엔 괜히 말이라도 한 번 붙여보고 싶어 진다. 가까운 친구 중에 아이를 낳은 사람이 있다면 자주 구경이라도 갔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그러던 와중에 기회가 생겼다. 남편과 함께 간 남편 친구 결혼식에 또 다른 친구가 아기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생후 6개월 된 남자 아기를 남편 친구 혼자서 유모차에 태우고 왔다. 임신하고 아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너무너무 귀여웠다. 피부는 뽀송뽀송하고, 눈도 똘망똘망 반짝반짝했다. 딱히 멋을 부리고 온 것도 아닌데, 그 자체로 귀여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결혼식이 아닌 아기를 보러 온 듯 아기한테만 시선이 갔다.


1.jpg 결혼식을 보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아기한테만 눈이 갔다.


귀여워서 꼬물거리는 손도 만져보고 얼굴도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아기가 찡얼거리기 시작했다. 낯을 가린다고 했다. 처음에는 정신없어 가만있었다가, 정신이 슬슬 든 모양이었다. 우리 모두 아기 얼굴을 외면하고 나서야 좀 진정이 되어 결혼식장에 들어가니 배고픈지 졸린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찡얼거렸다. 결국 아기 아빠는 아기를 데리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결혼식장에 오긴 왔는데, 식 구경도 기념 촬영도 하지 못했다. 내내 결혼식장 입구에 서서 아기를 달래다가 식이 끝났다. 아 이게 현실인 모양이었다. 안타까운 동시에 걱정이 되었다. 이건 머지않아 아이를 낳으면 남편과 나에게 닥칠 일이었다.


2.jpg 남편 품에 잠깐 안긴 아기, 울기 직전이다. 불편한 자세는 둘째치고, '이 아저씨 도대체 누구야?' 하는 표정이다.


곧이어 피로연장에서 우리에게 닥칠 미래를 잠깐이나마 체험해볼 수 있었다. 결혼식 뷔페 덕분이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결혼식은 대부분이 뷔페식이다. 뷔페식은 여러 가지로 장점이 많다. 한식, 중식, 양식 등 다양한 음식이 준비되어 입맛에 관계없이 즐길 수 있으며, 결혼식장 입장에서도 셀프서비스로 운영되니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다. 요즘은 자리에 앉아있으면 코스로 음식을 대접하는 곳들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피로연의 절대 대다수는 뷔페식이다. 외국 결혼식에서도 뷔페식 피로연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만큼 많지는 않다. 우리나라에 뷔페식 피로연장이 이렇게 많아진 것은 우리나라 경제 성장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3.jpg 결혼식 뷔페 모습 (출처: 아펠가모 홈페이지)


어려웠던 70년대, 정부는 가정의례준칙을 정해 일반인들의 근검절약을 강조했다. 이 준칙에는 결혼식이 끝난 후 음식 대접을 금지하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었다. 결혼식을 하면 큰 잔치를 벌여 음식을 대접하던 사람들에게 이는 상당히 급진적인 정책이었다. 직접적으로 음식 대접을 못하게 된 사람들은 대신 결혼식장 주변의 식당 식권을 몰래 나누어 주는 등의 방법으로 단속을 피해 가며 식사 대접을 했다. 80년대 드디어 이 규칙이 없어지면서, 결혼식장에서는 수익을 늘리기 위해 결혼식장 안에서 식사 대접을 할 궁리를 했다. 너도나도 결혼식장 내에 피로연장을 증축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많이 성장하긴 했으나 여전히 질보다는 양이 중요했고, 음식 맛과 서비스보다는 효율성이 중요했다. 푸짐하고 효율적인 뷔페식이 딱이었다. 역시나, 선도적으로 지은 뷔페식 피로연장들이 인기를 끌었다. 너도나도 서둘러 피로연장을 짓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고민을 할 새가 없었을 것이다. 새로 지은 대부분의 피로연장은 뷔페식으로 만들어졌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결혼식 음식 하면 뷔페식을 떠올리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4.jpg 7~80년대 결혼식은 가정의례준칙을 준수해야만 했다. (출처: 경향신문)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 뷔페식이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으니 셀프서비스라는 점이다. 하객이 직접 음식이 차려진 곳에 가서 음식을 떠 와야 한다. 게다가 대개 결혼식이 끝나고 사람이 몰리면서 음식 앞에는 길게 줄이 늘어선다. 보통 때야 문제 될 게 없지만, 남편 친구처럼 아기를 동반한 경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유모차를 끌고 그 복잡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한 손으로 유모차를 밀며 한 손으로 음식을 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남편과 내가 나섰다. 용감하게도 잠깐 아이를 봐주기로 자처했다. 사실 어려울 건 없어 보였다. 아가를 태운 유모차를 우리 옆에 세워두고, 남편 친구가 서둘러 음식을 담아오는 새에 지켜보기만 하면 됐다. 이제 아기도 우리가 익숙해져서 우리를 봐도 울지 않았고, 이유를 알 수 없던 찡얼거림도 멈춘 상태였다.


그야말로 용감한 자처였다. 남편 친구가 자리를 뜨자마자 그 사실을 깨달았다. 5분이 마치 한 시간 같이 느껴졌다. 남편 친구가 자리를 뜬 순간부터 남편과 나는 얼음이 되었다. 둘 다 긴장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남편은 아기가 우리 얼굴을 보면 다시 울 수도 있으니 보지 않아야 한다며 고개를 돌렸고, 나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으면서도 아기한테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이 유모차 근처만 지나가도 혹시 유모차를 건드릴까 몸이 뻣뻣해졌고, 아기가 몸만 뒤척여도 울려는 신호인가 긴장했다. 안보는 척하면서 계속 곁눈으로 아기를 살피느라 눈이 돌아갈 것 같았다. 아기를 보지 말라던 남편도 긴장하며 주변을 살피는 건 마찬가지였다. 친구가 빠른 걸음으로 대강 음식을 담아 금세 돌아왔지만 이미 우리는 지친 후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할 필요 없었는데 말이다.


아무리 잠시 잠깐이라도 옆에서 지켜보는 것과 직접 보는 건 천지 차이였다. 뭘 한 것도 없는데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랑 잠시만 놀아주는 것과 내 아이를 맡아서 노는 건 천지차이라고 하니, 내 아이를 보는 건 얼마나 힘들지 상상도 안 간다. 아이를 본 게 처음이라 그렇지 나중엔 나아질 거라 스스로 위안을 하려 했지만 딱히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건 매일 도전의 연속이라고 하지 않는가? 둘째, 셋째를 키우는 게 아닌 이상에야 매일매일이 새롭고 어렵고 당황스러운 게 아닐까? 나,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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