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주차] 어우러짐의 매력, 콥 샐러드

음식임신일기

by 솜대리



내 결혼식에 시키지도 않은 들러리를 선 친구들이 있다. 고등학교 친구들인데, 그 친구 중 마지막 남은 미혼자가 드디어 결혼을 한다. 나 자신도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그 친구가 결혼을 하는 게 믿기지 않았다. 결혼하는 친구는 예전부터 유달리 동생 같았다. 가끔은 머리를 감고 샴푸 거품을 남긴 채로 학교에 왔고, 선배들 수능 응원을 하러 가기로 한 날에는 아침 7시가 아닌 저녁 7시에 학교 앞에 가선 어리둥절하며 연락이 오기도 했다. 그래서 이 친구가 남자 친구를 만나고, 어학연수를 가고, 회사에 갈 때 항상 나와 다른 친구들은 걱정이 앞섰다. 정작 이 친구는 그 때마다 잘 해냈지만,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결혼이라니, 기분이 이상할 수 밖에 없었다.



모임의 장소는 강남, 임신한 나에 대한 배려였다. 나를 뺀 다른 친구들은 모두 경기도 광교에 산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각기 다른 도시에서 살았지만, 인연이 되려고 그러는지 모두 광교로 모이게 되었다. 나도 친정이 광교랑 멀지 않아 종종 광교에서 보았다. 이번에도 혼자 서울에 사는 내가 광교로 가는게 합리적이었겠지만, 친구들은 무리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결국 약속장소는 서울. 안 그래도 동생 같던 친구가 결혼하는 기분이 이상했는데 배려까지 받으니 더더욱 묘한 느낌이 들었다.



메뉴도 임산부 위주로 정해졌다. 미국 음식점에 가서 치킨 와플과 파스타 두 가지, 콥 샐러드를 먹었다. 신부는 좀 더 가벼운 음식이 나았을 테지만. 한창 다시 입맛이 돌기 시작한데다 친구들과 같이 먹으니 더 입맛이 돌아 신나게 먹었다. 그 중에도 가장 맛있게 먹은 건 콥 샐러드.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이 메뉴가 가장 먼저 밑바닥을 보였다. 이 곳의 콥 샐러드는 깍둑 썰기한 연어, 아보카도, 치즈 등을 프렌치드레싱(오일과 식초를 섞은 새콤한 하얀색 드레싱)에 버무린 것이었다. 드레싱의 새콤한 맛이 입맛을 자극하고 고소함이 모든 재료를 어우르는 가운데 씹다 보면 재료 각각의 맛과 식감이 드러났다.


청첩장 모임에서의 콥 샐러드


요즘 콥 샐러드는 푸짐한 비주얼과 새콤달콤해 호불호 없는 맛으로 인기가 많다. 샐러드를 파는 곳이라면 대부분 콥 샐러드를 팔고 있다. 레스토랑 입장에서도 콥 샐러드는 효자 메뉴인데, 매출이 좋을 뿐 아니라 재료가 다른 요리에도 자주 사용되는 것들로 구성되어 재고 관리에도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콥 샐러드는 1937년 로버트 콥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개발되었다. 너무 바빠 한밤 중까지 저녁을 먹지 못해 남은 재료를 모두 깍둑 썰어 먹었는데, 이 음식이 의외로 괜찮아 손님들에게도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콥 샐러드 (사진 출처: Simply recipes)


콥 샐러드에 흔히 들어가는 재료는 4가지 샐러드 야채(아이스버그 양상추, 물냉이, 엔다이브, 로메인)와 베이컨, 닭가슴살, 토마토, 아보카도 등이다. 하지만 그 시작부터가 주방에서 남은 재료를 모아 만든 샐러드인 만큼 가게마다 사용되는 재료는 제각각이다. 웬만큼 다른 재료를 넣어도 무방하다. 재료를 모두 깍둑썰기 해서 모양을 맞추고, 강한 맛의 드레싱이 재료의 맛을 어우러 주기 때문이다.



그런 콥 샐러드는 이날 모인 친구들과 비슷한 점이 많아 보인다. 우리는 참 다르다. 성격도, 직업도, 취미도, 취향도 모두 다르다. 같이 쇼핑을 하면 관심 있는 가게부터가 아예 다르고, 고민 상담을 해도 해답이 다 다르다. 콥 샐러드에 들어간 서로 다른 재료처럼 우리는 제각각의 생각으로 제각각의 삶을 살고 있다. 사회에서였으면 서로 만나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어찌어찌 인연이 닿아 만났더라도 어울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의 공통점이라고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는 점,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학년 첫날 자리가 정해지기 전 몇 시간 같이 앉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의 인연인 탓일까, 서로 어지간히 다르지만 그 어지간히 다른 재미로 지금까지 잘 버무려져 있다.


이 모임에서 임신한 건 내가 처음이라 친구들은 참 별스럽게 유난을 떤다. 강남역 복잡하다고 내 허리를 감싸안고 에스코트를 하질 않나, 결혼식 가기 전에 태우러 온다질 않나. 워낙 오랜 친구들이라 내외하지 않는 사이인데,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니 내가 다 어색할 지경이지만, 그 기분이 나쁘진 않다.



친구들은 다들 당장 임신 계획이 없다. 아이를 낳고 나면 아무래도 아이 나이가 비슷한 친구들끼리 어울리게 된다고 해서 괜히 조바심이 났었다. 친구들을 독촉하기도 했고, 내가 조금 더 늦출걸 했나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애초에 다름이 익숙한 친구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다름을 원동력으로 잘 지내온 만큼, 앞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막연하게 희망적인 생각을 해보았다.



한참을 떠들고 놀던 중 한 친구가 배를 만져봐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안 친한 회사 사람들도 마음대로 만지는데 별걸 다 물어본다며 웃으며 만져보라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배가 '꿀룩'했다. 배가 고프거나 소화가 돼서 나는 '꾸르륵'이 아니었다. 뱃 속에서 내가 아닌 뭔가가 살아 움직이는 '꿀룩'이었다. 태동이었다. 곧 태동이 느껴질 때라고 해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태동을 느꼈다. 아기도 이모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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