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임신일기
감기에 '또' 걸렸다. 지난번 감기가 나은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콧물이 줄줄 흘렀다. 코를 계속 풀어 그런지 머리도 아프고, 기침도 멈추지 않는다.
평소 같으면 약을 안 먹어도 일주일이면 낫는데 이번엔 2주를 가고 있다. 휴가를 내고 쉬어봐도 차도가 없어 휴가도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렇게 금방 다시 찾아올 거면 좀 약하게라도 오지 감기도 해도 너무 한다.
감기에 걸린 지 일주일이 넘어가자 남편은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엄두가 안 났다. 임산부도 아프면 약을 먹는다고 하던데 아무리 그래도 겁이 났다. 그런데 2주가 되어가니 이 것도 겁이 난다. 계속 아픈 게 더 해로울지, 약을 먹는 게 해로울지 알 수가 없다. 남편이 출근한 일요일, 혼자 끙끙 앓고 끙끙 고민하다 결국 병원으로 향했다. 전날 남편이 권했을 때 갔더라면 혼자 가지 않아도 되었을 테고, 하루만 더 기다리면 모든 병원이 여는 월요일이 되겠지만, 굳이 일요일에 혼자 병원으로 향했다. 전날까지는 약 먹기가 너무 겁이 나서 못 갔다면, 오늘은 하루라도 더 아픈 것이 견딜 수 없이 불안했다.
다행히 다니는 산부인과가 일요일에도 열었다. 산부인과라 아기 초음파까지 함께 볼 수 있었다. 감기 때문에 간 거지만 아기가 가장 신경 쓰였다. 감기 진료를 보고 초음파를 봤지만, 초음파를 보고 아기가 잘 움직이는 걸 보고 나서야 의사 선생님께 질문을 쏟아냈다. 장황하게 얘기했지만 궁금한 건 약 먹어도 아기한테 영향이 없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산모 컨디션이 너무 안 좋은 것도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며 우리 그렇게 나쁜 사람이니 믿고 먹으라며 웃었다.
그 말을 듣고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쉽게 안심이 될 것 같았음 이렇게 늦게 병원에 오지도 않았을 것 같다. 평소에는 모르는 분야는 전문가의 말을 믿자는 주의지만 이번에는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의사 친구한테 물어보고 약에 대해 인터넷에 찾아봤다. 답은 다들 똑같았다. '약을 먹어서 이로울 건 없겠지만, 효용이 위험보다 높다고 판단될 때는 먹는다.' 곧 아프면 먹어라였다. 그런데 정말 나 왜 이럴까. 이 말을 듣고도 '나는 효용도 위험도 알 수 없으니 판단할 수 없어.'하고 고개를 저었다.
약을 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찬장에 넣어버렸다. 이럴 거면 뭐하러 병원에 다녀왔나 싶기도 했지만 그건 아기가 잘 있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다 보상받았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약을 넣은 대신 레몬청을 꺼내 들었다. 감기에 걸렸다고 하니 남동생이 혀를 끌끌 차며 사준 것이다. 레몬에는 비타민이 많아 감기에 좋다고 한다. 감기 초기부터 내내 마셨는데 전혀 차도가 없는 걸 보면 그 효과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적어도 뜨거운 차를 마시면 기침이 좀 가라앉았다.
레몬청 한 숟갈을 잔에 넣고 끓는 물을 부었다. 레몬청이 물에 녹으며 물속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컵 위에도 수증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고, 차를 한 모금 마신 내 몸도 노곤노곤 풀어졌다. 당이 들어가서일까 따뜻해져서일까, 걱정 때문에 굳어버린 머릿 속도 조금씩 풀렸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항상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며 스스로를 위안해 왔다. 내가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그냥 마음을 편하게 갖자, 그렇게 손 놓고 있어도 시간은 흐르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아지는 것들이 있으니까,라고 말이다. 나는 워낙 걱정이 많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스타일이라, 이러한 생각은 힘든 일 자체에서 나를 보호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나 스스로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한 생각이 먹히지 않았다. 버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어쩔 도리가 없다고 가만히 있다 보면 뱃속의 아가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감기를 낫기 위해, 아기가 건강하기 위해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었다. 지금까지의 삶의 논리가 먹히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감기가 '내가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의 범위에 들어온 것부터가 당황스럽다.
나는 그대로 나인데 많은 게 변하고 있다. 삶의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