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임신일기
복어는 치명적인 독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만큼 맛도 아주 뛰어나다. 일부에서는 캐비어, 푸아그라, 트러플 버섯 등 세계 3대 진미식품에 더해 세계 4대 식품이라고까지 칭송한다. 감칠맛이 높으며 식감도 뛰어나다. 단백질 함량이 많은 살은 담백하고, 콜라겐이 많은 껍질은 쫀득하다. 이러한 매력 때문에 옛날부터 사람들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음에도 복어를 섭취해왔다. 복어는 맛만큼이나 영양도 뛰어나다. 동맥경화와 고혈압에 좋은 타우린, 항암에 좋은 셀렌 등이 들어있고, 생선 중에도 단백질 함량이 매우 높아 원기 회복에 좋다. 덕분에 오래전부터 보양식으로 이름을 날려왔다.
예전에야 복 섭취가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었지만 현대에는 복어 관리가 체계적으로 자리 잡아 웬만해선 복어를 먹을 때 목숨을 걸 일은 없다. 몇몇 복어 전문점들이 이름을 날리고 있으며, 이들 인기 있는 가게들은 복어철과 상관없이 사시사철 성업 중이다.
그래서, 외할머니께 복어를 대접하기로 했다. 일 년 반만의 외갓집 방문이었다. 임신을 알고 난 후 내내 가고 싶어 신경이 쓰였었는데 임신 중기에 다다른 이제야 갈 수 있었다. 외할머니가 복어를 먹고 기운을 내셔서 오래오래 함께 하시길 바랐다.
외할머니와 나는 아주 가까운 사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이만큼 가까운 관계는 보지 못했다. 나는 심심하면 외할머니한테 전화를 하고, 가끔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져서 혼자 시골 외할머니댁을 찾아간다. 어렸을 때는 다른 외할머니, 손녀 간 관계와 비슷했다. 서로를 좋아하긴 했지만 나는 항상 돌봄을 받는 어린 손녀였고, 우리는 자주 만나 먹을 것과 애교를 교환하는 관계였다. 하지만 자라면서 점차 외할머니와 인간적으로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외할머니의 인간적인 매력이 큰 몫을 했다. 전쟁 후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매일마다 점심을 잔뜩 해서 집 없고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운 분들에게 나누었고, 지금은 80대 후반의 나이에도 카카오톡 영상통화를 하고 인터넷을 하신다. 이런 외할머니는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분이었고, 나의 이러한 흥미에서부터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싹트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외할머니와는 정말 잘 통했다. 성격도 성향도 비슷한다. 대화가 잘 통해서 무슨 얘기든 외할머니에겐 술술 말하게 된다. 우리 가족 중 내 연애와 결혼 계획을 가장 먼저 알게 된 것도 외할머니다. 외할머니는 내가 전화하거나 찾아갈 때마다 고맙다고 하셨지만, 오히려 외할머니를 만나서 감사하고 좋았던 건 나였다.
그런 외할머니가 많이 아프시다. 워낙 나이가 많으시다 보니 이곳저곳이 안 좋아져서 거동도 잘 못하신다. 식사는 거의 죽으로 하고 바깥출입도 거의 못하고 계신다. 그러다 보니 임신하고 나서는 마음이 달았다. 자주자주 뵙고 챙기고 싶은데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서울 우리 집에서 경북 시골 외갓집까지 가자면 기차와 광역버스와 시골길을 거쳐 한참을 가야 했다. 초기에는 입덧과 병가로, 중기에도 계속 이어지는 컨디션 난조로 갈 엄두가 안 났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만삭이 되고, 아이를 낳고 나면 지금보다 더 가기가 힘들게 분명했다. 그때까지 외할머니가 기다려줄지도 알 수 없었다. 고민을 그만하고 일단 갔다 오기로 했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남편 대신 엄마가 같이 가주기로 해서 한결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내내 외할머니께 뭘 사드릴까 고민을 했다. 마침 병원 방문으로 외할머니가 모처럼 읍내로 나오셨다. 평소에 못 드시던,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음식점이 많지 않은 시골 읍내 식당을 샅샅이 뒤지고 고민하다 결정한 메뉴가 복어다. 외할머니는 일생을 내륙지방에 사셔서 그런지 해산물 요리를 별미처럼 여기고 아주 좋아하시는 데다, 위에 언급했듯 복어는 맛과 영양도 뛰어나다. 만나서 외할머니께 복어를 먹으러 가자 했더니 외할머니도 반색을 하셨다.
하지만 정작 복어집에 들어가선 걱정이 많이 됐다. 어제저녁부터 속이 안 좋아 죽도 잘 못 드셨다는데 복어가 괜찮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나오신 거니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안되면 얼른 집에 가서 죽을 드려야지 하는 생각으로, 복지리와 복튀김과 복껍질 무침 등 이것저것 주문을 했다.
아, 정말 괜한 걱정이었다. 오래간만에 먹는 바깥 음식이 마음에 드셨는지 복지리뿐 아니라 기름진 복튀김, 매콤한 복껍질 무침까지 잘 드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복불고기도 주문할 걸. 나도 엄마도 놀라고, 걱정하는 우리와 덩달아 걱정하던 종업원 분도 함께 놀랐다.
든든하게 먹고 들어온 외할머니는 기운이 나신 모양이었다. 어제는 내내 누워계셨다더니 돌아와서는 1박 2일 손녀딸과 실컷 놀아주셨다. 순식간에 1박 2일이 지나가고 떠나는 시간이 다가왔다. 이별은 항상 예상했던 것보다 더 슬프다. 괜히 쓸쓸한 마음에 증손녀가 태어날 땐 꼭 선물을 사들고 와야 한다고 투정을 부렸다. 할머니는 꼭 가겠다고 답하며 안아주셨다. 나도 할머니도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안다.
남은 임신기간이 얼른 지나가면 좋겠다. 나도 외할머니도 건강하게 얼른 이 기간을 보낸 후 다시 외할머니를 보러 가고 싶다. 다시 복어를 사드리고, 잘 드시는 모습에 놀라며 기뻐하고, 그 기운으로 신나게 놀고 싶다.
외할머니를 빨리 다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