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임신일기
발효에 대해 조금 더 공부해볼까 싶다. 한식 칼럼을 쓰면서 장, 술, 젓갈 등 다양한 발효 음식에 대해 다뤄왔는데 그때마다 유달리 흥미를 느꼈다. 화학 약품을 들이붓는 것도 아닌데, 음식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나며 맛과 식감이 바뀌는 게 마법같이 신기했다. 발효 음식 특유의 맛도 좋다. 발효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외려 그 '쿰쿰함'을 좋아한다. 한식 칼럼에서 다룬 발효 음식 외에도 오래 발효된 치즈, 15년 넘게 발효시킨 발사믹 식초 등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는 발효 음식이 많다.
그래서 이번에 사워도우 빵에 대한 강연을 다녀왔다. 서울 식생활 혁신센터에서 하는 우리 밀과 빵의 발효에 대한 1회짜리 수업이었다. 발효에 대해서도 다양한 수업들이 많은데 지금까지는 쉽지 않았다. 대개 서울에서 몇 주 연속으로 진행되는 수업들인데, 경기도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해외출장도 굉장히 잦은 터라 방법이 없었다. 대신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공부를 했지만, 아무래도 자습에는 한계가 있었다. 꼼짝없이 아이를 낳고 휴직을 해야 제대로 좀 배워볼 수 있으려나 하던 찰나, 1회성이긴 하지만 갈 수 있는 수업이 눈에 띄어 다녀왔다.
은평구에서 7시부터 하는 수업이었다. 아무리 빨리 마쳐도 경기 남부에서 퇴근하고 서울 은평구까지 가는 건 쉽지 않았다. 이제 슬슬 배가 불러와서 퇴근 시간에 움직이는 것도 쉽진 않았다. 결국 조금 늦고 말았다. 내가 걸을 일은 거의 없었고 나를 태운 지하철과 버스가 수고했지만, 마음이 바빴던 탓에 진땀이 났다. 하지만 바쁘게 간 보람이 있었다. 혼자만 공부하던 내용을 누군가 쭉 풀어서 설명해주니, 머릿속에 있는 내용들이 다시 정리되면서 명료해졌고 궁금했던 내용도 확인할 수 있었다.
놓치기 쉬운 사실이지만 빵도 발효음식이다. 발효의 힘으로 빵이 부풀어 폭신한 질감이 만들어진다. 발효를 위해서는 인공 배양된 이스트나 공기 중에 떠도는 효모 혹은 균을 이용한 사워종이 쓰인다. 이 중 사워종을 활용해 구운 빵이 사워도우 빵이다. 19세기 이스트가 대량 생산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워도우 빵을 구웠다. 이스트를 사용하는 곳도 드물지만 있었다. 이스트는 맥주 발효 효모로도 쓰이기 때문에 영국처럼 상면 발효 맥주를 만드는 브루어리가 있는 곳이면 이스트를 활용했다. (에일 같은 상면 발효 맥주는 상면에서 발효를 하므로 이스트가 맥주 위에 떠 있어 이스트를 떠내기 쉽지만, 맥주를 만드는 곳이라도 주 품종이 라거 같은 하면 발효 맥주라면 이스트가 바닥에 잠겨있어 이스트를 떠내기 어렵다.) 하지만 일부 지역뿐이었고,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사워종으로 빵을 구웠다. 사워종으로 빵을 발효시키고 그 사워종을 잘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워종이 잘 자리 잡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한 번 잘 된 빵 반죽은 계속 보관을 해야 했다. 잘 발효된 사워도우를 굽기 전에 조금 떼어놨다가 다음 빵을 반죽할 때 섞고, 그 새로운 반죽을 발효시켜 사워종을 번식시켜서 빵을 굽고 하는 식이었다. 물론 새로운 반죽을 굽기 전에 다음 빵을 위해 반죽을 떼어놓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이스트가 대량생산된 이후에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스트를 활용하게 되었다. 가루 형태의 이스트는 관리도 쉬웠고, 품질이 균일해 빵도 균일한 품질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워도우 빵을 만드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슬로 푸드 트렌드와 더불어 사워도우 특유의 맛을 즐기는 사람들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워도우 빵은 발효 과정에서 산 성분이 생겨 시큼한 맛이 난다.) 우리나라에도 지점을 낸 샌프란시스코의 빵집, 타르틴 베이커리가 사워도우 빵으로 유명세를 탄 빵집이다. 개인 베이커리에서도 사워종으로 빵을 굽는 곳들이 많아졌다.
강의에서는 이스트 빵과 사워도우 빵을 직접 체험해볼 수도 있었다. 물론 두 가지 빵 모두 먹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대놓고 비교해 본 적은 처음이라 재밌었다. 맛은 개인 취향이지만, 확실히 나한테 사워도우 빵은 그냥 먹기엔 신맛이 강했다. 버터를 듬뿍 발라 먹거나 샌드위치로 먹는 경우, 빵의 산미가 포인트가 돼서 좋을 것 같다. 의외로 빵 껍질은 사워도우 빵이 절대적으로 좋았다. 바삭한 이스트 빵 껍질 보단 질깃한 사워도우 빵 껍질이 씹는 맛도 있었고, 사워도우 빵의 신 맛과 캐러멜 라이즈 된 껍질의 단 맛이 어우러져 맛도 더 있었다. 비교 시식을 하고 나니 더더욱 발효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발효 작용으로 인해 같은 사람이 같은 밀로 만든 빵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발효는 마치 음식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 같다.
휴직을 하고 뭘 할지 고민이 많았다. 물론 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고 의미 있는 시간이겠지만, 사회생활 근 10년 만의 첫 휴직이니 아이를 위해서가 아닌 날 위해서도 작은 프로젝트를 하나 해보고 싶었다. 막연하게 흥미를 느끼고 있던 거지만, 발효를 그 주제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틈틈이 책도 읽고 수업도 듣고, 여러 가지 발효 음식도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발효균도 한 번 키워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