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임신일기
친구들과 1박 2일로 양평 펜션에 다녀왔다. 임신하고는 처음 떠나는 친구들과의 여행이라 가기 전부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남편과 떠난 태교 여행이나 엄마와 갔던 외갓집행과는 달랐다. 가족들이랑 가면 아무래도 마음 편하게 짐도 맡기고 칭얼거릴 수도 있었지만 친구들에게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임신을 하니 기분도 컨디션도 제 멋대로라 어떤 상황이 닥칠지 알 수 없었다. 가지 말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갈수록 이런 여행은 가기 어려울 것이다. 임신 중기에 접어들며 컨디션도 부쩍 좋아졌으니 괜찮을 거라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역시나 지금까지의 여행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2년 전 여름, 같은 친구들과 같은 곳에 갔었기 때문에 변화가 더 크게 다가왔다. 이전 여행에서는 내가 운전자였지만 요즘에는 부쩍 다리가 자주 저려 다 함께 대중교통을 타고 갔다. 한 것도 없는데 양평에 도착하자마자 배가 고팠다. 체크인도 하기 전에 한 끼를 더 먹었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직전에 밥을 먹었지만 그새 소화가 된 모양이었다. 체크인을 하고는 펜션 주변만 한 바퀴 돌고는 바로 침대에 뻗었다.
차이는 바비큐 자리에서 더 확실하게 나타났다. 알다시피 펜션 여행의 꽃은 바비큐다. 어둑어둑해지면 바비큐 준비가 끝났다는 연락이 온다. 시내 마트에서 사 온 것들을 주섬주섬 꺼내 들고나가면 조금은 선선해진 공기가 가슴을 채우고 시장기가 돌기 시작한다. 누군가 집게를 집고 고기를 굽기 시작하면 주변에서는 상차림을 마무리한다. 야채와 김치와 쌈장, 술이 상 위에 오르는 사이 고기 첫 접시가 완성되고 파티가 시작된다. 고기 굽는 연기 속에서 사람들도 말소리도 뒤섞여 여행 온 모두가 하나가 된다. 고기를 굽느라 조금 떨어져 있는 사람도 외롭진 않다. 곁에서 같이 얘길 하며 입에 고기를 넣어주는 사람이 있다. 식탁에 앉았던 사람들도 왔다 갔다 하며 쌈을 입에 넣어주거나 내가 더 잘 구우니 담당자를 바꾸자고 정겹게 시비를 건다. 고기와 맥주에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시간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빠르게 흘러간다. 이 것이 보통의 펜션 여행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전과 달랐다. 한 손에는 집게를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시끄럽게 굴던 나는 연기가 닿지 않는 쪽에 얌전히 앉아 친구들이 구워주는 고기를 먹었다. 맥주는 손도 못 대고 음료수를 홀짝 거렸다. 내가 얌전해지니 다른 풍경도 좀 달라졌다. 산만한 내가 고기를 굽는다 맥주를 더 가져온다 설치지 않으니 자리가 좀 더 차분해졌다.
그렇지만 즐거움은 여전했다. 우리는 쉬지 않고 먹었고, 떠들었고, 웃어댔다. 여자 넷이 삼겹살에 항정살, 새우에 고구마, 입가심 라면까지 해치웠다. 그 사이에 맥주와 음료수는 몇 번이나 리필되고, 세상만사가 우리 입을 스쳐 지나갔으며, 평소보다 두배는 큰 목소리들이 오갔다. 목소리는 갈수록 커졌고 시간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빠르게 흘렀다. 그리고 나는 몇 시간이고 이어진 그 자리에서 페이스에 뒤쳐지지도, 체력이 달리지도 않고 어우러져 놀았다.
고기를 굽지도 설거지를 하지도 않는 프리라이더가 되었지만, 유달리 뿌듯한 시간이었다. 이 자리를 이만큼 즐겨 냈다는 사실 자체가 뿌듯했다. 예전처럼 어울릴 수 있어 좋았고, 부담스럽지 않게 배려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아이가 오면 더 많은 게 바뀔 것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못하거나, 하지 않았던 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맥주를 못 마시고 연기를 피해야 해도 바비큐는 여전히 즐거웠듯, 중요한 건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상황의 변화가 내 모든 것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니. 미리 겁먹지 말자. 변화를 맞이하고, 그 변화에 맞추어 가던 길을 가면 된다.
겁먹지 말자.